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린 시절 좀 외로웠어요. 부모님의 불화, 자주 친척 집에 맡겨졌던 시간, 그때 현실에서 도망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간단한 도구가 책이었습니다. 현실보다 더 진짜 같은 이야기, 꿈과 행복을 주는 판타지,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오싹한 괴기담...세상에는 어쩌면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가 있는지, 어른이 된 후에는 작가들의 뇌가 보이지 않는 우주의 탯줄과 연결되어 있어 무한한 이야기들을 공급받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이야기꾼, 소설가는 만들어지는 것일까요? 혹은 타고나는 것일까요? 소설을 쓴다는 것은 막막한 일입니다. 꽤 괜찮은 소재와 발상이 떠올랐다 하더라도 이야기에 걸맞는 구성과 인물을 창조하는 일은 정말 어렵습니다. 그럴 때 ‘소설작법’에 관한 책에 관심을 갖게 되는데 초보 작가들에게 가장 많이 읽히는 시리즈는 <소설 쓰기의 모든 것> 시리즈가 아닐까 싶습니다.
『소설쓰기의 모든 것 1: 플롯과 구조』
『소설쓰기의 모든 것 2: 묘사와 배경』
『소설쓰기의 모든 것 3: 인물, 감정, 시점』
『소설쓰기의 모든 것 4: 대화』
『소설쓰기의 모든 것 5: 고쳐쓰기』
초보 작가들이 궁금해 할만한 소설 쓰기의 모든 것을 구체적으로 조목조목 알려주는 시리즈라 도움을 받았다는 후기들이 많습니다. 저도 캐릭터 구축이 막막할 때, 어떻게 입체적인 인물을 만들 수 있는지 이 시리즈를 참고했습니다. 소설쓰기의 기초를 다지고 싶은 분들께 강추하고 싶은 시리즈입니다.
그런데 작법서들을 읽는 순간에는 극공감과 깨달음이 있지만, 막상 창작의 영역에서는 적용이 쉽지 않습니다. 특히 미스터리, 추리물을 쓸 때는 작가 자신이 막다른 코너에 몰린 것 같은 감정을 자주 느낍니다. 추리물은 독자와 작가의 팽팽한 줄다리기, 긴장감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극한 상황과 사건 속으로 인물들을 밀어 넣다가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것이죠. 제가 그런 곤경에 빠져 있을 때 정말 도움을 받았던 작법서는 <내일 살해당할 것처럼 써라>입니다. 게으른 제가 노트에 메모까지 하며 읽을 정도로, 제 작품의 플롯과 인물, 전개에 대해 스스로 분석할 수 있는 팁이 가득했던 책입니다. 미스터리, 추리물을 쓰는 작가님들께 실전적인 작법서로 추천합니다.
‘작가의 기본기와 마인드셋’에 대해서 배울 수 있었던 스티븐 킹 작가의 <유혹하는 글쓰기>도 모든 작가님께 강추하는 책입니다. 1974년 <캐리>로 데뷔한 후 지금까지 현역으로 활동 중인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 작가, 스티븐 킹. 그의 왕성한 창작 내공은 어디서 오는 것인지 평소 궁금했어요. 스티븐 킹은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이 작가들을 위한 지상명령이라고 말합니다.
-예전에 인터뷰에서 크리스마스와 독립기념일, 생일을 빼고 매일 글을 쓴다고 말했지만 거짓말이다. 나는 하루도 빠트리지 않고 쓴다. 하루에 열 페이지씩 쓰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렇게 3개월 동안 쓰면 18만 단어가 되고 그 정도면 책 한 권 분량으로 넉넉하다. 어떤 날은 열 페이지가 쉽게 나온다. 그런 날은 아침 열한 시 반쯤 작업을 끝내고 소시지를 훔쳐먹는 생쥐처럼 신나게 다른 일을 볼 수 있다. 나는 정말 긴박한 일이 벌어지기 전에 2천 단어를 쓰지 않고 중단하는 일은 좀처럼 없다.- (스티븐 킹)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의 비결은 생일날에도 빠짐없이 하루 2천 자, 10페이지 분량의 글을 쓰는 것. <유혹하는 글쓰기>, 스티븐 킹의 창작론을 통해 작가는 타고 나는 것이기보다는 스스로를 빚어가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루 1페이지도 쓰지 않으면서 재능이 없다는 핑계는 대지 말아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되었죠. 작가가 되는 길, 결국 왕도는 없고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쓰는 것뿐입니다.
결국 작가에게 가장 필요한 재능은 ‘꺽이지 않는 쓰기’라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요? 초고를 쓰다 보면 멈추고 싶은 욕구, 뭔가 부족하고 마음에 들지 않아 처음으로 리셋하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듭니다. 사방이 꽉 막힌 것처럼 전개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때는 쓰고 있던 이야기를 던져 버리고 다른 이야기로 갈아타고 싶기도 하구요.
그럼에도 끈질기게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고 막힌 부분을 뚫어내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결국 작품은 미완으로 남게 됩니다. 사실 ‘꺽이지 않는 쓰기’는 저를 위한 주문입니다. 바로 조금 전까지, 막혀 있는 사건과 씨름하다 왔거든요.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이 있다면 어떻게든 초고를 완성해 보세요. 진짜 소설 쓰기는 그때부터가 시작입니다.
★ 나는 소설이란 땅속의 화석처럼 발굴되는 것이라 믿는다. 소설은 이미 존재하고 있으나 아직 발견되지 않은 어떤 세계의 유물이다. 작가가 해야 할 일은 연장통의 연장을 사용해 각각의 유물을 최대한 온전히 발굴하는 것이다. - 스티븐 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