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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 diary jenny Aug 28. 2021

[픽션11] 스티커를 버리며, 가슴이 쿵쿵쿵거리는 K.

나우, 댓즈오케이. 아이돈케어!




조그맣고 하얗던 내 어릴 적 한적한 우리 동네는 여러 가지 이유로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아기자기한 꽃들이 옹기종기 피어있는 아름드리 그 동네에서 친구들과 뛰어노는 시간은 정말 행복했다. 그러나 그런 평화로운 곳에도 악취 나는 더러운 하수구는 있었으니, 동네 친구들 중 유독 딱 한 명이 조그맣고 하얗던 나를 세상 쓰레기 대하듯 너무나도 미워했던 것이다. 쿵쿵쿵 가슴이 쿵쿵쿵. 비린내 나는 애기같다며 따돌리고, 말도 잘 못하고 심지어 말소리도 작다며 바보 취급을 하는 등 어린 나의 마음을 조금씩 그러나 끊임없이 계속 때리고 찢었다. 그랬던 그 아이가 동창 누군가의 지나가는 말에 의하면 내가 사는 동네 근처에 지금 살고 있다는 것이다. 쿵쿵쿵 가슴이 쿵쿵쿵. 뭐? 수많은 동네 중에서 왜 하필 내가 사는 곳 가까이에 그 아이가 사는 거지? 설마, 혹시 여기까지 조그맣고 하얀 나를 미워하기 위해 따라 온건 아닐까.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추적추적한 기억들이 떠오르면서 나를 뒤흔든다. 쿵쿵쿵 가슴이 쿵쿵쿵. 고요한 평상시에는 세상에서 나만 보이지 않는 유령 아니 괴물 아니 벌레 아니 마귀 취급을 하며 무시하던 아이였다. 나를 향해 한 번도 사람다운 표정을 보여 준 적 없던 그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내 코 앞에 귀여운 캐릭터가 가득한 스티커 한 장을 내민다. 이거 뭔데? 너 하라고. 아, 고마워. 이거 무지 예쁘지? 으응. 그럼, 이거 네 얼굴에 하나도 남김없이 다 붙여. 순간 심장이 오그라든다. 쿵쿵쿵 가슴이 쿵쿵쿵. 아, 어떡하지. 이제 나는 무슨 행동을 해야 하지? 그냥 웃어버릴까? 아니면 획 돌아서서 가버릴까? 이 스티커들을 얼굴에 다 붙여야 할까? 전부 다 붙여라고 했는데 하나만 붙이면 화를 내겠지? 생각에 생각에 생각에 생각에 생각. 쿵쿵쿵 가슴이 쿵쿵쿵. 캐릭터가 귀여웠던 그 스티커는 여전히  기억에 선명하다. 그 아이의 그 행동 역시 여전히 선명하다. 조그맣고 하얗던 떨리던 내 손과 놀란 핏줄의 벌떡거림도 선명하다. 당황한 내가 스티커를 떨어뜨려버렸던 그 순간의 가슴 철렁함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쿵쿵쿵 가슴이 쿵쿵쿵. 그 아이는 잊어버렸을지도 모를 나만이 기억하는 이야기일지도 모르지. 여전히 조그맣고 하얀 나도 이제는 뭐 상관은 없지만 말이다. 하나 불편한 건, 낯선 사람이 친해지자고 다가오면 그 다가옴의 두 배 더 멀리 뒷걸음치는 마음의 불편함 정도? 그것 말고는 조그맣고 하얀 내가 살아가는데 문제는 없다. 그런데 궁금한 게 딱 하나 있다. 아직도 그 아이에게는 내가 유령 아니 괴물 아니 벌레 아니 마귀처럼 보일까? 여전히 조그맣고 하얀 내가 그 아이를 한 번 마주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 싶다. 쿵쿵쿵 가슴이 쿵쿵쿵. 상상만으로도 여전히 쿵쿵쿵 가슴이 쿵쿵쿵거리지만 딱 한 번만 정말 딱 한 번만 마주치고 싶다. 지금 내 손에 들린 한 장의 귀여운 스티커 속 캐릭터들이 들썩들썩거린다. 아니 쿵쿵쿵거리는 것 같다. 그 아이를 만나게 되면 스티커를 선물해 줘야지. 조그맣고 하얀 미소로 말해줘야지. 안녕? 유령 아니 괴물 아니 벌레 아니 마귀 취급했던 내가 이제는 네 눈에 보이니? 그럼, 내 얼굴에 네가 직접 이 귀여운 스티커를 하나도 남김없이 다 붙여줘. 못하겠다고? 그럼, 나는 이제 유령 아니 괴물 아니 벌레 아니 마귀가 아닌 거야, 알겠지? 쿵쿵쿵 가슴이 쿵쿵쿵거리니? 괜찮아. 28년 동안 보관해 온 이 스티커는 이제 찢어  버릴 테니까. 같은 동네 살더라도 우리 더 이상 마주치지 말자.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거야. 안녕!



(재미로 생각하고 행한 왕따 행위는 분명한 범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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