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는다는 건

by 보라의정원

늙는다는 건
시간이 몸을 지나간 흔적이 아니라
의미가 남아 있는 상태다.


젊음이
미래를 소비하는 방식이라면
늙음은
과거를 해석하는 방식이다.


하루는 여전히 오지만
같은 이유로 오지 않고
내일은 여전히 있지만
같은 무게로 있지 않는다.


늙는다는 건
가능성이 줄어드는 일이 아니라
선택이 분명해지는 일이다.


모든 길이 열려 있던 시절에는
방향이 없었고
몇 개의 길만 남았을 때
비로소
어디로 가는지 알게 된다.


기억은 늘어나고
욕망은 줄어들며
삶은 점점
설명 가능한 모양이 된다.


그래서 늙는다는 건
쇠퇴가 아니라
정리된 세계다.


혼란이
경험으로 번역되고
우연이
이력으로 굳어질 때


우리는
시간을 견딘 존재가 아니라
시간을 이해한 존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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