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님들은 글이 잘 써지는 계절이 있나요?
저는 여름을 좋아해서, 여름의 글쓰기를 좋아합니다. 무더위 속에 글쓰기에 빠져 있으면 뭔가 치열하게 살아낸 거 같은 기분이 들어 뿌듯하더라구요. 봄부터 새로운 소설을 집필 중이에요. 시작은 중편으로 기획하고 시작했는데 쓰다 보니 길어질 듯한데 문제는 진도가 쭉쭉 안 나갑니다. 브런치에 연재했으면 어떻게든 떡가래 뽑듯 이야기를 뽑아냈을 텐데 혼자 작업하다 보니 효율성이 별로입니다. 그래도 혼자만의 작업에 익숙해지는 시간이라 생각하고 노력 중이에요.
그런데 어디에서 글을 써야 잘 써질까요. 혹시 이웃님들은 글을 쓰는 '나만의 공간'이 있나요?
하버드 대학교 교수인 리아 플라이스의 책, <베스트셀러 작가들의 서재를 공개합니다>를 보면 유명 작가들의 서재를 엿볼 수 있어요. 흐트러져 있어도, 단정히 정리되어 있어도 ‘작가의 서재', 너무 멋있습니다.
이렇게 멋진 나만의 서재를 갖는 것이 로망이지만, 저에겐 작업 공간이 따로 없습니다. 작가님들 대부분이 공감할 듯한데 그냥 책상 앞에 앉는다고 글이 줄줄 써지는 게 아니잖아요. 글을 쓰는 것은 특별한 의식과도 같아서 글쓰기 공간이 정해져 있는 작가님들이 많더라구요. 강원국 작가님은 글쓰기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어떻게 글 쓰는 습관을 들일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나는 반복인고, 다른 하나의 의식이다.” -강원국-
일정한 장소, 시간에 반복적으로 글쓰기를 시도해야 하고, 시도하기 전에 보통 나만의 루틴이 있습니다. 글쓰기 전에 정장으로 갈아입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필기구를 가지런히 정돈하는 사람도 있고, 특정 장소에 가야 하는 사람, 음악을 들어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 뇌는 글쓰기를 반기지 않는다고 하네요. 싸워 이길 대상과 도망가야 할 대상을 알아차리는 것이 관심사인 뇌에게 글쓰기는 도망쳐야 할 대상이고 적군입니다. 그럼에도 꾸준히 글쓰기를 시도하면 무의식이 습관이 되어 글이 써지기 시작하는데, 이 습관을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이 ’글 쓰는 공간‘입니다.
작년 처음 전투적 글쓰기에 돌입한 저 역시 글 쓰는 공간을 찾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봤어요. <www. 판데모니움.net> 연재를 시작하며 처음 글쓰기 공간으로 활용했던 곳은 북한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카페, 저만의 아지트인 곳입니다. 코로나 시기 심적으로 매우 힘들 때 ’산멍‘하러 찾았던 카페예요.
수천 년 전부터 산을 찾은 다양한 사람들의 감정을 품어왔을 북한산을 바라보며 존재의 작음과 쏜살같이 지나갈 시간에서 지켜야 할 가치는 무엇인지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자연스레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힘든 시간을 품어주었던 북한산이 떠올랐고 그래서 카페 구석 자리에서 글을 썼습니다. 잘 안 풀리던 이야기도 북한산 카페에 가면 술술 써지는 듯한 기분 때문에 집에서 끙끙대다 연재일이 다가오면 노트북이랑 짐을 챙겨 카페로 직행했어요.
연재 글의 30%는 아마도 북한산 카페에서 쓴 거 같은, 지금도 머리 식히고 맛있는 빵 먹으며 글쓰기고 싶을 때 종종 찾는 공간입니다. 그런데 북한산이 많은 분의 사랑을 받기 때문에 오랜 시간 앉아 있기 눈치 보이고, 점심시간 전후 만석일 때는 아무래도 집중하기가 힘이 들더군요.
그래서 새롭게 발견한 공간이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도서관이었어요. 오전 10시에 문을 여는 작은 도서관인데 나름 좋은 자리를 선점하려면 10분 전에 도착해 줄을 서야 하는 곳. 장점은 글 쓰다 힘이 들면 그림책도 펼쳐보고, 자료로 필요한 책도 즉석에서 검색해 볼 수 있다는 점. 작년 여름 내내 가장 많이 찾았던 공간이 도서관입니다. 조용히 독서하거나 글쓰기에 최적화된 공간이라 좋았습니다.
얼마 전 시상식 때 만난 김선희 작가님은 오전에 도서관에 가서 무조건 저녁 7시까지 쓰고 읽기를 반복한다고 루틴을 이야기해 주셨어요. 도서관 글쓰기를 해봤기에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편한 집을 두고 매일 도서관에 간다는 것이 쉽지 않거든요. 전업 작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꾸준함과 성실성'이란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로 접어들면서 단지 내 카페에서 주로 글을 쓰다가 날씨가 더 추워진 후에는 집으로 정착했습니다. 군 복무 중인 큰아들 방을 임시 집필실로 활용했어요. 그런데 지난 6월 큰아들이 제대한 후, 어느 한 곳에 정착하기 힘든 떠돌이 글쓰기가 시작되었어요. 거실과 아이들 방을 이리저리 오가며 멋진 나만의 집필실을 꿈꿔 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노트북 펼치고 대충 조용하면 집중해서 몇 줄이라도 쓰는 적응력이 키워지는 중입니다.
이웃 작가님들은 지금 어떤 공간에서 글을 쓰고 있나요? 거창하거나 화려하지 않아도, 창작과 집필의 에너지가 가득한 나만의 공간을 멋지게 세팅해 보시기 바랍니다.
★집필 생활은 본래 고독한 감금생활이다. 이것을 제대로 다룰 수 없다면 시작할 필요도 없다. -윌 셀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