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든다는 것에 관하여
울산에서 기거한 지 어느덧 5년, 서울 떠난 지 7년이 된 이 시점에서, 광화문에 출장을 다닐 기회가 생겼다. 무료한 삶을 보내고 있던 와중에 광화문은 독서하기 알맞은 곳이었고, 10초 남짓의 고민은 10분 거리의 교보문고 광화문점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했다. 이왕 책도 읽고, 글도 써보자는 당찬 포부를 가지며 당당히 지하철 쪽 후문으로 입장했고, 여태 그래왔듯이 드넓게 펼쳐진 책들의 위용에 정신을 잃을 뻔했다.
다행히 정신을 붙잡으니 그제야 주변에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는데, 더위를 피해 서점으로 대피를 온 외국인부터, 학습지를 사러 온 학생들, 자기 계발서를 넘기고 있는 청년들까지 그곳에 있는 모두가 자신의 독서를 하고 있었다. 나 역시도 이런 산들바람에 몸을 맡기고 싶었고, 그 순간이 독서에 빠져보고 싶다는 욕망의 발로이자 지금 쓰고 있는 이 글,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의 시발점이 되었다.
원래는 제목을 <교보문고 탐방기>로 하려고 했으나, 이미 그 이름을 가지고 있는 글이 있어, 유의어를 찾아보던 중 너무 쓰기 좋은 단어 '사즐(査櫛)'이 있어, 해당 시리즈의 제목을 <교보문고 사즐기>로 정했다.
사즐(査櫛) : 빗질을 하듯이 샅샅이 세밀하게 조사함.
해당 시리즈가 끝날 때쯤이면 교보문고에 먼지 한 톨 없도록 모든 책에 눈도장을 찍게 하는 것이 서브 목표 정도 되었는데, 딱 맞는 단어여서 기용했다.
사람들은 계획을 세울 때, 그 처음에 의미를 담아두기 마련이며, 나 역시도 그런 고질병을 참지 못하고 읽고 싶은 책, 나에게 도움 되는 책 보다 <시작>이라는 것에 의미가 있는 책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돌아다녔고, 열심히 하자며 동기 부여 일으키는 책들은 대부분 자기 계발 섹션에 있기에, 나는 그리로 갈 수밖에 없었다. 본격적으로 진열되어 있는 책들의 제목들을 훑어보았는데, 이들은 하나 같이 "너는 이렇게 해야만 해"라는 느낌이 가득했다.
너무 답답했다.
책들이 모여 있는 코너에서 빠져나왔고
중앙 통로로 대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통로 중앙의 트레이에서
오늘의 책을 발견했다.
평소 같았다면 고르지 않았을 것이다. 책을 의도적으로 길목에 배치한 서점의 상술이라며, 저런 뻔한 장사에는 당하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이 책에는 이끌림이 있었다. 성장이 끝나고, 이제는 늙어가기 시작하는 나에게 이만큼 <시작>이라는 울림을 줄 수 있는 제목이 있을까? 어느새 나는 집을 가는 버스에 타고 있었으며, 내 가방이 딱 책 한 권의 무게만큼 무거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1. 노화를 미화하지도 악마화하지도 않는 것이 중요하다.
2. 언제가는 불행해질 것이 분명하니, 지금부터 불행해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어리석은 일이다.
3. 이별하는 자세로 살아가는 것은 죽음과 그에 따른 끝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삶의 기본자세다.
이 책은, 하루하루 스스로가 달라짐을 느끼는, 그리고 남은 삶의 기간이 길지 않은 노인들을 위한 책이다.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작가가 살아온 인생 역시 책 한 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작가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싶은 바는 명확하다. 겉으로는 나이가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하며 이런 일이 일어나는 당위성을 설명해 주지만, 그 안에는 나이 든 사람들을 위로해 주는 따듯함이 느껴진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두 손 꼭 잡고 이 손을 놓지 말자는 다짐을 준다.
책을 마무리하니, 들춰봐서는 안 될 비밀을 본 기분이 들었다. 어떤 태도와 생각을 가지며 살아야 할지 방향도 제시해 주었지만, 아무래도 당장 읽기에는 공감보다는 짐작에 가깝지 않을까? 이 책을 부모님께 선물해 드리며 이번 글을 마치겠다.
총총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