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슬럼프 대처법

글쓰기 슬럼프 극복하기








매일 글을 쓰는 작가들에게도 슬럼프는 올 수 있다. 슬럼프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슬럼프는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부진 상태가 긴 시간 동안 이어지는 상황”이라고 한다. 글 쓰는 분야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직업의 영역에서 슬럼프는 존재한다. 슬럼프는 언제 올까? 슬기롭게 슬럼프를 극복하는 방법이 있을까? 각 사람이 개성이 다르듯 슬럼프에 대처하는 방법도 다 다를 것이다.


《내가 글이 된다면》의 저자 캐시 렌첸 브링크는 글쓰기는 “굴 까는 칼로 가장 연한 속살을 에는 듯한 고통이 따른다.”고 말한다. 자신을 낱낱이 파헤치는 일은 잔인하고 공격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저자는 이 일을 포기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어쩌면 글쓰기에는 그런 고통이 따른다.


다만 “우리가 이 일에 마음을 쏟고 의미를 부여한 만큼 자기 연민과 자기 돌봄의 비중도 높여야 한다”라고 다정하게 권면한다.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걷고, 샤워하고, 좋아하는 책을 읽고, 자연과 가까이하고, 요리하고, 한잠 늘어지게 자던지 말이다.


슬럼프는 왜 오는 걸까? 나에게 슬럼프가 올 때는 같은 일을 질리도록 할 때이다. 나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글쓰기에 비해서 독서는 나에게 쉼이다. 그러나 때론 그 좋아하는 일이지만 재미가 없어질 때가 있다. 그때는 뇌가 피로해져서 좀 쉬어 주거나, 새로운 자극을 가져다주는 책을 읽어야 할 때이다.


내가 글을 쓸 때 겪는 슬럼프는 대체로 이런 것들이다. 정작 내 깊숙한 내면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겉만 핥는 듯한 글을 쓰고 있을 때, 글이 잘 안 써질 때, 쓰고는 있지만 내 글로 인해 스스로 의미를 발견하지 못할 때, 이런 현상들이 계속 나타날 때이다.





나의 원씽 재점검하기



영감은 잊어버리고 매일 글 쓰는 습관을 들여라.

습관은 영감보다 훨씬 더 많은 책을 썼다.

뮤즈가 당신을 찾아오길 바란다면

그녀가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한다.

그러니 책상에 앉아 있어라.

_필립 풀먼



매년 책을 쓰기로 마음을 정했지만 계속 직면하는 사실은 재능과 영감보다 더 중요한 글쓰기의 자질은 습관이라는 것이다. 그저 세상과 잠시 단절하고 자신과 약속한 시간과 공간에 머물러 있는 것 말이다. 그렇게 자신을 책상 앞에 붙들어 맬 수만 있다면 자기를 대면하는 고통도, 글이 안 써지는 비참함도 어느 순간 다 극복할 수 있게 된다.


다이어리가 만나야 할 사람으로 꽉 차 있을 때, 모든 모임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일정이 꽉 차 있을 때 중요한 한 가지를 놓치게 된다. 나에게도 그런 적이 있다. 하루가 꽉 차 있고, 모든 일정과 만남이 소중했다. 재미있었고, 열정이 있었고,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러나 뭔가 허전했고, 쫓기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만난 멘토 한 분이 물으셨다. “원씽이 무엇입니까?”라고. 쉽게 답변할 수 없었다. 그때 딱 한 가지가 있었다면 내가 원하는 만큼 충분히 글을 쓰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최고에 비한다면 가장 나쁜 것이 될 수 있었다. 내가 다른 중요한 모든 일정을 소화해도 나만의 동글로 들어가는 이 시간을 지키지 못한다면 나에게 나쁜 것일 수 있었다. 이미 나는 알고 있었지만, 누군가의 다시 직면하게 된 것이다


자기만의 루틴이 어떤 이유로 깨질 때 그래서 결국 써야 할 분량을 쏟아내지 못했을 때 나에게는 슬럼프가 찾아온다.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 제시간에 제출하지 못한 과제가 늘 남아 있는 듯한 아쉬움이 내 존재와 일상 주변에 서성거린다. 이때 이러한 감정에 오래 머물면 안 된다. 그 감정은 결국 자신을 향한 탓과 원망으로 이어지고, ‘그래 결국 넌 글쓰기에 소질이 없어.’ ‘자신과 약속 하나 지키지 못하면서 무슨 작가야.’ 등과 같은 온갖 자기 비하로 이어진다.


이때는 하루빨리 이런 부정적인 감정을 떨쳐 내고 일어나야 한다. 그리고 삶을 재 정돈해야 한다. 어디서 우선순위가 꼬인 건지, 정말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내 삶의 목적과 비전은 무엇인지, 그 비전 아래에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투두리스트는 무엇인지 말이다.







글쓰기와 마라톤


그다음은 내 몸을 외면하고 일에만 매진했을 때이다. 글쓰기를 단순히 정신적인 일이라고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글쓰기는 많은 부분 몸의 노동이다. 단순히 몸과 마음이 지칠 때, 잠이 부족하거나 운동이 부족하거나 여러 가지 모임과 만남을 소화하느라 정작 내 마음을 충분히 쉬게 하고 돌보지 못할 때 슬럼프가 온다. 몸이 무너지면 마음도 의지도 무너지는 것이다. 그래서 삶의 루틴 안에서 긴 호흡을 가지고 꾸준히 글을 써 가기 위해서는 체력 관리를 잘해야 한다.


100km 울트라 마라톤 완주,

철인 삼종 경기,

매년 마라톤 참가로 25회 풀마라톤 참가 (2007년 시점)


누구의 기록일까?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무라카미 하루키의 기록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장편소설을 쓴다고 하는 작업은 근본적으로는 육체노동이라고 나는 인식하고 있다. 글을 쓴다는 것 자체는 두뇌 노동이다. 그러나 한 권의 정리된 책을 완성하는 일은 오히려 육체노동에 가깝다.


하루키의 기록이 놀랍다. 마라톤 100km이라니. 꿈의 수치다. 그것을 완주할 수 있는 저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보통 작가 하면 집안에 틀어박혀 굉장히 내향적인 삶을 살수 밖에 없는 직업이라는 생각 때문에 매우 허약한 체질을 상상한다. 실제 하루키는 혼자의 삶으로도 충만함을 느끼는 내향적인 성격이 소유자인 듯하다.


하루키는 서른쯤 전업 작가의 삶을 시작하면서 건강에 문제를 느끼고 달리기를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운동을 할 수는 있지만, 이렇게 집요하고 꾸준하게 달리기하고, 온몸으로 고통과 희열을 느끼며, 자기 몸의 한계의 지점까지 밀어붙이는 작가가 또 있을까?


그는 이어서 이렇게도 고백한다.


그래서 마라톤 단련은 전혀 피로감을 느끼지 않고 매일 매일 집필 생활을 계속할 힘을 지탱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나 대해 말한다면, 나는 소설 쓰기의 많은 것을 매일 아침 길 위를 달리면서 배워왔다.

난 아직 글을 쓰는 것보다 책을 읽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고, 매년 책을 쓰기로 결단하고 이제 세 번째 개인 저서를 쓰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한 권의 정리된 책을 완성하는 일은 오히려 육체노동에 가깝다.’는 하루키의 고백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책을 읽든 글을 쓰든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은 굉장한 육체노동임을 절실히 깨닫는다.


올해 초 나 또한 체력이 약해지는 것을 느끼고, 요가와 조깅을 일주일에 서너 번 하고 있다. 달리고 요가하며 심장의 요동침과 온 근육의 고통을 느낀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 고통이 지나간 후에 오히려 힘이 생긴다는 것이다. 몸과 정신에 무언가 활력이 돋는 것을 느낀다. ‘소설 쓰기의 많은 것을 매일 아침 길 위를 달리면서 배웠다’는 그의 고백처럼 소설 쓰기는 끈기와 인내가 필요한 일이고, 그로 인한 발생하는 고통의 면면을 참고 버텨야 했을 것이다. 소설과 달리기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그 이면 삶의 본질은 다 비슷하다.


하루키는 자신의 묘비명에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고 쓰고 싶다고 한다. 이 문장 읽으면서 달리기하며 얼마나 멈추고 싶은 순간들이 많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순간의 수많은 유혹을 물리치고 끝까지 달렸고, 그 힘으로 끝까지 소설을 써 갔던 그가 있었기에 우리는 그의 수많은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인생도 그와 비슷할 것이다. 오늘 하루는 달리기를 쉬고 싶고, 책 읽기를 쉬고 싶고, 글쓰기를 쉬고 싶은 날이 얼마나 많은가. 하루키의 그 집념과 투지, 고통을 통해 오히려 살아있음의 감각을 생생하게 느끼며 멈추지 않았던 그를 본다. 그리고 내 안의 집념과 생의 감각을 다시 다져본다.






논제 연구원 (1).png 또 다른 세계로 이어줄 책쓰기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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