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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마음 Jan 05. 2022

독서로 자존감을 높일 수 있을까

읽는 사람들은 자기 목소리를 낸다



나의 언어의 한계는 나의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자존감과 언어


 낮은 자아상은 좋은 언어를 많이 섭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어를 먹고 산다. 요즘 ‘말’을 주제로 한 책이 많이 나온다. 똑같은 내용이라도 말 한마디만 바꾸어줘도 상대의 반응은 확연히 달라진다. 


 요즘 조직에서 밀레니얼 세대들과의 소통하는데 애를 먹는다. 그들은 자신의 의견과 생각을 당당히 주장하며 자신의 복지를 챙기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는다. 조직의 리더들은 자신과 너무도 다른 그들과의 소통을 어려워한다.『리더의 말 그릇』의 저자는 조직의 리더들이 어떻게 밀레니얼 세대의 감정과 욕구를 읽고 구체적으로 코칭하고 멘토링 할 수 있을지를 알려준다. 


 저자는 “말 그릇은 말의 근원, 곧 마음을 뜻합니다. 말 그릇이 크다는 것은 마음을 넓고 깊게 사용할 줄 안다는 뜻입니다.”라고 말한다. 곧 말은 마음이 밖으로 드러난 것이다. 말을 공부한다는 것은 곧 마음을 공부하며 다스릴 줄 안다는 것과도 같다. 


 좋은 언어를 들어 본 경험이 부족한 리더들은 새로운 세대와의 소통을 참으로 난감해한다. 자신이 경험한 것들만 되돌려 줄 수 있다. 그래서 다시 공부하면서 좋은 언어를 수혈받고 몸에 새기며 과거의 말의 방식들을 씻어낼 필요가 있다. 


 우리의 마음을 형성하는 것은 좋은 언어부터 온다. 자존감이란 자기가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는 주관적인 것이다. 자존감이 좋은 사람은 어릴 때부터 좋은 언어를 듣고 자랐다. 그러나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좋지 않은 언어를 듣고 자랐다. 


 예를 들어 자존감이 좋은 아이들은 ‘괜찮아’, ‘열심히 노력했구나’, 충분해’, ‘고마워’, ‘사랑해’, 등의 긍정적인 언어를 주로 들었다. 그러나 자존감이 낮은 아이들은 ‘그럴 줄 알았어.’, ‘누굴 닮아 그러니.’, ‘이것만 잘하면 더 완벽할 텐데.’, ‘넌 틀렸어.’ 등과 같은 부정적인 언어를 들으며 자란다. 

 어릴 때는 어떤 말이든 여과 없이 다 흡수하며 진리로 받아들인다. 그중에 진리가 아닌 것도 많다. 그러나 어릴 때 새겨진 그 언어들은 이미 내 안에 인격화되어 나를 지배하고 있기에 그 거짓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심하면 평생 그 거짓 언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자신의 잠재력을 꽃피우지도 못한 채 자신의 인생을 망치는 경우도 있다. 이제 부모와 사회, 미디어가 새겨놓은 잘못된 말들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비우고 채워라


 책에는 나쁜 말들이 거의 없다. TV나 영화, 만화 같은 것은 자극적일 수 있지만, 책은 보통 좋은 언어와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스테디셀러나 고전은 여러 세대에 걸쳐 검증된 것이기에 더욱더 울림이 크다. 시나 에세이 등의 문학은 더욱 섬세한 언어들로 우리 내면의 깊은 곳을 건드리며 감동을 가져 준다. 


 우선 비워라. 비우지 않고 채울 수 없다. 비우지 않으면 끊임없이 낡은 것과 새로운 것 사이에서 갈등한다. 어떻게 잘 비울 수 있을까? 깨끗한 물로 하루 동안 몸에 달라붙었던 더러움들을 깨끗이 씻어내듯이 책 속의 좋은 문장들로 날마다 내 몸에 새겨진 거짓 언어들을 씻어내야 한다. 씻지 않고 매일 새로운 화장과 옷을 입는다고 상상해 보라. 끔찍할 것이다. 


 과거의 언어뿐 아니라 우리는 하루를 살면서도 그리 좋은 언어들을 듣고 살지는 못한다. 일터에서 집에서 필요한 말만 하거나 지적질만 당하지 긍정적인 언어들을 잘 접하지 못한다. 지인 중에 긍정 에너지와 언어로 가득 찬 사람이 있다면 축복이다. 그러나 책은 내가 원하면 언제나 접할 수 있다. 책 속에는 당신을 긍정해주고 동기 부여해주며, 당신 안에 있는 무수한 잠재력을 끌어내 줄 언어들로 풍성하다. 그러니 매일 샤워하듯 매일 책을 읽고 그날의 온종일 시달렸던 거짓 언어들을 씻어내라. 


 그리고 비웠다면 새롭고 신선한 언어들로 당신을 채워라. 좋은 언어로 당신의 정신과 영혼이 맑아졌다면 신선한 언어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채워가는 일이 필요하다. 과거의 낡은 언어들은 계속 당신을 괴롭힐 것이다. 비슷한 사건이 일상에 터질 때, ‘그래 내가 그렇지 뭐’, ‘난 원래 그래’, ‘그 사람 말이 맞았어’, ‘난 별 수 없는 놈이야’라면서 다시 과거로 회귀한다. 그래서 더욱 적극적으로 날마다 자존감을 세워주는 진짜 언어를 새기는 것은 너무 중요하다. 과거에 당신의 무의식에 새겨진 언어는 그리 쉽게 씻겨지지 않는다. 


 당신의 잠재의식에 좋은 언어를 계속해서 새겨가라. 어떻게 새길 수 있을까? 《왜 책을 읽는가》의 샤를 단치는 “독서는 뇌리에 새기는 문신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책만 읽는 것으로만 새기는 정도는 약한다. 자신에게 와닿는 좋은 언어는 더욱 적극적으로 필사하고 기록하면서 새겨가야 한다. 또한 목소리로도 선포도 해 보아라. 말하면서 선포된 문장을 당신의 귀로 들으면 몸에 새기는 효과가 더해진다. 그러면 과거의 좋지 못한 언어들을 떨치는 데 더욱 좋은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읽는 사람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모두가 긍정하는 분위기 속에서 말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모두가 안 된다고 말하며, 부정하는 분위기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그 용기의 밑바탕에서 자신을 긍정하는 높은 자존감이 있다. 


 독서법에 대한 책들을 보면 독서 고수를 소개할 때 남성들이 주로 소개된다. 그것은 남성들에 의해 읽고 쓰는 것이 주도된 시대가 많았기 때문이다. 읽고 쓸 수 있는 자가 결국 권력을 잡게 되고, 역사는 힘이 있고 기록한 사람들에 의해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여성이 결코 열등하거나 부족해서가 아닌 것이다. 


 『여성의 천재성』이란 책의 저자는 특히 ‘여성의 천재성’에 대해 주목한다. 천재란 기존의 편견을 뛰어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 가는데 기여한 사람들이다. 저자는 남성으로 구성된 한 교수들 모임에서의 필독서 선정 목록에 여성이 쓴 책은 하나도 없음을 발견한다. 그녀는 각 분야에서 여성을 거의 찾아볼 수 없거나 극히 소수인 것은 정말 ‘여성이 유전학적으로 남성과 다르기 때문일까?’ 아님 ‘정말 기여한 바가 없어서일까?’라고 질문한다. 


 시대의 편견 속에서 여성들의 타고난 재능은 꽃피우기 전에도 사그라들었다. 재능은 그것을 키워줄 환경을 만났을 때, 발견되고 자라 간다. 모차르트 못지않게 재능이 있었던 누나, 아인슈타인 못지않게 탁월했던 그의 아내 등의 여러 여성들은 자신들의 재능이 그것이 꽃피울 환경을 만나지 못해서, 일찌감치 사그라들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천재성을 드러내며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을 생각하는 여성은 세상이 자신을 어떻게 볼지 생각하느라 많은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라고 저자는 말한다. 때론 목숨이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그녀들은 당당했다.


 읽고 쓰는 여자들은 힘이 세다. 읽고 쓰는 여자들은 주어진 여건, 편견과 억압에 상관없이 자신의 목소리를 발한다.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의 저자 장영은은 말과 글로 세상의 변혁에 동참해온 25명의 여성들을 소개한다. 소개된 여성들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그러나 고통을 글로 승화해 간다. 현존하는 여성도 있고 그렇지 않은 여성들도 있었다. 자신의 삶과 시대의 고통과 씨름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발하기를 멈추지 않는 강한 생명력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책 속 그녀들의 말을 들어보자. 


 책 속의 한 문장 한 문장에 자신의 전부를 걸었다. 무엇보다 모두 예외 없이 책을 지독하게 사랑했다. 도서관과 서점은 그들에게 또 다른 집이자 학교였다.


 책을 읽고 또 읽고 정말 책만 읽었다. 닥치는 대로 읽었다. 책이 나를 이곳에서 이끌어내 줄, 나 자신으로부터 꺼내 줄 유일한 것이었다. 


 괜찮은 글을 만들어 내려면 쓰고 다시 쓰고 또다시 쓰면서 수천 시간 동안 방 안에 혼자 있어야 했다.


 『자기만의 방』의 작가 버지니아 울프는 천은 피곤해하지 않고 영원히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이 아닐까?라고 상상하며 지상에서 맡았던 글쓰기라는 과제를 성실하게 마친 후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토지』로 유명한 박경리는 암투병 기간에 집필을 시작했고 집필 시간만 25년이라고 한다. 원고지로는 3만 1200장 분량이다. 아버지는 일찍이 집을 나가 다른 여자와 살았다. 대학에 가게 된 박경리는 아버지를 찾아가 대학 등록금을 이야기했지만 뺨만 맞고 돌아왔다. 어머니에 대해선 연민과 경멸, 아버지에 대해서 증오의 극단적 감정 속에서 만들어진 고독 속에서 그녀는 공상의 세계를 쌓았다고 한다. 


 나딘 고디머는 정규 교육이 그녀의 호기심과 욕망을 충족시켜 주지 못했다고 한다. 그녀는 극단적인 인종차별 제도가 지배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살면서 문학도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후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이 백인으로서 누린 특혜를 알게 되었을 때 느꼈던 부끄러움과 충격을 평생 잊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는 많은 책을 읽었고, 읽는 만큼 썼다. 나딘 고디머는 83세에 『베토벤의 16분의 1은 흑인』을 발표했고, 3년 후 『인생』을 공개했다. 나딘 고디머는 2014년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다음 작품을 준비했다. 


 이렇게 읽고 쓰는 여자들은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당당히 살아갔고, 말과 글로 목소리를 발했다. 


 좋은 언어는 당신의 자존감을 채워준다. 책을 읽으면 좋은 언어를 계속 만나게 된다. 좋은 언어는 과거에 당신 안에 새겨진 부정적이고 거짓된 메시지를 씻어줄 것이다. 그리고 계속적인 그 언어들을 읽고 쓰고 부지런히 새기다 보면 어느새 긍정적인 언어들이 당신의 존재에 장착해 자존감은 더욱 탄탄해질 것이다. 이렇게 독서를 통해서 비우고 채우는 과정을 매일 반복해라. 그러면 역사 속 수많은 용기 있는 여성들과 같이 시대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발할 수 있는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하루 한 페이지, 나를 사랑하게 되는 독서의 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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