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시간에 이름을 붙이다

by 보라의정원

살아온 시간에 이름을 붙이다


나는 늘 누군가의 하루가 무너지지 않도록 곁에서 기준을 지켜왔다. 눈에 띄는 일은 아니었고, 잘해도 티 나지 않는 일이었다. 매일 같은 자리에 서서 같은 일을 반복했지만, 그 반복이 사라지면 어딘가는 분명 흔들릴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묵묵히 했다. 특별해지고 싶어서가 아니라, 함부로 넘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삶 속에서 나는 자주 나를 뒤로 미뤘다. 잘해낸 일보다 부족했던 순간이 먼저 떠올랐고, “이 정도면 됐지”라는 말로 스스로를 정리했다. 책임감이라는 말은 나를 설명하기에 편리했지만, 내 마음까지 대신해주지는 못했다. 역할은 늘 분명했지만, 정작 나는 점점 설명되지 않는 사람이 되어갔다.


그래서 책을 읽었다. 대단한 이유는 아니었다. 말을 걸 곳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문장을 따라가며 내 마음을 확인했고, 밑줄을 긋는 방식으로 하루를 정리했다.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그냥 가만히 있어도 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비슷한 이유였다. 특별한 계기라기보다는, 더는 마음속에만 두기 어려워졌다는 쪽에 가까웠다. 하루가 끝나면 말로 하지 못한 생각들이 남아 있었고, 그것들을 계속 흘려보내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쓰고 싶어서가 아니라, 사라지지 않게 붙잡아두고 싶었다.


엄마가 되고, 일을 하며 살아오면서 선택의 순간들은 늘 조심스러웠다. 어느 하나를 택하면 다른 하나가 부족해질 것 같았고, 그 균형 앞에서 자주 망설였다. 확신을 가지고 결정한 일은 많지 않았다. 대신 그 순간의 나에게 가능한 만큼만 움직였다. 돌아보면 그 선택들은 늘 무언가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가족이었고, 일상이었고, 최소한의 나 자신이었다.


일하는 나는 늘 조용했다. 앞에 나서기보다 확인했고, 드러내기보다 기준을 지켰다. 일이 잘 굴러갈수록 나는 더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자리를 쉽게 떠날 수 없었던 건, 그 일이 나를 단련시켰기 때문이다. 감정을 조율하는 법, 급하지 않게 이어가는 법을 그 시간들 속에서 배웠다.


엄마로서의 나는 완벽하지 않았다. 자주 미안했고, 충분하지 않다고 느꼈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한 시간들은 나를 이전과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 사소한 변화 앞에서 오래 멈추게 되었고, 쉽게 지나칠 감정에도 마음이 먼저 반응했다. 엄마라는 자리는 가르치는 자리라기보다, 함께 자라는 자리였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 삶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게 되었다. 같은 하루라도 문장으로 옮기려 하면 다르게 보였고, 아무 일 없던 날에도 분명한 마음이 남아 있었다. 글은 나에게 묻는 일이었다. 오늘의 나는 어땠는지, 무엇을 견뎌냈는지.


이제야 나는 내 시간을 하나의 흐름으로 바라본다. 잘한 날과 그렇지 못한 날, 망설였던 순간과 버텨낸 하루들이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이어져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살아온 시간에 이름을 붙인다는 건, 그 시간을 미화하는 일이 아니다. 다만 그날의 나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일에 가깝다.


나는 여전히 완성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안다. 조용히 살아온 시간들 역시 충분히 기록될 자격이 있다는 것을. 이 글은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남긴, 아주 개인적인 메모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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