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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저널리즘 Nov 19. 2018

을지로에는 힙스터가 없다

#79 《다시, 을지로》 김미경 저자

안녕하세요, 북저널리즘 곽민해 에디터입니다. 이번 주말 계획은 세우셨나요? 고민 중이시라면 을지로에 가 보시는 건 어떨까 합니다. 최근 많은 매체에서 소개하고 있는 을지로를 ‘뜨는’ 동네로만 알고 계신 분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을지로가 흥미로운 이유는 예쁜 카페나 식당이 많아서는 아닙니다. 


북저널리즘 콘텐츠 《다시, 을지로》의 김미경 저자를 만났습니다. 도시와 문화의 상호 작용을 연구하는 그에게 을지로는 청년들의 새로운 문화가 오래된 지역성과 조화를 이루는 흥미로운 텍스트입니다.


을지로에는 과거의 추억과 현재의 감각이 공존합니다. 청년들은 저렴한 임대료를 찾아 을지로에 왔습니다. 장사를 하는 가게인지 아티스트의 작업장인지 구분되지 않는 독특한 공간을 꾸리고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말합니다. 제조업 장인들은 청년들과의 작업을 반기고, 기술력을 아이디어에 보태는 일을 뿌듯하게 여깁니다.


을지로가 특별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새롭고 인기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뜨는 동네에 갔다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가게만 발견하고 실망하셨던 경험이 있으실 텐데요. 오랜 시간 쌓아 온 역사에 새로운 풍경이 겹쳐지는 을지로에서 조금 다른 경험을 해보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많은 미디어에서 을지로에 주목한다. 을지로가 인기를 끄는 이유가 뭘까.


사대문 안이라 불리는 서울 도심에는 두 가지 풍경이 있다. 빽빽한 고층 빌딩 아니면 고궁이다. 을지로는 어느 한쪽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3~4층 정도의 낮고 좁은 건물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 있다. 이런 건물이 주택용이 아니라 상업용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도 다른 지역에서 보기 힘든 특징이다. 무엇보다 을지로의 골목길은 어느 쪽으로 이어질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다. 목적지 없이 걷다 보면 낯선 공간을 탐험하는 기분이 든다. 대로변이 아니라 복잡한 골목 어귀에 숨어 있는 가게를 찾아 가야 하는 재미가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느낌을 준다.


도시 문화 연구자로서 을지로에 주목한 이유는 조금 다를 것 같다.


제조 산업이 후퇴하고 외딴 섬처럼 방치되던 을지로에 청년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전시를 하거나 공연을 열고, 식당을 차려서 음식을 팔았다. 제조업 장인들은 이들의 작업을 돕는 데서 새로운 활력을 찾는 것 같았다. 청년들과 제조업 장인들이 공존하는 방식이 궁금했다. 두 주체를 만나 ‘을지로다움’이 재구성되는 과정을 보고자 했다.


을지로 골목에서 만난 공간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어디인가.


액세서리와 옷, 가죽 디자이너인 세 친구가 모여서 만든 작업실 겸 펍 겸 복합 문화 공간이 있다. 주얼리는 종로3가, 옷은 동대문, 가죽은 신설동을 드나들 일이 많아 을지로를 베이스캠프로 삼았다고 했다. 작업실이지만 월세를 내기 위해 커피와 맥주를 팔면서 펍이라는 정체성이 더해졌다. 액세서리 디자이너인 대표가 회사에서 기획 업무를 맡았던 경험을 살려서 전시를 만들고, 뮤지션의 공연이나 플리마켓을 열면서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복합 문화 공간으로 발전했다. 을지로의 청년들은 대체로 표면적 성격과 무관하게 다양한 활동을 자기 공간에서 벌인다.


을지로의 제조업 장인들은 청년들의 활동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하다.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 뜨내기라고 생각하지는 않나.


모든 분들의 입장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제조업 장인들은 청년들의 활동을 반기고 있었다. 수십 년 동안 똑같은 모습으로 하루를 보내온 분들께는 청년들의 활동이 일상의 활력으로 느껴지는 거다. 청년들이 작품 제작을 할 때 주변의 기술자를 찾으면서 장인과 청년이 상생하는 측면도 있다. 어떤 분은 똑같은 작업만 하다가 청년들로 인해 새로운 작업을 하는 게 신선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장인들의 기술력과 청년들의 아이디어를 연결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신 분도 있었다.


을지로의 진짜 색깔은 뭘까.


을지로가 살아가는 방식을 ‘을지로 어바니즘’이라고 부르고 싶다. 청년들의 장사는 힙스터가 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수단이다. 청년들은 훌륭한 입지와 저렴한 임대료, 예술가들의 문화 자산이라는 강점을 적절히 활용해 새로운 생존 방향을 모색한다. 을지로에는 완벽한 의미의 힙스터도 없고, 이주민인 청년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원주민도 없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청년 각자의 삶이, 각자의 색으로 발현되는 공간이 을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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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에서는 여기까지만 공개합니다.



김미경

서강대학교에서 프랑스문화학과 신문방송학을 공부하고 동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전공했다. 독립 문화예술 기획자 협동조합 ‘queue’ 활동을 통해 서울에서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문화예술가들에 관심을 가지면서 〈장소 특정적 예술의 공간적 상상력: 서울 세운상가를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도시와 문화의 상호 작용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다.




인터뷰 전문이 궁금하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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