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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아이

편안하고 다정한 마을 도서관


  “학교 마치면 바로 마을 도서관에서 만나자.”


  우리 집 초등학생 아이와 아침에 나누는 말이다. 집 앞에는 작은 마을 도서관이 있다. 동네를 둘러 볼 때 제일 먼저 찾아보는 곳이 도서관이다. 남들이 선호하는 학원 밀집 지역은 아니지만 가까이에 주민 밀착형 도서관이 있다는건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누구보다 기다렸다. 초등학교를 입학하면 유치원보다 이른 하교를 한다. 초등학교 입학 선물로 주어진 여유로운 시간을 도서관에서 값지게 사용하기로 했다. 입학하는 날 아이 손을 잡고 도서관 향하는 길을 안내 해주었다.


  특별하지 않은데 마음이 절로 드는 그런 공간이 있다. 내부 공간이 세련되지 않았지만 도서관으로서의 쓰임은 충분히 해내고 있는 곳이다. 한 눈에 다 들어오는 도서관은 아이를 다정히 품어 줄 수 있는 아담한 크기이다. 아이는 스스로 책을 빌리고 반납할 수 있는 절차를 어려움 없이 해낸다. 문이 열릴 때 마다 사서 선생님의 시선은 들어오는 아이들에게 머물러 있다. 아이들을 마주할 때마다 이름을 불러주며 기쁜 마음으로 맞아주시는 선생님들, 아이들이 도서관에 가면 관심 받고 사랑 받고 있음을 입으로 눈으로 알려주신다. 한 없이 다정하신 선생님들 덕분에 아이는 마을 도서관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우리 마을 도서관은 정말 따뜻한 곳이에요.”라고 말하는 아이는 따뜻한 도서관을 품고 잘 자라고 있다.


  휴대폰이 없는 아이에게 이 곳은 안전하게 보호 받을 수 있는 안전지킴이집이나 다름없었다. 도서관은 아이에게 엄마와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만남의 장소다. 책과 연결된 만남은 언제나 설렌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아이가 도서관에 있다 생각하면 늘 마음이 편했다. 집이자 놀이터인 도서관을 드나들던 아이는 어느새 도서관이 익숙한 아이가 되어 갔다.


  학교에서 마치면 아이와 난 어김없이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으로 가는 습관은 가장 중요한 루틴이 되어버렸다. 우리에게 도서관에 가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면서 가장 특별한 일이기도 했다. 학원보다 도서관으로 향하는 것이 우선 순위였다. 학원 하나 더 보내기보다 도서관에 머무르며 책도 읽고 놀다 오길 바랬다. 지적 희열은 문제집이 아닌 깊이 있는 책에서 느껴야 한다. 비고츠키는 “어린아이의 정신세계를 단순히 지식을 학습하는 장으로 바꾸지 말라. 아이에게 모든 에너지를 학업에 쏟아부으라고 강요하면 아이의 생활은 참혹해지고 만다.”라고 말한다. 아이에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을 학업에 온 에너지를 쓰고 있지 않은지 늘 점검한다. 학원 레벨보다 우리 아이의 독서 취향을 알아가는 것이 우선 순위이다. 학원 가기 바빠 책 읽을 시간이 없는 요즘 아이들과 같은 길을 걷지 않기를 바랬다. 조금이라도 똑똑하게 키우기 위해 많은 학원으로 아이를 내몰고 싶지 않았다. 도서관에서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경험을 누리게 해주고 싶었다.


  하교를 하면 곧장 학원으로 달려가야 하는 아이들로 오후 시간의 도서관 풍경은 늘 고요하고 한적했다. 우리는 사서 선생님과 더 친분을 쌓을 기회가 생겼고 여유롭게 책을 읽을 수도 있었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도서관에 갈 때 마다 매번 마주치는 여자 아이가 있었다. 당시 우리 아이보다 세 살이나 많은 소녀였다. 아이는 책상 한 켠에 여러 권의 책을 쌓아두고 한 권씩 책을 읽고 있었다. 나는 책이 쌓여 있는 것만 봐도 미소가 절로 나왔다. 아이와 잠시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어서 몇 마디 대화를 나누어 보았다.


"안녕? 자주 보네. 도서관에는 매일 오는거야?”

"네 자주 와요."

"학원은 안 다녀?”

"네 책 읽을 시간이 없어서 학원은 안가요. 있다가 엄마가 데릴러 오세요”


학원을 가게 되면 책 읽을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걸 지켜보는 엄마도 숨이 턱턱 막힌다. 아이는 책을 읽기 위해 학원을 다니지 않고 있었다. 다섯 시가 되면 도서관으로 오신다는 엄마는 아이에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귀한 시간으로 하루를 가득 채워주고 있었다. 소녀는 자신만의 고유한 책 취향을 만들며 독서 계단을 잘 올라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우리 집 아이도 그 아이처럼 도서관에 머무르며 엄마를 기다리고 있다.


  아이와 나는 짧지 않은 시간동안 도서관에 비치된 책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튼튼하고 낮은 서가가 아이에게 친근하게 다가왔다. "여기 있는 책들을 다 읽으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라는 엄마의 질문에 아이는 잠시 즐거운 상상을 했는지 가볍게 웃음을 짓는다. 먼저 책을 읽기 보다 서가에 꽂힌 책을 탐색하는 놀이를 했다. 아이와 함께 책을 탐색하는 시간은 아이가 무엇에 흥미를 느끼고 있는지 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어느 날은 책은 읽지 않고 도서관 서가 구경만 하고 나오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생각했다. 도서관마다 구비해둔 책들이 다르니 나름 도서관마다 특색있는 책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정돈되지 않은 어수선하게 꽂힌 책들도 정겨워 보였다. 찾고 싶은 책이 제 자리에 없어도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사서 선생님께서 찾아주시기도 하고 끝내 찾지 못한 책 덕분에 다른 책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제는 아이가 서가의 위치를 다 파악한 상태라 제 집 서가의 책처럼 편안하게 책을 꺼내 읽을 수 있다. 다른 사람이 찾는 책도 쉽게 찾아주는 도서관 꼬마 사서 선생님이 다 되었다.


마을 도서관은 소박한 규모라 많은 장서들로 가득 채워져있지 않지만 도서관을 지키는 사서 선생님들, 오고 가는 책 인연들과의 나눈 마음만큼은 꽉 채운 서가보다 다채롭고 풍요롭다. 빌게이츠가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은 우리 마을의 도서관이라 하지 않았던가, 우리 아이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모습을 도서관에서 찾기 바라며 오늘도 환대 받는 소박한 마을 도서관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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