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젤라 덕워스 Angela Duckworth 교수의 그릿 Grit이 여전히 베스트셀러이며 Grit bootcamp (훈련소)와 연구소가 성행 중이다. 그릿 은 열정과 끈기의 조합이라는 멋진 콘셉트로 Grit 이 있는 사람이 인생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며, 21세기의 덕목 (Virtue)로 부상하였다. Grit 연구의 대가인 Duckworth 교수가 거대한 연구비와 상을 휩쓸며 죽어가던 Social psychology에 심폐소생술을 해 준 것은 심리학계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릿은 많은 오류가 있는 개념이며 연구이다. 나는 Grit의 무분별한 적용과 강요가 매우 불편하다. 하나씩 짚어보도록 하겠다.
1. 그릿의 개념은 모호하다. 저자는 열정 (Passion)과 끈기 (Perseverance)의 합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 열정과 끈기가 있어야 무슨 일이든 오래 지속하고 결과를 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릿 측정은 열정 5점 +끈기 5점 =그릿 10점인 식으로 한다.
그렇다면
그릿 점수가 7점인 사람 (A)이 있다.
이 사람은 열정 2점 +끈기 5점 =그릿 7점이다. 열정은 없지만 무슨 일이든 시작하면 오래 하는 타입이다.
다른 사람 (B) 도 그릿 점수가 7점이다.
이 사람은 열정 5점 +끈기 2점 =그릿 7점이다. 열정은 충만하지만 뭐든 오래 하는 법이 없다.
두 사람 모두 그릿은 7점이지만 행동 양상은 전혀 딴판이다. 둘의 성공가능성은 같은가? 아닐것이다.
어떤 개념이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같은 점수의 사람이 비슷한 행동 양상을 보인다는 뜻이다.
그러나 위의 예시에서 보듯이 같은 점수의 사람들이 전혀 다른 행동을 한다면 이 개념은 예측성이 없다. Predictive power 가 없다는 것이다. 그릿의 정도 (degree)로는 사람의 행동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의 생각으로는 '그릿은 끈기이며, 끈기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열정이 있다'라고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끈기에 관한 연구는 이미 차고 넘쳤다.
2. 그릿에 열정이 필요한가?
덕워스 교수는 그릿의 예로 스펠링 비(Spelling Bee) 대회에 출전한 학생들을 들었다. 열정과 끈기의 산물이란다. 그러나, Spelling Bee에 열정을 가진 학생들은 매우 드물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맹목적인 단어 외우기를 누가 좋아하겠는가? 미국의 Spelling Bee는 이미 한 인종 (mostly Indians)의 잔치가 되어 버린 지 오래이다. 다른 인종의 아이들은 Spelling Bees에 열정이 없어서인가? 아닐것이다.
클래식 음악도 마찬가지이다. 아직도 미국의 아시아 계 부모들은 클래식 악기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등)를 연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심한 경우는 대학 입학에 좋은 영향을 줄 거라고 믿는다. 그래서 많은 아시아계 어린이들은 어쩔 수 없이 클래식 악기 연주를 배운다. 오래도록 배운다. 그러나 그들이 '열정'이 있어서 '끈기'있게 하는 것은 아니다. 부모의 기대와 권유, 강요, 그리고 재정적 도움 때문이다. 물론 그중엔 열정도 있고, 재능도 있는 아이들도 있다. 그러나 무엇인가를 오래했다고 해서 반드시 열정이 있어서는 아니다.
3. Grit 은 성공을 예측하지 못한다.
최근에 발표된 Meta-Analysis (그 주제로 발표된 연구들의 '효과'를 검증하는 분석) 스터디에 따르면 그릿은 성실성 (Conscientiousness)와 관련이 깊으며, '관심' '흥미'와는 관련성이 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그릿을 이용한 코칭이나 교육방침은 성과나 성공에 효과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그릿은 성공을 예측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1번에서 지적한 대로 그릿에 버무려진 '열정'의 요소가 방해가 되는 것이다.
4. 그릿은 위험하다.
덕워스 교수는 누군가가 무엇인가를 오래 하는 것을 Grit 때문이라고 평가해버린다. 성공한 사람은 Grit 이 있고, 실패한 사람은 Grit 이 없어서란다. 이는 인간의 동기부여 (motivation)의 복잡한 측면을 전혀 이해하고 있지 않은 주장이다.
동기부여는 많은 요소들이 얽혀있다. 개인적, 사회적, 정치적, 그리고 문화적으로 복잡하다. 개인적인 접근만 보더라도 동기 부여에는 '나' 말고도 '다른 사람'도 중요하다.
Vroom의 Expectancy theory를 예를 들어보자.
이 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Instrumentality이다. 내가 능력이 있고,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성과를 내면 보상을 준다는 약속 (instrument)이 성립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부모는 동기부여를 할 수 없는 이치이다.
나만 으쌰 으쌰 해선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릿은 너만 고치면 된다고 말하고 있다.
전형적인 Victim Blaming이다.
학교와 가정에서 그릿을 이용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추세에 미국의 심리학회와 대학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개인에게 '그릿이 없어서 그래. 그릿을 키워야 성공한다. 그릿이 없는 너의 탓이야.'라는 접근은 우리가 지향하는 '교육'과는 정 반대의 접근이다.
5. Grit: The Power of Passion and Perseverance 책은 짬뽕이다.
자신이 주장하는 그릿보다는 다른 이의 개념으로 지면을 채운, 매우 실망스러운 책이다. 자신의 지도교수인 드웩의 Fixed vs. Open mindset, 마시멜로우 테스트, 의도적인 연습, 습관 등은 모두 다른 연구자나 저자의 것을 빌어온 것이다. 더욱이 Fixed vs. Open Mindset과 마시멜로우 테스트는 이미 심리학계에서는 오류 투성이인 실험과 주장으로 여겨지고 있다.
심리학과 교육계의 비판에 덕워스 교수는 그릿 개념의 미비함을 인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그릿은 퍼질 대로 퍼져, 아이들의 교육에 시시콜콜 참견하고 있는 지경이다. 소셜미디어에도 그릿을 전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고, 이들의 포스팅에 좋아요를 누르는 추종자들이 넘쳐난다.
그릿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열정을 가지고 끈기 있게 오래도록 도전하는 것은 개인의 발전뿐만 아니라 사회의 지속, 인류의 번영에도 필수적이다.
그러나 애매모호한 개념, 할 때마다 다르게 나오는 결과 (inconsistent results), 개념과 결과의 약한 연결고리가 있는 이론으로 대중을 호도하는 일은 멈춰야 한다.
참고문헌
Credé, M., Tynan, M. C., & Harms, P. D. (2017). Much ado about grit: A meta-analytic synthesis of the grit literature.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13(3), 492-511.
Duckworth, A. (2016). Grit: The power of passion and perseverance (Vol. 234). New York, NY: Scrib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