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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마음 Nov 04. 2023

하루키의 여행 기록법



최근 하루키의 신작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소설이 뜨겁다. 노벨 문학상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출판사의 홍보 덕인지, 하루키의 유명세로 인한 것인지 많은 이들이 읽고 있음을 SNS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런 흐름과 함께 얼마 전 아는 분이 하루키에 대해 강의를 한다고 해서 지인도 만날 겸 겸사겸사 다녀왔다.      


그의 최근 신간은 출간 전에 이미 13만 부나 팔렸다고 한다. 그는 출간된 책마다 상을 받고, 소설뿐 아니라 달리기, 재즈, 고양이 등 다양한 주제로 책을 써 왔다. 재즈 카페를 운영한 경험이 있는 그는 좋아하는 재즈를 더 공부하기 위해 영어를 파고들었고, 그 실력이 일취월장 늘어나 취미로 번역 일까지 하게 되었다고 한다. 재즈로 공부하게 된 영어가 취미로 번역일을 할 정도의 수준이라니 놀랍기만 하다 그에 대한 평가에 대해 호불호가 있지만, 많은 이들이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새벽 4시마다 일어나 매일 글을 쓴다고 한다. 쓰기 위해 달리고 (철인 3종 경기 포함하여) 길 위해서 썼다고도 말한다. 이렇게 하루의 루틴을 자신의 것으로 꽉 채우고 그것을 글로도 표현하여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그가 부럽기만 하다.      


강의를 들으니 그에 대한 무관심은 호기심으로 자라났고, 그가 쓴 책들을 가끔 찾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으로 손에 집어 든 책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여행에 관한 책이다. 하루키의 여행 이야기가 궁금했다. 『나는 여행기를 이렇게 쓴다』이라는 책인데, 제목 앞에는 ‘세계적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이름이 덧붙여 있다. 과연 세계적 작가는 어떤 마음으로 여행하고 기록했을까.      


표지에는 약간 촌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모자를 뒤로 쓰고, 선글라스를 낀 채, 손을 허리에 댄 포즈를 한 하루키의 사진이 담겨 있다. 내지 속에 그와 함께 움직인 사진작가가 찍은 풍경들이 담겨 있는데 모두 흑백이라 아쉬움이 있었다. 그래도 세계적 작가의 에세이인데 출판비를 아끼려고 흑백으로 했나, 아니면 여행 에세이 시장이 좋지 않나. 아니면 다른 의미가 담겨 있나 하는 여러 질문들이 떠다녔다.    

  

멕시코, 우동집, 무인도 여행 등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콘셉트의 여행 기록들이 담겨 있다. 세계적 작가가 쓴 작품이라 어렵거나, 문학적 표현이 아주 탁월하거나, 무슨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거나 그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간결하고, 화려하지 않고, 담담하고,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종류의 에세이였다.      






여행을 좋아하는 세계적인 작가 하루키는 여행 에세이를 어떻게 작업할까? 작가이니 꼼꼼하게 기록할까? 사진이나 영상도 메모의 한 종류이니 많이 찍을까? 여행 중에 글을 모두 마무리할까? 아니면 여행 후에 글을 쓸까? 등 여러 질문이 들었지만, 글 하나하나는 그 여행지에 대한 것뿐이었고, 하루키의 여행 글쓰기에 관한 작업과정 책 서문에 잘 담겨 있었다.       


“오히려 현장에서는 글쓰기를 잊어버리려고 한다. 카메라 같은 것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 여분의 에너지를 가능한 한 절약하고, 그 대신 눈으로 여러 가지를 정확히 보고, 머릿속에 정경이나 분위기, 소리 같은 것을 생생하게 새겨 넣는 일에 의식을 집중한다. 호기심 덩어리가 되는 것이다.


어쨌든 그때그때 눈앞의 모든 풍경에 나 자신을 몰입시키려 한다. 모든 것이 피부에 스며들게 한다. 나 자신이 그 자리에서 녹음기가 되고, 카메라가 된다... (중략) 현장에서는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다만 잠자코 구경만 하고 있을 뿐이다. 그 대신 작가는 여행지에서 돌아오고 나서부터가 힘이 든다. 사진은 현상을 하면 그것으로 끝나지만, 작가는 그때부터 작업을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책상 앞에 앉아서 메모한 단어에 의지해 머릿속에 여러 가지 현장을 재현시켜 가는 것이다.


대개 귀국해서 한 달이나 두 달쯤 지나고 나서 작업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경험적으로 그 정도 간격을 두는 것이 결과가 좋은 것 같다. 그동안 가라앉아야 할 것은 가라앉고, 떠올라야 할 것은 떠오른다.”    


 




하루키의 여행 글쓰기 작업 과정은 내 예상과는 매우 달랐다. 여행 후 기록을 완성된 글이라는 형태로 남겨야 하고, 더군다나 작가이기 때문에 글과 사진, 영상이라는 형태로 더욱 꼼꼼히 메모할 거 같은데, 그는 “나 자신이 그 자리에서 녹음기가 되고, 카메라가 된다.”라는 표현과 같이 온몸으로 그가 경험한 풍경과 사람을 기록하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눈앞의 풍경을 놓치고 싶지 않아 사진부터 찍어대기에 바쁘다. 그리고 그것이 가져다주는 부딪침과 통찰을 나라는 사람에 온전히 녹여내기도 전에 SNS에 올리기 바쁘다. 반면 세계적인 작가는 달랐다. 그는 오히려 이차적인 필터가 될 수 있는 모든 도구를 과감히 내려놓고, 힘들게 찾아온 멋진 풍경을 잊어버릴 수 있다는 위험성도 포기한 채, 오로지 몸의 감각을 믿고 눈앞의 풍경을 과감히 마주한다.      


나는 내 몸의 감각을 얼마나 신뢰할까? 사실 두렵다. 시간과 돈을 투자해 찾아온 여행지의 온갖 풍경을 놓치고 싶지 않고, 이미 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져 망각이 더 깊어진 듯한 내 몸도 신뢰하기 힘들다. 하루키는 타고난 천재여서 가능한 걸까? 아니면 그런 부분까지 훈련되어서일까? 평범한 나 같은 사람은 어떤 글쓰기를 해야 할까? 등 여러 질문이 떠다닌다.      


그뿐만 아니라 하루키는 여행 후 한두 달 뒤에 글을 쓴다고 한다. “아니 메모도 안 했는데 한두 달 뒤에 다 까먹으면 어쩌지?”라는 걱정은 내려놓아도 된다. 그는 오히려 “그동안 가라앉아야 할 것은 가라앉고, 떠올라야 할 것은 떠오른다.”라고 말한다. 기억에 남는 것만이 내가 써야 할 소재이며 진짜 내 것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공동저자 책쓰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 한 가지 큰 주제를 제시하지만, 모두가 풀어가는 방식, 이야기 소재는 저마다 제각각이라는 것이다. 하나의 글감이 주어지지만, 그 글감과 더불어 떠오르는 소재, 이야기는 같을 수가 없다. 각각의 DNA도 살아온 이야기도, 처한 상황도 다 다르기 때문이다. 공저는 보통 에세이 쓰기로 한 달도 되지 않아 원고를 마무리한다. 이렇게 빨리 마무리할 수 있는 이유는 에세이는 자기 안에 소재가 있으며, 그래서 빠르게 글로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오래전 이야기라도 우리 안에 절대 잊히지 않는 이야기 주제들이 있다. 같은 글감일지라도 그 글감과 부딪쳐 세상에 나와야만 하는 이야기가 꼭 있는 것이다. 그것만의 자신의 유일한 이야기이다.      


하루키의 여행 글쓰기도 그랬다. 똑같은 풍경을 사진 찍듯이 복제하려 하지 않았다. 물론 찍는 이마다 구도도 필터도 다른 것으로 어떻게 사진이 다 똑같을 수 있느냐고 따져 물을 수도 있겠지만, 그는 하루키만이 쓸 수 있는 글을 지향했다. 같은 풍경을 보지만 살아온 경험치가 시선도 다르기에 그의 말대로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여행 속 기억이 진짜 그가 써내야 할 글인 것이다. 하루키의 여행 글쓰기는 이렇게 탄생했다.      


쓰지 않으면 소멸한다. 우리 몸의 감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비게이션이 없을 때 얼마나 걸리든 우리는 자기 감각을 의지하여 길을 찾아갔다. 핸드폰이 없을 때 우리가 외우는 전화번호는 수개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기술은 이런 감각의 사용을 내려놓게 했고, 사용하지 아 결국 존재를 희미하게 했다.     


한 책에서 시각을 잃었음에도 TV와 연극계에서 여전히 활동하고 있는 한 배우를 소개한 글을 읽었다. 그 책의 저자는 그의 사정을 모른 채 연극을 보았더라면 그가 시각 장애가 있는지 몰랐을 정도로 그의 연기는 탁월했다고 말했다. 어떻게 시각을 잃었는데 연기를 할 수 있냐는 질문에 그 배우는 시각을 잃었기에 다른 모든 감각을 활용해서 다른 배우들과 소통한다고 말했다. 하나의 감각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은 마냥 불행할 것 같지만, 그로 인해 다른 감각이 열리며 발달하게 된다.      


기술의 발달로 많은 부분이 편리해졌지만, 하루 종일 손바닥만 한 모바일, 태블릿에만 의지하며 우리가 느끼고 경험해야 할 세계는 더욱 작아지지 않은지 모르겠다. 최첨단 기계는 없지만 우리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몸 안에 천연 녹음기와 카메라를 의지하며 멀리 또는 가까운  풍경을 담아내는 하루가 되면 어떨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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