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문고 사즐(査櫛)기. 2

좋아하는 건축가 한 명쯤

by 북끄럽냥


광화문 출장이 익숙해질 무렵, 가족과 합정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본 계획은 교보문고 광화문점을 꼼꼼히 훑는 것이었는데, 식당 바로 앞 교보문고 합정점이 보이니 어찌 참새가 방앗간을 그저 지나치랴...

이번에 리뷰할 책은 일련의 과정에 결과가 되시겠다.


2_1.jpg 교보문고 합정점 입구




시리즈의 제목을 '교보문고 광화문점 사즐기'라고 짓지 않아서 다행이다..




지난번 글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어떤 책을 읽을 지 고를 때는 항상 의미를 부여하려는 고집이 생긴다. 시작을 다짐하는 글을 썼으니, 이번에는 한 걸음 나아가는 책을 선택해야 할까? 혹은 나만의 역사를 써야 한다는 느낌으로 역사서를 읽을까? 등의 질문들에 묘하게 설레는 감정이 묻어 너무나도 어려운 선택을 강요한다.


그러다 막상 선택한 책은 이런 의미와 전혀 관련 없는 책이었다. 표지가 끌린 것도, 장르가 끌린 것도 아니었지만 무심코 던진 한 마디 같은 제목이 내 이목을 끌어당겼다.



K772834898_t2.jpg "좋아하는 건축가 한 명쯤", 장정제



좋아하는 건축가 한 명쯤은.. 있으면 좋지 않을까?




의식주,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으로 있어야 할 3요소로 꼽는다. 각 요소들의 예술적인 의미를 일컷는 단어들을 생각해보면, 의(衣)의 경우 패션(fashion), 식(食)의 경우 플레이팅(plating)등으로 명확한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 하지만 주(住)에는 위와 같이 예술과 총체되어 이야기할 수 있는 단어가 있는가?


건축이라고 하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건축을 기술과 예술 그 사이 어딘가로 인식하며, 인테리어 디자인 등이라고 하기에는 주(住)자체를 포괄적으로 설명함에 있어서 부족함이 느껴진다. 왜 거주 공간 자체를 예술로써 표현한 단어가 없는 것일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1. 주(住)에 예술을 엮으면, 거주 공간으로써 역할에 하자가 발생할 수 있다.

> 베르나르 추미의 라빌레트 공원은 혼란스러운 형태에 초창기 세계 최악의 공원 3위로 비평받은 적이 있다.


2. 주(住)는 의(衣)와 식(食)에 비에 호흡이 길다.

>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몇 일 정도가 걸리는 의, 식에 비해 주는 예술로써 바라보기에 너무 긴 시간을 들인다. 안토니 가우디 이 코르네트는 1883년 수석 건축가로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건축을 시작했으며, 1926년 사고로 생을 마감하였고, 2026년 해당 건축물의 완공을 기대하고 있다.


> 고전주의, 르네상스, 바로크 부터 시작해 해체주의, 포스트 모더니즘까지 건축에 붙혀지는 설명은 곧 그 시대를 의미한다. 즉, 예술로써 주(住)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 시대 자체를 예술로 바라보기에 총체되는 단어가 없는 것은 아닐까?




내가 사유한 내용들을 책에서 주로 다루지는 않는다. 이 책은 19명의 건축가의 일대기를 각각 포괄적으로 다룬다. 비록 각 건축가의 건축 스타일과 형식을 깊게 다루지는 않지만, 각 거장들이 가지고 있는 건축에 대한 신념을 맛볼 수 있다.


당신이 좋아하는 건축가는 누구인가?


이 질문을 끝으로 이번 글을 마무리하겠다.



총총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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