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항상 저에겐 미스터리하고 궁금한 일입니다. 세상에 다양하고도 수많은 이야기는 어떻게 탄생했는지가 궁금해 소설 작법서나 작가님들이 쓴 소설 쓰기에 관한 책들을 읽어봅니다. 그런데 속 시원한 답을 찾을 수 없었어요. 꿈처럼 어느 날 신비하게 찾아온 이야기, 여러 해 동안 고민하고 차분히 뼈대를 세워온 이야기, 다양한 시작이 있겠지만 모든 소설이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되어 나오려면 꼭 만나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잘 나가는 작가도 예외는 없어요.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선 ‘ 이분’의 애정과 손길이 필수적입니다.
<친애하는 피츠제럴드 선생.
부디 제 판단에 따르지 마십시오. 중요한 부분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제가 선생을 강요했다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어떤 경우이건 작가는 제 목소리를 내야 하는 까닭입니다.>
이 글은 맥스웰 퍼킨스가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스콧 피츠 제럴드에게 보낸 편지 중 일부입니다. 맥스웰 퍼킨스는 헤밍웨이, 토마스 울프, 그리고 피츠제럴드와 같은 세기의 작가를 발굴해 세상에 선보인 전설적인 편집자입니다. 스콧 피츠 제럴드와 맥스웰 퍼킨스가 1919년부터 1940년까지, 무려 20년간 주고받은 편지를 묶은 책 <디어 개츠비>를 보면 편집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편집자와 작가는 원고 수정을 위한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때론 격렬하게 부딪히기도 합니다. 피츠 제럴드가 신인 시절 단편 소설집을 수정한 후 의견을 물었을 때, 맥스웰 퍼킨스는 어느 한 구절에 대해 작가의 의도 대로 전달되기에 무리인 것 같다는 생각을 전했습니다. 피츠 제럴드는 잔뜩 흥분해 긴긴 답장을 보냈죠. 그 구절이 얼마나 중요하며 당신의 지적은 옛날 사람 같은 생각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편집자 맥스웰 퍼킨스는 위에서 본 것처럼, 어떤 경우이건 작가는 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답장했습니다.
이렇게 피츠 제럴드의 흥분을 가라앉힌 후 퍼킨슨은 자신이 이의를 제기한 부분에 대해 다시 한번 사회적· 역사적 가치, 독자의 인식과 작품 내에서 미치는 영향을 수정 근거로 제시했습니다. 좀 더 좋은 책을 내고 싶다는 지지와 신뢰를 근거로 했기에 마침내 두 사람은 피츠 제럴드가 죽는 날까지 20여 년간 동료로서 작업을 이어가고 세계적인 소설을 펴낼 수 있었습니다.
때문에 한 권의 책은 순도 높은 작가의 노력과 열정만이 아닌, 노련하고 감각 있는 러닝메이트 편집자와의 협업을 통해 완성됩니다.
공모전 당선이 확정되면 작가는 편집자와 함께 스토리와 등장인물, 사건에 대해 토의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작가는 스토리와 등장인물에 대해 누구보다 큰 애정을 가지고 있고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작품을 꼼꼼하게 분석한 편집자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꽤 많은 허점과 미진한 부분을 발견하게 됩니다.
터틀넥스프레스'의 대표이면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는 20년 차 편집자 김보희 님은 기획과정에서 이런 질문을 던진다고 이야기합니다.
1) 적합성
-우리 회사의 출간 방향에 적합한가?
-이 기획에 적합한가?
2) 상업적 가치
-고객은 누구인가?
-예상되는 최소 판매 부수가 손익분기점을 넘는가?
-다른 상품 사이에 놓아도 여전히 경쟁력이 있는가?
3) 개인적 가치
-내 출간 리스트에 넣고 싶은 책인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자랑할 수 있는 책인가?
창작자인 작가의 생각과 편집자의 관점은 이렇게 서로 동떨어져 있습니다. 작가들이 창의성과 신선함, 완결성에 집중하는 반면 편집자는 독자들에게 선택받는 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지가 확고합니다. 이러한 서로의 생각을 잘 조율해 아름다운 화음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 때 좋은 책은 완성됩니다.
편집자와 회의를 거치는 과정에서 최초의 제목이 바뀌기도 하고, 구성의 순서가 달라지고, 작품에 어울리는 표지디자인에 대해 함께 고민을 나누기도 합니다. 서로 대립하기보다는 긍정의 에너지를 녹여낼 때 책의 완성도는 더 높아지리라 생각합니다. 바로 이것이 협업의 묘미이기도 하구요.
최근 2명의 작가님에게 ‘편집자는 언제나 옳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스티븐 킹이 편집자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시상식 날 만나 뵈었던 이옥수 작가님도 같은 말씀을 하셨어요. 편집자는 무조건 옳다, 그러니 고집부리지 말고 편집자가 원한다면 수십 번도 수정하겠다는 각오로 책을 만들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저의 첫 작품을 통해 만나게 된 편집자님은 배려 깊고 순수하고 목소리도 참 좋은 분입니다. 수상 소식을 전해주신 것을 시작으로 저에게 여러 번 감동을 주셨는데, 작품을 정말 꼼꼼히 읽고 세세한 부분까지 피드백을 작성해 보내주신 메일은 정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 피드백을 토대로 만나 협의하고 기한 내에 작품을 수정했습니다. 큰 수정은 끝났지만 아마도 디테일한 부분의 수정, 제목에 대한 아이디어 회의, 간지에 들어가게 될 문구와 삽화, 표지디자인까지 마치려면 앞으로도 시간이 꽤 필요할 거 같습니다.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기까지 정말 많은 분의 열정과 수고가 필요하다는 것을 경험하고 배우는 중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책은 결국 그 책을 읽고 다양한 감상을 나누는 독자에 의해 완성되는 것 같아요. 그 여정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하고 아름답기에 힘닿는 데까지 더 많은 소설을 집필하고 싶습니다. 좋은 책을 출간하는 것이 꿈이라면, 좋은 편집자와의 만남도 꿈꾸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