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음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곳에, 천천히, 도착할 것이다.
예고 없이 꺼지는 불빛처럼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마음속 달력에 그려둔
작은 동그라미 하나처럼.
내 삶은 마지막 문장을 먼저 생각해두고
그 문장에 어울리는 하루들을 채워온
한 편의 원고였으면 한다.
해보고 싶던 일들은
'언젠가'로 미루지 않고,
가보고 싶던 곳에는
직접 발을 디디며,
사랑한다는 말은 삼키지 않고
미안하다는 말도 늦지 않게 건네며.
버킷리스트는 장식이 아니라
살아낸 기록이 된다.
한 줄씩 지워지고
한 칸씩 체크표로 채워지며
내 시간이 증명처럼 쌓여간다.
마지막 칸에 표시를 하는 날,
나는 웃으며 말하겠지.
“이제 다 했네.”
그날은
햇살이 가장 잘 드는 나의 집이기를 바란다.
내가 방향을 고른 창문,
계절마다 다른 빛을 들이던 거실,
수많은 식사와 대화를 품었던 식탁.
창밖에는 푸른 하늘과
둥실한 뭉게구름이 떠 있고,
집 안에는
평생 쌓아온 웃음과 체온이 머물러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침대에 누워 있을 것이다.
몸을 맡기면 조용히 받아주는
푹신한 매트리스.
수많은 밤을 함께 견딘 자리.
기쁠 때도,
지쳐 울던 밤에도,
괜히 뒤척이던 새벽에도
묵묵히 나를 안아주던 곳.
포근한 이불은
수없이 세탁되어 더 부드러워졌고
내 체온을 기억하고 있다.
그 이불을
마지막으로 천천히 끌어올리며
나는 알 것이다.
아, 이곳이구나.
내 온기가 머물다 갈 자리.
사랑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
손을 잡아주는 체온,
울음을 참고 웃는 얼굴들,
익숙한 숨소리.
나는 안다.
더는 급할 것이 없다는 것을.
남겨둘 말도,
미뤄둘 꿈도,
추가할 체크 칸도 없다는 것을.
그 순간의 죽음은
꺼짐이 아니라 완료다.
긴 하루를 충분히 살아낸 사람이
이불 속으로 몸을 묻으며
'이제 자도 되겠다' 하고
숨을 고르듯.
나는 그렇게 잠들 것이다.
두려움이 아니라
만족으로.
아쉬움이 아니라
여운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주 작게, 그러나 분명하게 말할 것이다.
"아, 잘 살았다."
그 한 문장은
유언이 아니라
결론이다.
노을은 이불 위에 천천히 번지고
붉게 물든 하늘은 하루를 다 쓴 얼굴로 고요하고
집 안에는 여전히 온기가 남아 있다.
나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완성되는 것이다.
따뜻하게.
포근하게.
찬란하게.
도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