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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마음 Jan 05. 2022

대한민국에서 워킹맘으로 산다는 것

남자로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처음 상상한 날


여성들은 스스로 물결을 일으키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 제니스 캐플린





남자로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처음 상상한 날 


 우리 집은 딸 셋 아들 하나로 난 그중의 장녀다. 아들은 막내로 그의 존재는 누나들에게 가려 미미했다. 그야말로 딸들이 활개 치는 가정이었다. 막내가 남자라고 해서 더 대우해 주거나 그런 기억이 없다. 오히려 딸들 중심의 가정이었기 때문에 세 자매는 정말 자유롭게 살았다. 부모님은 바쁘셨고, 공부에 대한 강요도 없었다. 때문에 우리 자녀들은 각자 알아서 공부하고 진로를 찾아갔다. 


 사회생활을 경험하는 초반만 하더라도 내가 여성이라는 것을 그리 의식하고 살지 않았다. 내가 여자인 것에 대해서 어떤 불만이나 문제의식도 없었다. 


 그러나 아이를 낳고 나면서부터 어떤 불편한 자극들이 자꾸 나를 건드렸다. 나는 조금씩 불만과 짜증이 가득한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물론 아이를 먹이고 씻기는 과정 자체가 노동인 만큼 나의 체력이 받쳐 주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감정 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더 깊은 불편함은 다른 것에서부터 왔다. 


 남편과 나는 밖에서 똑같은 노동을 감당하고 집에 들어왔지만 엄마인 나는 집에서 더 고강도 노동을 해야 했다. 남편은 온유하고 부드러운 성품의 소유자였다. 때문에 내가 부탁하는 것을 크게 마다하지 않고 잘 감당해 주었다. 그러나 나는 그 또한 짜증이 났다. ‘내가 꼭 부탁을 해야만 하나, 부부라면 같이 짐을 지고 감당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남자나 여자나 똑같이 바깥에서 일하는데, 집에서는 여자만 왜?’라는 불만들이 고개를 들었다. 그런 생각들이 부정적 감정을 유발했다. 집에서의 모든 일은 공평하지 않았다. 남자와 여자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처음 느끼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이가 유치원에 가는 것을 챙겨 주어야 하는 어느 날이었다. 그 전날 너무 고된 일들이 있어서인지 아침에 일찍 눈뜨기가 힘들었다. 그날따라 남편은 내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아이를 챙기고 있었다. 그때 남편한테 얼마나 고마운 마음이 들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남자들은 이런 서비스를 평생 받으며 사는구나’ 하는 생각이 올라왔다.


 그렇게 작은 불만의 씨앗이 내 안에 퍼지면서 나는 처음으로 ‘내가 남자로 태어났으면 어떠했을까’라고 상상해 보게 되었다. 내 인생에서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던 상상 말이다. 긍정적인 상상이 아니었다. 여자로 살아가는 지금의 내가 너무 싫고 힘들어서 떠올린 상상이었다.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축복은 지금도 남자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다. 아이를 출산하고 교감하는 과정은 여성만이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선물이고 축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양육하는 과정에서 일하는 엄마에게 더욱 많이 부과되는 책임은 내 존재를 갈수록 쇠약하게 만들었다. 





대한민국 워킹맘들의 삶은 여전히 고단하다


 통계청의 2014년 생활시간 조사 자료를 분석한 내용을 보면, 맞벌이하는 아내의 가사노동 시간은 남편의 7.4배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2020년 통계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여성가족부가 2020년 공개한 ‘제4차 가족 실태 조사’결과에 따르면 가정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가사노동과 자녀 양육 등을 아내가 전담하는 비율이 남편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같은 해 9월, 전국 1만 997가구를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시장 보기, 식사 준비, 청소 등 가사노동을 아내가 한다는 응답은 70.5%로 나타났다. 남편과 아내가 똑같이 하는 비율은 26.6%, 남편이 한다는 비율은 2.8%로 나타났다. 아내가 남편보다 25배 정도의 가사노동을 더 하는 셈이다. 자녀 양육과 교육도 아내(57.9%)가 한다는 비율이 남편(2.9%)이 한다는 비율의 20배에 달했다. 






아내에게도 아내가 필요하다


 여자는 어릴 때는 남자와 똑같은 교육을 받고 사회생활을 같이 시작한다. 하지만 엄마라는 이름이 주어진 후부터 남자보다 여자의 책임과 의무가 더 늘어난다. 남편이 많은 것을 도와줄지라도 가정의 모든 것을 기획하고 주도하고 그 일을 분담하는 것은 엄마의 몫인 경우가 많다. 이런 불공평한 일이 있다니. 


 누구는 그럼 ‘일을 그만두면 될 거 아니야’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에게 일은 단순히 생계수단을 넘어 삶의 의미를 주는 것이다. 그동안 한 번도 내가 여자로 살아온 것에 대한 회의나 어려움이 없었는데, 여성으로 사는 삶이 처음으로 너무 힘겨웠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감정들과 불편한 생각들에 ‘여자들은 모두 이렇게 살아야 하나?’, ‘다른 여자들도 나와 비슷할까?’라는 물음표가 생겼다. 나는 그 답을 찾기 시작했다.  


 “모두에게는 아내가 필요하다. 심지어 아내들도 아내가 필요하다. 아내들은 돌보고, 그들은 날아다닌다.”


 『더 와이프』라는 소설에 나오는 문장이다. 이 소설은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지금보다 더 남성 중심적인 세상에서 자신의 재능을 펼칠 수 없었던, 오히려 자신의 재능을 숨기고, 온전히 ‘남편의 아내’로서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야 했던 한 여성의 삶을 담고 있다. 부부의 이야기이지만, 제목과 같이 ‘아내’에 더 초점을 둔 이야기다. ‘아내’가 화자로 등장하기 때문에 아내의 심리와 생각들을 통해 이야기가 흘러간다. 


 책 속의 ‘아내’는 작가에 대한 열망을 갖고 있으며 그 재능도 뛰어났다. 하지만 자신의 재능은 묻고, 작가로서의 자질이 부족한 남편의 소설을 대필하며 온전히 헌신한다. 세 아이를 떼어 놓으면서까지 어떻게 그렇게 남편을 끔찍이 내조해 내는지. 그 과정들을 소설은 상세히 묘사해 간다. 부부가 다 글쓰기에 몰두하느라 세 아이를 방치하기도 한다. 그로 인해 막내아들의 정서는 매우 불안하다. 


 아마 당시에는 여성이 재능이 있더라도 주체적인 삶을 사는 것은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자신만의 독립적 삶을 펼치는 여성 모델이 많지 않았고, 현장에서 뛰고 있는 선배 작가 또한 행복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설의 끝은 아내가 써 준 소설로 인해 남편이 전 세계 모든 작가들의 선망의 대상인 핀란드 헬싱키 문학상을 수상하러 가는 장면이다. 여기에서 화자인 아내는 점차적으로 자신의 삶을 감싸고 있는 공허함과 기만을 보게 된다. 그녀는 남편과 상을 받으러 간 그곳에서 드디어 자신 안에 억압해 왔던 진실을 대면하고 고백한다. 


 “맞아, 공정하지 않았어. 세상에서 가장 불공정한 거래였어. 그리고 나는 그걸 덥석 잡았어. 난 내 작품을 쓰고, 내 시간을 가지고, 잠시 기다리고, 세상이 변하기 시작하는 것을 지켜봤어야 했어. 하지만 어쨌든 아직도 충분히 바뀌지 않았어.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남자들의 내면의 삶, 남자들의 목소리에 매료되고 있잖아. 여자들이 남자들한테 홀딱 넘어갔지. 남자들이 이겼어. 나도 인정해. 그들이 통제권을 가졌지. 주위를 좀 둘러봐. 텔레비전을 켜 봐. 남자들만 국회에 있잖아. 촌스런 넥타이에다 미역 줄기처럼 빗어 넘긴 머리 하며….”


 “나 이제 가게 해 줘. 이미 충분하잖아.” 


 소설 속 배경과 비교한다면, 지금의 여성에게 주어지는 위치와 혜택은 훨씬 낫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일과 육아로 인한 여성의 과로와 번아웃. 남모르게 눈물을 삼켜야만 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는 현재도 진행 중이다. 그 속에서 대한민국의 일하는 엄마들은 ‘여성’이라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회의한다. 또한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자녀의 모든 문제에 대해서 자신을 탓하며 죄책감을 안고 살아간다. 


 집과 일터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오늘도 열심히 달리는 엄마들의 아우성이 들린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하루를 2배속으로 살아야 하는 워킹맘들의 자존감은 살아남기 힘들다. 


 그래서 남자에게만 아내가 필요한 것이 아니고, ‘아내에게도 아내가 필요하다’라고 말하고 싶다. 아내에게도 재능이 있고, 자신을 성장시키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론 지지해 주고 인정해 주는 아내가 필요한 것이다. 


 지금도 많은 워킹맘들은 일과 육아의 병행을 힘들어하면서도 일을 그만두지 못한다. 그것은 단순히 생계의 문제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일은 자신의 삶에 대한 응답이기 때문이다. 나이를 불문하고 나를 찾고자 하는 열풍은 이를 대변해 준다. 


 물론 소설의 배경인 1950년대와 다르게 지금은 여성에 대한 많은 부분들이 개선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적 제도나 문화, 인식에서 변화되어야 할 것은 많다. 책은 이렇게 워킹맘으로 살아가는 삶에 딸려오는 여러 불편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주었고, 또 다른 질문들을 던져 주었다. 



<하루 한 페이지 나를 사랑하게 되는 독서의 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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