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

by 보라의정원

처음은 희미했다.

분필가루처럼 흩어지던 이름.

지워졌다고 생각했는데,

어딘가에 남아 있었다.

보이지 않는 쪽에서,

아주 느리게 흔들리며.


시간은 이미 지나갔는데

너는 아직도 그 안에 있었다.

다른 사람의 얼굴을 입고,

그 사람의 시간을 살아내며.


깊어질수록

너는 조용해졌다.

그게 위험하다는 걸

나는 늦게 알았다.


프레임 안에서 너는 완벽했다.

빛이 닿는 곳에서는

아무것도 어긋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밖에서는

금이 간 것처럼

조금씩 어긋나 있었다.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사라지는 소리.


그 사이에서

너는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


그건 몰입이 아니었다.

돌아오지 못하는 쪽으로

조금씩 기울어지는 일이었다.


너는 너를 접고 있었다.

겹겹이.

아무도 모르게.


나는 알고 있었다.

너는 연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사라지고 있다는 걸.


네가 살아낸 얼굴들 사이에

정작 네가 없다는 걸.


환호 속에는

다른 소리가 섞여 있었다.

아주 낮게,

부서지는 쪽의 소리.


그날 밤 이후로

너의 감정은 멈추지 않았다.


거리 위에 흘러나온 것은

역할이 아니라

너의 일부였다.


사람들은 그것을 구경했지만

나는 시선을 오래 두지 못했다.


이름을 불렀을 때

너는 나를 알아봤다.

하지만 그 눈빛은

어딘가 비어 있었다.


손을 뻗는 동작이

이상하게 낯설었다.

익숙한데,

처음 보는 것처럼.


너는 나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미 여기 없는 사람 같았다.


사람들은 그것을 재능이라 불렀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너의 안쪽에서

무언가 닳아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연기는 너를 만든 게 아니라

너를 밀어냈다.


결국 너는

너의 바깥으로 밀려났다.


가면은 벗겨지지 않았다.

피부처럼 남았다.


감정은 날이 서 있었고

너는 그 안에서

조금씩 깎여 나갔다.


박수는 계속됐지만

그 안에는 네가 없었다.


남아 있는 것은

흔적과

역할뿐이었다.


시간은 흐르는데

어떤 장면은 멈춘 채였다.


나는 아직도 그곳에 있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별이 되었다고.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끝나지 않은 장면이 있다.

그 안에

여전히 네가 있다.


아니,

네가 만든 것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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