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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마음 Oct 12. 2023

글과 삶이 포개어져

에세이를 쓴다는 것






     

오랜 시간 책은 내가 언제나 달려갈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었다. 답답하고 궁금하고 불편하고 불쾌하지만, 뿌연 안갯속을 걷듯이 그 정체를 잘 몰랐을 때, 하염없이 읽다 보면, 책 한 권이, 하나의 문장이, 한 편의 이야기가 전담 변호사인 양 딱 알맞은 언어로 내 맘을 대변해 주었다. 지루하며 페이지가 잘 안 넘겨지는 책도 있었지만, 쏟아지는 문장에 하염없이 마음을 내놓으며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다. 그렇게 문장에 파묻혀 그곳에서 안전함을 느꼈고 한없는 위로와 해방감을 느꼈다.      


과거의 상처에 매여 자기 연민에 빠져 허우적댈 때는 심리서를, 대대로 믿는 집안이지만 성경과 교회, 나와 부모님의 믿음의 격차로 인한 혼란 속에서 방황할 때는 신앙 도서를, 첫 아이를 낳고 이론과 달리 맘대로 안 되는 내 모순을 뼈저리게 직시할 때는 육아서를, 남성과는 뭔가 다른 여성에 대한 차별적 사회적 시선과 대우를 조금씩 감지하며 생겨나는 의문과 쪼그라드는 존재감을 느낄 때는 페미니즘 도서가 나의 언어와 목소리를 대변해 주었다.      


짙은 외로움이 존재 어딘가에 항상 새겨져 있는 나였다. 이 외로움의 근원이 어디서 왔는지 물어볼 용기도 내게는 없었다. 그러나, 책은 안전하게 질문하고 답을 궁리해 볼 수 있는 수단이었다. 그런 내 고민과 질문을 아주 멀게는 수천 년 전에, 이 순간에도 이미 누군가가 해 왔고, 감사하게도 그들은 글이라는 형태로 기록으로 남겨 놓았다. 놀랍고 반짝이는 문장들로 개인과 사회의 구석구석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작가들을 한없이 동경했다.      


내 결핍이 의문은 글과 가까워지게 했고, 이제는 밥 먹듯이 읽는다. 책의 언어에 그것이 가리키는 또 다른 가능성에 여전히 매 순간 감탄한다. 《슬픔의 방문》을 쓴 장일호 기자는 “그럴 만한 좋은 기사를 아직 쓰지 못해서, 대신 읽었다. 욕심과 허기가 나를 책 앞으로 데려다 놓았다. 읽는 사람은 자유로웠다. 재능 없음을 탓하지 않아도 좋았다.”라고 말한다. 이미 좋은 평가를 받는 기자도 작가도 늘 더 좋은 글을 쓰기를 갈망하며, 자신의 재능 없음을 탓한다. 글쓰기를 애찬 하며 함께 쓰자고 독려하는 나이지만, 나 또한 작가처럼 늘 더 좋은 글을 동경한다.      


그녀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럴 만한 좋은 기사를 아직 쓰지 못해서, 대신 읽었다. 욕심과 허기가 나를 책 앞으로 데려다 놓았다. 읽는 사람은 자유로웠다. 재능 없음을 탓하지 않아도 좋았다.”  

    

쓰는 사람은 안다. 독서는 오히려 쉼의 시간임을. 자신의 재능 없음을 탓하지 않아도 됨을. 그렇게 나도 완전한 자유를 만끽하며 읽는다.     

 

그리고 이어서 말한다.      


“책에서 취한 살과 뼈에 내 삶의 많은 부분을 마음대로 이어 붙였다. ‘읽기’는 자주 ‘일기’가 되었다. 밑줄을 따라 걷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나는 도무지 해결되지 않는 질문을 들고 책 앞에 서곤 했다. 삶도, 세계도, 타인도, 나 자신조차도 책에 포개어 읽었다. 책은 내가 들고 온 슬픔이 쉴 자리를 반드시 만들어 주었다.”    

 

이렇게 작가의 문장에 또 감탄한다. 나도 읽으며 쓰고, 쓰며 읽는다. 이제는 단순히 독서 권수를 채우기 위함도 아니고, 완독 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내 삶을 대변할 또 다른 언어를 찾기 위해, 제대로 된 질문 하나 못하는 무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가 미처 살피지 못하는 삶의 언저리가 있을까 봐, 그래서 여전히 나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에서 조금이라도 해방되고자 읽고 또 읽는다. 작가가 쏟아낸 온갖 문장을 내 삶과 포개어 읽고 읽으며 나만의 글로 만들어 본다. 그렇게 글이 삶이 되고, 삶은 글이 되어간다.     






화려하고 정답을 제시하는 듯한 책이 있다. 이런 책을 읽으면 나도 이렇게 살 수 있을 것 같고, 마음까지 한껏 고무된다. 반면 결론도 없이 그저 아프고 부서진 그 모양 그대로를 조명하는 이야기도 있다. ‘그래서 어쩌란 말이야?’라는 마음의 반사가 일어난다. 실용성과 효율성을 중시했던 나의 성향이 자동으로 반영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이런 이야기가 더욱 끌리고, ‘그래, 이게 진짜 인생이었지!’ 하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든다. 아프고, 다친 채로 있지만, 그럼에도 실낱같은 작은 희망으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 속에서 나 또한 그런 사람임을 인정하며, 그 대열에 서본다.      


애독가 들은 말한다. 책은 정답이 아니라 또 하나의 질문이라고. 처음에는 책의 모든 말을 의심 없이 믿었고 그것이 정답이라 생각하며 추종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의 말을 조금은 이해한다. 하나의 질문에 수천 개, 수만 개의 답이 존재할 수 있음을. 책은 그렇게 우리에게 정답이 아닌 질문을 제시하는 도구임을. ‘너 잘 살고 있니?’, ‘제대로 살고 있는 거 맞니?’, ‘어떻게 사는 것이 너다운 거니?’라며 속삭이는 말로 때론 번개처럼 내리친다. 우리가 살아온 삶, 빚어진 모양이 다르듯 각자의 모양대로 자기만의 답을 써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 답은 삶으로 쓸 수도 있고, 글로도 남겨볼 수 있다.      


출판 시장이 어렵다고 하지만, 책은 쏟아져 나온다. 책 속을 헤집고 다니다 보면, 내 맘을 비춰주는 보물 같은 문장을 만나게 되고, 이는 잠잠했던 뇌를 갑자기 분주하게 만드는 생각거리들을 한가득 안겨준다. 그러나 밀려드는 다음 문장과 이야기들은 고민할 틈을 주지 않고 그 전의 생각은 어느새 밀려나 있다. 그렇게 감동적이었지만 허무하게 독서가 끝날 때가 많았다. 그때 즘인가 내 안에 조악한 글이라도 써 보야겠다는 마음이 일어난 게. 잘 쓰려고 하기보다, 기록한다는 마음으로 써 왔고, 지금도 그렇게 쓰고 있다. 그것이 독서에 대한, 내 삶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인 거 같아서.      






작년부터 공동저서 에세이반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6기째 진행 중인데, 마지막 퇴고와 첨삭이 거의 끝나가고 있다. 처음에는 그저 가볍게 이 과정을 온라인에서 열었다.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단순히 그 길을 터 주고 싶어서.      


이곳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수개월 함께 했던 북클럽 멤버, 이른 새벽 5시, 줌에서 만나 얼굴도 모른 채 함께 책만 읽었던 사이인 사람, 온라인에서의 느슨한 연결 속에서 우연히 찾아온 만남들, 이 공간이 아니면 절대 만나지 않았을 사람들, 얼굴로만 간간히 보거나 닉네임으로만 익숙했던 사이였지만 드디어 그들의 인생 이야기 한 편을 글로 진하게 만나게 된다. ‘아 그랬구나.’, ‘이런 일들을 겪으셨구나.’,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었네.’, ‘이런 아픔도 있으셨구나.’ 나는 그들의 퇴고를 돕고 첨삭을 곁들이며 그들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저마다 사연은 달랐지만. 이렇게 글을 쓰겠다고 용기 내어 찾아온 그들의 한 가지 공통점은 언젠가부터 책과 글을 가까이했다는 점이다. 글이 글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전쟁과 같은 일과 육아라는 그 바쁜 틈새를 비집고 들어앉아 조금씩 읽고 쓰며 성실히 자기 삶을 매만져온 사람들. 모두가 여성이다. 같은 여성으로 감동이 밀려온다.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글도 잘 쓰신다. 삶의 틈새 공간에서 조심스레 다듬고 빚어낸 생각의 결과들이다.     


에세이는 자신의 삶의 조각들을 소재로 삼는다. 아프든 슬프든 기쁘든 자신을 드러내는 행위이기에 한 편으로 작으면 작은, 또 누군가에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누군가는 에세이 쓰기를 두려워하지만, 그렇기에 누군가에게는 아주 매우 매력적인 글쓰기이다.      


글을 쓰고, 수없이 매만지는 과정을 통해서 가볍게 흘려버렸던 자신의 역사를 다시 한번 진하게 만나며 치유를 경험한다. 실수와 상처가 범벅된 삶이었을지라도 의미 한 조각을 발견하며, 배움을 얻는다. 삶을 관조하며 주어진 생이 얼마나 감사한지 삶에 대한 경의와 애정을 다시 갖게 된다. 초고를 쓰고 수없이 퇴고하는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삶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직시하는 용기를 얻으며, 과거의 나를 포용하며 화해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미래를 당당히 살아갈 의미를 새롭게 만들어간다. 이렇게 글쓰기는 과거에서 미래로 향하는 여정이다.      


더군다나 함께 쓰면 외롭지 않다. 포기는 없다. 누구는 조금 빠르고 누구는 조금 느릴 수 있지만, 서로를 의지하며 어떻게든 마감이 된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이기에 비슷한 듯 또 다른 결의 글들은 공감과 작은 연대감을 형성해 준다. 날카롭게 또 공감으로 그녀들의 글을 읽고 다듬으며, 읽고 쓰며, 행간을 서성이며 배워 온 그녀들의 삶에 내 삶도 덧대 본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글을 힘입어 주어질 미래로 한 걸음 나아간다. 세상에 작은 이야기를 건네기로 용기 낸 그녀들의 시작과 도전을 조용하게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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