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2월 28일, 3월을 코 앞에 둔 그 날은 낮기온이 꽤 포근했어요. 저는 디베이트팀 중학생들과 종로3가 CGV에서 영화 <퇴마록>을 함께 보고 종각으로 이동해 애슐리에서 맛있게 점심을 먹은 후 청계천을 산책했어요. 비대면 수업이라 방학을 이용해 한번씩 오프라인 수업을 진행하는데 청계천에 먼저 가자고 제안한 것은 학생들이었어요. 항상 빡빡한 학원 스케쥴을 소화하는 친구들이라 그런지, 마음 편히 산책하는 시간이 꽤 즐거운 모습이었습니다. 청계천에 한가로이 떠 있는 물오리만 봐도 즐거워하는 친구들을 보니 저도 좋았습니다.
오전에 집을 나서며 만약 오늘 출판사에서 연락이 오지 않으면 탈락이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공모전 당선작 발표는 출판사 홈페이지에 깜짝 공개하는 것이라 해당 작가에게 약 열흘이나 일주일 전쯤 먼저 연락이 간다하더군요. 3월 2일 월요일이 발표예정일이라 28일 금요일까지 연락이 없으면 아쉽지만 탈락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영화보고 청계천 산책을 하는동안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학생들과 수다를 떨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날 우리가 함께 디베이트 하기로 한 책은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였습니다. 주인공인 양치기 산티아고는 양들과 초원에 있는데 한 아이가 나타나 산티아고를 이집트의 피라미드로 데려가는 꿈을 꿉니다. 한번도 아닌 여러번 같은 꿈을 꾸자 피라미드에 있는 보물을 찾아 나서게 됩니다. 물론 피라미드에 이르는 길은 순탄치 않습니다. 그러나 그 여정에서 ‘자아이 신화’를 이루어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꿈’이라는 것을 생각할 틈도 없이 성적과 입시 같은 현실에 떠밀리는 학생들과 ‘자아의 신화’에 대해 토론해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한 카페에서 <연금술사>를 펼치고 주문한 음료를 기다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생소한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스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시 망설이다 전화를 받았는데 너무나 차분한 목소리의 남성분이 ‘안녕하세요, 소원나무 출판사입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갑자기 저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전화의 내용은 저의 작품이 최종심에 올랐으며 혹시 필요한 경우 출판사와 협의해 수정과정을 거칠 수 있는지 묻는 것이었습니다. 방송구성 작가로 일할때 담당 피디와 원고 수정하는 것이 일상이었기에 매우 익숙하다는 답변을 드렸습니다. 최종심에 오른 작품이 몇 편인지 궁금하다는 질문을 드렸지만 오픈하기 곤란하다고 답하시고는 수상시 다시 연락하겠다는 말씀과 함께 통화는 끝이 났습니다. 전화를 끊고도 계속 얼떨떨 했습니다. 비록 수상하지 못하더라도 최종심에 갔다는 사실이 저에겐 깜짝 선물이었습니다.
얼떨떨한 상태로 학생들과 <보물을 찾아나선 산티아고의 선택은 옳다>는 논제를 가지고 토론했습니다. 안정된 양치기의 일자리를 버리고 무모하게 이집트의 피라미드로 향한 산티아고. 목숨을 잃을뻔한 어려움 끝에 결국 산티아고가 보물을 발견한 장소는 결국 고향으로 돌아와서였기 때문에 그 여정의 가치에 의견을 나누었어요. 얼핏 생각하면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 보물을 발견한 아이러니 때문에 그 선택이 무모하다고 할 수 있지만, 떠날 때와 다시 돌아온 후의 산티아고가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학생들은 잘 짚어냈습니다. 그리고 피라미드 그 자체보다 ‘꿈을 향해가는 매순간이 빛나는 삶’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다시 한번 소원나무 출판사 편집장님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이미 대상으로 선정된 상태에서 혹시 타출판사 공모전에 중복 투고한 사실은 없는지, 원고 수정에 대해 열려있는 마인드인지 확인하기 위해 첫 번째 전화를 걸었다고 말씀해 주시더군요. 첫 번째 받았던 전화가 마치 꿈속인 듯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던 것이 비해 두 번째 전화는 담담한 기분이었습니다. 저 역시 산티아고처럼 ‘자아의 신화’를 찾아가는 여정 속에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청소년들과 함께였던 하루, <연금술사>를 읽고 토론하는 시간에 소원나무 출판사의 제1회 청소년 문학상 대상소식을 전해 들은 것은 우연만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연금술사>는 원래 좋아하는 소설이지만 그 날 이후 제겐 더 특별한 책이 되었습니다.
꿈을 찾기에 너무 늦은 나이는 아닐까? 당연한 불안감 속에 다시 시작했던 소설 습작. 수없이 좌절하고 스스로의 한계에 실망도 하겠지만, 그 순간조차도 빛나는 여정임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자아의 신화’를 찾아가는 시간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는 사실도요~~그래서 단 열줄 밖에 쓰지 못해 속상한 날도 많지만, 실망하지 않고 쓰고 또 쓰고 있습니다.
★ 그대의 마음이 있는 곳에 그대의 보물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게. 그대가 여행길에서 발견한 모든 것들이 의미를 가질 수 있을 때 그대의 보물은 발견되는 걸세. -연금술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