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여자를 분노하게 하는가
섬세하면 스트레스를 잘 받아서 힘든 면도 있지만 기분이 좋을 때나 기쁠 때는 행복을 더 깊이 맛볼 수도 있습니다. - 다케다 유키
왜 그렇게 감정이 마비되었어?
신입 연수 때 일이다. 내가 속한 조직은 입사하면 세 달 동안 숙식하며 훈련을 받아야 했다. 자아와 내면에 대한 이해, 상담 스킬, 그리고 업무에 필요한 다양한 강의를 소화하고 책을 읽고 리포트를 제출해야 했다. 첫 2주는 자기 성찰에 집중했다. 자신의 내면에 계속 집중하는 시간은 쉽지가 않았다.
신입 훈련 담당자가 한 번은 지나가는 길에 “은혜는 왜 그렇게 감정이 마비되었어?”라는 말을 던지며 가셨다. 순간 ‘무슨 말이지?’, ‘내가 그 정도였나?’, ‘내 감정이 절제된 정도가 아니라 마비된 정도인가?’하는 생각에 잠시 상처를 입었다.
훈련 담당자는 직설적인 화법으로 훈련생들을 직면시키는 재능이 있었다. 나 또한 말 없는 아이로 오래 살아왔기에 감정 표현이 절제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대학 때 많은 내면적 변화를 겪어 왔기에 그 말로 내가 규정되어지는 것이 조금은 억울했다. 물론 나중에 개인적으로 사과를 하시기도 했지만, 지금도 남아 있는 기억이다.
‘우리가 상처 받았어’라고 말할 때, 보통 감정에 입은 상처를 말한다. 나는 내 존재감을 철저히 감추고 살아왔다. 그것은 당연히 감정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 오랜 시간 감정을 부인하거나 억압했다. 그러나 내면이 치유되면서 자연스럽게 감정적인 치유도 일어났다. 버스를 타고 지나가는 구름을 보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작고 소소한 것에 감동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갔다.
이러한 감정은 자존감과도 매우 상관이 있다. 자존감은 감정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자존감은 자기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내적 느낌과 생각이다. 감정은 우리 인간됨의 한 부분이기에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그런데 그 감정을 오랜 기간 무시하고 회피하고 억압하며 살아왔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다. 그런데 어떻게 자존감이 높을 수 있겠는가.
감정 조절을 못하는 사람은 억압과 폭발을 반복한다. 상처를 입고 억울한 마음이 들고 심장이 뛰고 혈압도 오르지만 그 신호를 무시한다. 그러다가 견딜 수 없을 수 정도가 되면 상황과 관계없이 폭발한다. 결국 그렇게 화를 낸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하며 죄책감과 우울감을 경험한다. 화풀이를 당한 사람도 상처와 실망 속에서 좌절감을 느낀다.
반면 감정을 잘 조절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고, 이 감점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 인식한다. 지금의 감정이 단순히 현재 사건의 영향으로만 발생한 것이 아니라 과거의 어떤 경험과 오늘의 상황 및 컨디션까지 합쳐서 발생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감정이 격해져도 함부로 행동하지 않는다. 큰 숨을 쉬거나, 산책을 하면서 화가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리며 냉철히 그 이유를 파악한다. 이들은 남들이 눈치 채지 못할 방법으로 자신을 감정을 인지하고 조절한다.
자신의 감정을 인지하고 잘 다스릴 줄 아는 기술은 자신과의 관계뿐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너무 중요한 부분이다. 그런데 자신의 감정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내가 감정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나를 좌지우지하게 만든다. 그렇게 되면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폭발함으로 자신과 타인을 헤친다. 이는 자신과 타인 모두를 고통에 빠트리며 자존감 또한 망가트린다.
이렇게 감정을 조절하고 적절히 표현하는 것은 나의 자존감, 즉 내가 느끼는 행복감과도 연관된다. 나는 심리, 상담 서적들을 탐독하고 감정 코칭을 받으며 나 자신을 이해하고 훈련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 번의 책 읽기로 오랫동안 내 몸에 남아 있는 감정의 습관들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수없이 반복적인 독서로 몸에 새겨진 습관들을 씻어내고 바꾸어가야 한다.
얼마 전 한 지역 시민 센터에서 ‘자신의 퍼스널 컬러 찾기’라는 강좌를 삼 개월 수강한 적이 있다. 과거에 ‘색 테라피’라는 상담 수업을 들은 적이 있기에 이 강좌는 색을 어떤 관점에서 풀어갈지 궁금했다. 자신의 퍼스널 컬러를 찾기 위해서 미용, 패션계에서는 이미 많이 적용하고 있었다. 초중고에서 수업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만의 색깔, 즉 퍼스널 컬러를 찾으면서 자존감을 높일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퍼스널 컬러를 공부하면서 빨간색이 그냥 한 가지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빨간색에도 정말 다양한 빨간색이 존재했던 것이다. 이 차이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은 세상을 보고 누리는 감각도 달라질 것이다.
감정에도 색깔이 있다. 감정에 대해 공부하면서 정말 다양한 감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전에는 수백 개 이상의 감정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평상시에 쓰는 감정은 정말 몇 개 안 된다. 시중에 나와 있는 감정 카드도 보면 60여 개뿐이 되지 않는다. ‘화가 난다’라는 감정 속에는 사실 더 다양하고 미묘한 감정들이 있는데, 우리가 쓰고 있는 감정의 언어는 너무 한정적인 것이다.
그래서 감정 코칭하는 분들은 감정 카드를 벽에 붙여 놓고 보면서 하나씩 사용하는 연습을 하라고 조언한다. 안 쓰는 근육을 쓰려고 하면 힘이 드는 것처럼 감정의 근육도 안 쓰면 줄어들지만 쓰면 쓸수록 붙는다. 언어를 갖는다는 것은 그리고 다양한 언어를 쓸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내 존재가 풍성해지고 자존감을 단단히 세우는 길이다.
무엇이 여자를 분노하게 하는가
아이를 낳고 일터에서 연차가 높기 전에는 ‘여성’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않고 살았다. 그러나 육아를 시작하고 남성과의 뭔가 다른 처지를 느끼게 되면서 내 존재는 약해지고 상처 받기 시작했다. 조직에서 연차가 높아지기 시작하면서 조직에서 여성인 나는 늘 소수자에 속했다. 그러면서 작은 것에도 더 예민한 내가 되어갔다.
한 지역의 남성 대표와 통화한 일이 있다. 그는 대뜸 ‘당신은 어떤 선배 여성과 같지 않다’라는 말을 했다. 즉 ‘왜 그 여성 선배 같이 하지 않는가?’ 하는 말이었다. 순간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지?’, ‘내가 왜 그 선배 여성과 비교를 당해야 하지?’하면서 무척 당황하고 화가 났던 경험이 있다. 우리 조직에 상위 여성 리더십의 모델은 사실 정말 하나 둘 손꼽힐 만큼 적었다.
그 지역 남성 대표가 말하는 선배 여성은 일을 그만 둔지 오래되었지만 정말 모성이 강한 엄마 같은 리더십이었다. 한 사람을 정말 집착할 정도로 깊이 품고 이끌었지만, 그녀가 퇴직한 후 그로 인한 성취와 함께 후유증도 있음이 드러난 상황이었다. 그런데 ‘왜 내가 그녀와 비교되어야 하지?’ 하는 마음이 너무 올라왔던 것이다. 반면 나는 겉으로는 여릿여릿해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독립적이고 털털한 면이 있다. 어쩌면 여성이지만 외형적으로는 보통 남성성이라고 말하는 형태의 리더십이라고도 할 수 있다.
조직에서 여성 리더십 모델이 없으니 유일한 그 여성 선배와 나를 비교하면서 나만의 독특한 리더십을 비하하는 말을 들었을 때 속이 상했다. 겉으로는 여성 리더십을 외치지만 이것이 남성이 가진 생각의 한계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여성성을 가진 남성 리더십도 있고, 남성성을 가진 여성 리더십이 있다. ‘여성은 이래야 한다는 것’은 고정관념일 뿐이다.
이해가 부족한 조직 문화 속에서 늘 소수자였던 나는 독립성이라는 기질을 포장 삼아 늘 괜찮은 척했다. 아니 어쩌면 ‘독립성’도 남성이 가득한 이곳에서 내가 살아남기 위한 나만의 생존전략이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상처 받았고 정말 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었다.
『무엇이 여자를 분노하게 하는가』의 저자 해리엇 러너는 “남성의 분노는 남의 탓으로 돌리는 폭력(투사)으로 여성의 분노는 자기 탓으로 내면화하는 우울(내사)로 나타난다.”라고 말한다. 분노를 느끼고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심하게 금기시해 왔던지 여성들은 자신이 화가 나 있다는 사실 조차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분노는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메시지, 우리가 상처 받고, 권리를 침해당하고, 욕구와 바람이 무시당하고 있다는 메시지”라며, “우리의 자아가 우리의 믿음과 가치와 욕망이 너무 심하게 훼손되고 있다는 경고”라고 말한다. 그래서 억압과 폭발이 아닌 건강하게 분노를 표현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말 도서관에서 이 책을 우연히 발견하고 읽었다. 이 책은 내가 힘든 이유를 알게 해 주었고, 내 마음에 숨겨진 마음을 읽어주었고, 어떻게 저항하고 분노하며 행동해야 할지를 처방해 주었다. 그동안 얼마나 내 안의 분노를 숨기며 살아왔는지, ‘좋은 여자 증후군’에 걸려 얼마나 내 자신을 지우며 살아왔는지를 직시할 수 있었다. 침묵은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못한다. 나에게 시기적절하게 찾아와서인지 이 책은 나의 인생 책 목록에 올라 있다. 나중에 후배들에게도 추천해서 함께 읽기도 했다.
어릴 때는 상처를 그대로 흡수하며 그것을 컨트롤할 능력이 부족하다. 그러나 상처는 선택할 수 있는 것임을 어른이 되어 배웠다. 상처 받고 내 존재가 약해질 때마다 나는 책으로 달려갔고, 책 속의 언어로 힘을 얻었다. 상처에 머물지 않고 타인이 규정짓는 목소리에 나를 정의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독서는 상처 받지 않을 선택의 을 힘을 키워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