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세상, 흔들리는 나
현재는 나의 결과물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비축된 경험이 있다. 바로 이런 것들이 모여 지식이 되고 재주가 된다. – 박길상
흔들리는 세상, 흔들리는 나
IMF와 금융위기 때 많은 어른들이 흔들렸다. 직장과 사회가 더 이상 나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어른들은 톡톡히 경험했다. 코로나 이후 바뀌고 있는 세상에서 또 한 번 많은 이들이 흔들리고 있다. 이렇게 흔들리는 세상에서 무수한 진동을 경험하며 우리들은 살아간다. 게다가 한번 실패하면 다시 회복하기 힘든 사회 구조적 현실 속에서 많은 이들이 우울증과 자살 충동을 겪고 있다. 초고속 성장, 세계 최고의 IT 국가라는 화려한 외형 속에서 자살 1위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들은 자신에게 과부하된 일터와 집에서의 이중노동으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경험한다. 그래서 젊은 여성들은 이제 비혼을 선택하거나 출산을 포기하기도 한다. 밀레니얼 세대들은 IMF와 금융위기 때 무너진 자신들의 부모들을 보면서, 부모와 사회도 자신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라는 사실을 일찍이 터득한다. 또 전쟁과 같은 취업전쟁에서 결혼과 육아를 포기하고 사회가 원하는 정답이 아니라 자신만의 답을 찾아 다른 방식의 삶을 창조해간다.
한 TV 프로그램에서 엄마와 아들이 등장했다. 아들은 카이스트 출신이지만 어느 날 폭탄 같이 선포한다. “난 그동안 엄마가 원하는 시키는 대로 다 했다. 이제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하며 살겠다.”라며 그는 글 쓰는 여행 작가의 삶을 선택한다. 아들의 그런 선택 속에 엄마는 할 말을 잃는다.
주입식 교육으로 통제된 환경에서 자란 우리들은 자신의 진정한 열망에 귀 기울 여유도 갖지 못한 채 살아왔다. 부모와 사회가 원하는 것을 아무런 의심도 없이 쫓고, 그것이 나의 선택인 줄 착각했다. 그래서 뒤늦게 자신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좇아 새로운 인생을 살려는 많은 이들을 주변에서 본다.
도종환 시인은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며 피었나니!”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흔들림이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한 존재를 파괴할 정도라면 문제가 있다. 흔들림에서 단단함으로 가기 위한 사회적, 정서적 자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자원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을 개인에게만 탓할 수 있을까. 그 속에서 살아가는 흔들리는 어른들은 불행하다.
우리의 불행에는 이유가 있다.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의 저자 김누리는 교수가 되기 전 독일에서 8년을 지내면서 한국 사회에 대한 질문을 품게 된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본다. 독일 사회는 한국과 여러 모로 궤적이 비슷했다. 두 국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과 분단의 운명을 공유했고, 국가 규모도 비슷했다. 통일 이전의 서독과 지금 남한 인구도 비슷했고, 통일 이후 독일은 약 8천4백만 인구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독일 사회와의 비교를 통해 한국사회의 문제를 진단한다. 그는 책에 이렇게 말했다.
“유교적 윤리의 억압, 부모로부터의 억압, 여성에게 강제된 어떤 루틴들도 억압이다. 육아도 여성에게 강제된 것, 또한 자본주의로부터 비롯된 억압이 우리를 짓누르고 있지요. 왜 꼭 직업을 가져야 되지? 왜 꼭 돈을 벌어야 되지? 그런 강박관념도 일종의 억압이라 할 수 있다. 나의 행동을 알게 모르게 통제하는 사회적 시선 그 자체도 억압일 수 있다.”
저자는 “독일의 68 혁명은 모든 세계에 영향을 주었지만, 유독 한국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라고 말한다. 68 혁명이 일어나게 된 결정적인 역사적 계기는 베트남 전쟁이다. 이때 많은 사람들은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가치 질서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 의문 속에서 기성세대가 이루어 놓은 것은 사실 ‘거대한 억압의 체제’이고, ‘이것을 혁파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모두가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던 시기에 한국은 박정희 시절이었고, 그는 좌익이라는 오해를 무마시키기 위해, 미국 편을 들어 적극적으로 베트남 전쟁에 30만 명가량의 군인들을 파병한다. 이는 68 혁명이 우리나라에 도달하지 못하게 되는 요인이 된다. 68혁 명이 우리나라에만 도달하지 못한 것이야말로 한국 현대사에서 결정적인 사건 중 하나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는 이것이 한국의 문화를 다른 나라보다 반세기 가량 지체시킨 중요한 사건이라고 진단한다.
우리를 둘러싼 무수한 억압과 가부장적인 권위는 주어진 환경과 체제에 질문을 품지 못하게 한다. 질문을 하는 순간 반항아로 찍히거나 사회에 순응하지 못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믿었던 부모와 사회가 자신의 삶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한 순간, 그리고 주변이 원하는 대로 살았지만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발견한 순간, 그때서야 당연했던 삶에 의문을 던진다.
성실하게는 살아왔지만
나 또한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 못한 채 자라왔다. 그저 학교 공부를 따라 그리고 정해진 성적에 맞춰 자신의 한계를 긋고 살아왔다. 상처가 있었지만 그것이 상처인 줄도 모른 채 착함으로 포장했다. 주위의 의견과 생각에 맞춰 나의 의견은 묵인하고 방치한 채 살아왔다.
성실히는 살았다. 그렇게 살면 되는 줄 알았다. 누구도 ‘너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라. 네 자신으로 살아라’고 말해주는 이가 없었다.
『행복한 나라에서 살면 나도 행복할까』의 저자 전병주는 스물여섯 청년 때 행복한 비법을 찾아 행복한 나라로 여행을 떠난다. 8개월 동안 11명의 전문가들에게 행복에 대한 조언을 듣고, 행복한 나라로 꼽히는 5개 나라에서 150여 명의 사람들을 만나며 인터뷰한다. 덴마크, 아이슬란드, 코스타리카, 베네수엘라 비누아투, 이렇게 다섯 나라를 돌면서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행복에 대한 다음의 공통된 다섯 가지 질문을 한다.
당신은 행복한가요?
무엇이 당신을 행복하게 하나요?
지금 걱정하는 건 무엇인가요?
돈이나 자동차 같은 물질적인 요소가 당신에게 의미하는 건 뭔가요?
인생의 목표를 말해주세요.
이 질문에 대한 답에서 발견한 통찰을 ‘행복의 재료 여덟 가지’로 정리해서 소개한다. 대부분이 익숙하고 평범한 내용들이었다. 가족의 삶을 챙기기, 현재에 집중하기, 단기 목표에 관심 갖기, 다음 세대에 책임을 가지고 관심을 갖기 등이다. 그중 가장 마지막으로 언급한 하나가 인상 깊었다.
“때로는 싸움꾼이 되자”
어느 나라의 젊은이들은 사회의 구조와 제도에 깊은 관심을 갖고, 더 나은 행복 환경을 창출하는데 결코 침묵해서는 안 됨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주어진 상황에 순응하지 않고 목소리를 높이고 싸움꾼이 되었다. 이것이 행복의 재료 중 하나였던 것이다.
초중고, 일과 결혼과 양육, 주어진 삶에 순응하며 성실히 살아왔다. 그러나 그 상태에 균열을 가져다 줄만큼 싸움을 걸어보지 못했다. 질문하지도 의심하지도 않는 삶, 그 속에서 무수한 흔들림을 괜찮은 척하고 살아온 삶, 그 속에서 나의 존재는 살아 있지 못하고 오랜 시간 겉으로만 단단함을 가장한 채 숨만 쉬고 있었다.
싸움꾼이 되어 자신의 행복을 쟁취해갔던 어느 나라의 시민들과 젊은 청년들처럼, 이제 어른들은 단단한 척하는 가면을 벗어버리고 자신의 흔들림을 인정하며, 그 해답을 찾아 가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