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태어나고
나는 백일 남짓 숨을 고른 뒤
다시 일터로 돌아갔다.
지금은 당연해진 육아휴직조차
그때의 나는 누릴 수 없었다.
어린 아이를 친정엄마께 맡기고
새벽보다 먼저 하루를 시작했다.
하늘이 밝아오기 전
이미 하루는 움직이고 있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닿으면 저녁 여덟 시.
아이 얼굴을 볼 수 있는 시간은
손바닥만큼,
금세 사라지는 노을 같았다.
그렇게 몇 해를 살았다.
엄마도, 나도, 아이도
각자의 자리에서 버티느라 지쳐 있었다.
엄마는 일을 내려놓고 손주를 돌봤고
나는 늘 미안했고
아이는 말로 알 수 없는 빈자리를
마음 어딘가에 품고 있었을 것이다.
그 시절은
우리 모두에게
버텨내는 계절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엄마의 말이 있었다.
“누구의 엄마이기 전에
너 자신의 일을 이어가야 한다.”
그땐 이해하지 못했다.
야속했고 원망스러웠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그 생각뿐이었다.
시간이 지나서야 알았다.
그 시절이
내 삶의 가장 단단한 바탕이었음을.
아이를 두고 돌아서던 새벽,
무거운 마음으로 오르던 버스의 첫 계단,
핏기 없는 얼굴로도
하루를 채우려 했던 시간들.
그 모든 날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 시간을 귀하게 본 곳에서
나는 스카웃 제안을 받았다.
버텨낸 날들이
경력이 되고
신뢰가 되었다.
정말이다.
이 세상에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
그땐 그저
하루를 넘기는 게 전부였지만
그 하루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모든 힘든 시간이
언젠가는 꽃이 될 수 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그래서 오늘의 나는
그때의 나에게,
그 시절의 우리 가족에게,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버텨낸
모든 날들에게
조용히 감사한다.
그 모든 순간이
나를 이 자리까지 데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