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투른 편지는 더 넓은 세상을 보겠다는 약속이야
'4x4'하면 수학 시간에 질리도록 외웠던 구구단이 떠오른다. 또, 구구단 외우기 싫어서 뒷자리 친구와 몰래 하던 빙고 놀이가 생각나 쿡쿡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내게 4x4는 말 그대로 숫자일 뿐이었다.
이 동화는 처음부터 편견을 부수고 시작한다. '4x4: 아우 좁아'라고 생각한 넓이가 사실은 주인공 호(가로)가 하염없이 바라보던 병원의 천장이었음을.
호는 걷지 못하는 아이다. 핸드폰도 없고, 침대가 문 쪽이라 창밖도 볼 수 없어서 항상 천장의 열여섯 개의 정사각형들을 쳐다본다. 이런 호는 16개의 정사각형으로 여러 가지 놀이를 생각해 낸다.
16개의 정사각형으로 글자를 만들어보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의 성격이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빙고판에 적는다. 호가 만든 MBTI(성격 유형 테스트)같은 느낌도 든다. 이 16개의 사각형만이 제갈호의 세상이다.
그런데, 이런 호의 세계를 넓혀 줄 사람이 등장한다. 바로 새롬이.
이름부터가 '가로(제갈호)'와 '오새롬(세로)'인 두 사람은 쿵짝이 정말 잘 맞는다. 보안 때문에 서로가 있는 병실조차도 알 수 없지만, 병원 도서관에 있는 책에 쪽지를 붙이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호는 자신만의 놀이인 '빙고놀이'를 새롬이에게 공유하면서,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한다.
강아지를 그리는 이유는 내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야. 난 강아지를 좋아하거든. 근데 넌 누구야? 어느 병실에 있어?
자신의 세상을 넓혀 준 사람은 쉽게 잊지 못한다고 한다. 특히, 어릴 때부터 병원에 있던 호와 새롬에게는 더욱 서로가 소중한 친구일 것이다. 좁다고 생각했던 16개의 빈칸이, 점점 둘의 대화와 꿈들과 맞닿아 더 넓게 펼쳐진다.
학창 시절에 친구들과 쪽지를 주고받으며 순수하게 행복했던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별 얘기가 적혀 있는 것도 아닌데, '나와 너'만의 공간이 생긴 느낌에 괜히 기분이 몽글몽글해졌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그런 순간들이 막 떠오른다.
책을 읽으면서 최근에 개봉한 영화 <연의 편지>가 생각났다.
책상 서랍에 넣어져 있던, 한 통의 편지.
학교를 자세히 소개하는 그 편지를 보고 주인공 소리는 편지의 주인이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한 번도 서로를 만난 적 없음에도 강력한 인연을 느끼게 되는 것이 영화의 줄거리다.
어쩌면 친구라는 것도 거창한 게 아닐 수 있다. 서로를 만나지 못하더라도 마음만 통하면 인연인 것이다.
사랑보다 짙은 우정이 있을 수 있어. 그런 애정을 우정이라는 한 단어로만 표현할 수 있을까?
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흔히 누군가를 아끼는 마음의 경중을 따지고는 한다. 애정에도 농도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사랑보다 짙은 우정'이 있듯이, 애정은 수치로는 말할 수 없는 무언가다.
그러나 아름다움 뒤에는 언제나 현실이 있는 법이다.
호도 새롬과 이별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토록 가고 싶었던 집에 가게 됐고, 학교에도 다시 다닐 수 있게 됐다. 새롬과 함께 꿈꿨던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가는 것도 더 이상 상상이 아니라 현실이 될 수 있게 댔다.
그렇지만 새롬을 더 이상 볼 수 없기 때문에 호는 퇴원하는 순간에 망설인다.
항상 소중한 사람과의 인연이라는 건,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때 희미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아간다는 것은 곧 과거의 것들과 작별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다시는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이별이 '영원한 이별'이라고 할 수는 없다. 기억한다는 것은 언젠가 만날 여지를 주기 때문에.
이 작품이 그랬듯, 요즘 드라마나 영화, 또 다른 소설들은 '사랑'의 다양한 형태를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정석인 로맨스 외에도 사랑을 표현할 만한 수많은 애정이 있다는 걸 말하고 싶기 때문인 것 같다.
이 동화가 '사랑보다 깊은 우정'을 나타냈듯이 말이다.
그래서 더욱 여운이 남은 책이었던 것 같다.
특히, 그림 작가가 이 책의 몽글몽글한 분위기를 잘 표현해 냈다.
'16개의 정사각형'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인물들의 표정이나 장소 등을 생동감 있게 그려냈다.
그래서 새롬과 호의 우정이 점점 짙어지는 과정이 더욱 와닿는다.
그리고 소제목들도 센스 있었다고 생각한다. '강아지 그림과 강아지 독자, 가로와 세로, 빙고를 외치지 않는 빙고' 책을 읽고 나면 감탄하게 되는 제목들이다.
아이들도 알 것이다. 이 세상은 희망만 있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언제나 슬픔 뒤에 기쁨이 있고, 절망 속에 희망이 있고, 나아가는 것 뒤에 남겨지는 것이 있다. 그래서 세상은 예측불가 변화무쌍이지만, 그래도 나와 함께 희망을 꿈꾸는 누군가가 있기에 세상을 알아갈 수 있다는 걸 작가는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