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한 소설 모음집보다도 재미있는 신인 작가들의 이야기
1. 서울신문
서울신문의 두 작품이 선정된 이유는 ‘세심함’인 것 같았다. 확실히 요즘에는 주목받는 주제들이 명확한데, 그 와중에 ‘우리가 보지 못한 것(시)’을 조명한다거나 ‘과거의 유물이 돼 버린 것(소설)’을 다시 끄집어 온다거나 하는 세심함이 있었다.
(1) 시: 『묘사의 밀도』 김유진
https://m.seoul.co.kr/news/life/contest2026/2026/01/01/20260101037001
김유진 씨는 우리가 모르던 세계를 조명한다. ‘우리의 정보가 잠들어 있는 바다 밑 데이터센터, 거친 태풍 한가운데에 있는 잔잔한 태풍의 눈’. 시인은 보이는 것에 관해 묘사하고 싶지 않아 한다. 그보다는 보지 않은 것에 있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 희망을 둔다.
정말 유명한 슈뢰딩거의 고양이라는 실험이 있지 않은가. 상자 안을 열어보기 전까지 고양이가 살아있지, 죽어있을지는 모르는 것. 그래서 고양이는 살지도, 죽지도 않은 상태다.
우리의 삶이 지면이라면, 지면 밑 그림자의 공간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수없이 존재한다. 실제로 갑자기 마주했던 계엄 소식처럼 내가 알지 못한 공간에서는 계속해서 격동이 일어난다.
보통 작품은 ‘보는 것’을 묘사하기 마련인데, 이 작품은 ‘보지 못한 것’을 묘사하려 해서 인상 깊었다.
다른 신문사의 등단 시도 살펴봤는데, 이 작품이 가장 ‘물음표’로 남았다. 그만큼 읽은 후에 생각해볼 거리가 많았다는 뜻이다. 소용돌이치며 공기가 이동하는 태풍의 정중앙에 있는 태풍의 눈 공간은 ‘사실 공기는 움직이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것’처럼 얌전하기만 하다. 우리는 진짜 회오리(격동)를 거쳤을까? 코로나부터 시작해 끝도 없이 느껴지는 혼란기를 거치고 있는 우리가 이 작품을 읽으면, 과연 지금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이 맞는 건지 의심하게 될 것이다.
서울신문 심사위원이 했던 ‘나가 깨어지고 변화하는 시편을 찾으려 했다’라는 심사처럼, 허무주의를 넘어 새로운 관념을 제시해주는 시라 인상 깊었다.
(2) 소설: 『언어의 고고학』 김세정
https://m.seoul.co.kr/news/life/contest2026/2026/01/01/20260101033001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감정선’이다. 윗세대(조부모, 부모 등)가 남긴 물건을 통해 그들의 감정을 후손이 이해하게 되는 건 많이 있었던 이야기 흐름이다. 그런데도 이 소설이 기억에 남는 까닭은
첫째, 조선에서 살던 일본 여자가 ‘나’의 할머니인 것
둘째, 그런 둘의 관계가 ‘희랍어(그리스어)’라는 한국의 것도, 일본의 것도 아닌 유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 소설을 관통하고 있는 소재는 ‘아오리스트’다. 아오리스트란 그리스어에 특별하게 존재하는 시제로써, 어떤 일이 ‘과거, 현재, 미래’에 상관없이 어떤 순간에 한 번 일어났다는 완결을 나타낸다.
할머니가 재한일본인들을 위해 ‘부용회’라는 모임을 주도적으로 이끌었고, 작가가 되고 싶었으나 필사노트 한 편에만 꿈을 펼쳤던 사람으로서 그녀는 무정시제다. 끝났으나 끝나지 않았던 것을 찾아 헤매고, 떠나왔으나 정주하지도 귀향하지도 않는 사람
마치 ‘나’가 할머니의 글을 읽기 위해서 연고지도 아닌 독일로 떠나 그리스 수업을 배우듯이 말이다.
고고학은 유물을 파헤치는 학문이다. 세상에는 유물처럼 여겨져서 소외되는 것들이 많다. 내 고향에 살지 않았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사람들(재한일본인, 미주 한인 2세 등), 비주류 언어들과 고전들, 원치 않는 삶을 위해 젖혀버린 꿈들.
이미 언젠가 한 번 완결 난 것들을 파헤친다고 하면 보통 세상은 손가락질하기 마련이지만, 그것들이 덤처럼 여겨지면 안 되는 것 아닐까?
주류들이 더욱 주목받는 세상에서 흘러가 버린 것들을 잡아두기 위한 작품, 그래서 세심하다고 느꼈다.
두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프레임에 갇힌 사람’이었다. 그래서 온전하게 자기 자신으로 실존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다룬 작품들이었다. 프레임을 만드는 건 결국 속단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우리들의 행태를 담담하지만 확실하게 비판했던 게 이 작품들의 장점이었던 것 같다.
(1) 시: 『크린토피아』ー강하라
https://m.segye.com/view/20251215518767
시의 첫 단락에 등장하는 을지로. 왜 을지로인가?
을지로는 가게들이 골목길이나 오래된 건물의 고층에 있어 까딱하면 그냥 지나쳐버릴 수밖에 없다. 이렇게 ‘숨겨져 있는 공간’을 파헤친다는 것 때문에 을지로가 힙지로로 불리는 것 같지만 말이다.
시는 을지로라는 공간과 할머니를 동일선상에 놓고 있다. 간판 없는 카페들이 벽돌 속에 숨어 있어 마치 오래된 벽의 단면처럼 보이고, 할머니는 붉은 실뭉치를 꺼내 가지 말아야 할 곳들을 하나하나 표시하고. 그래서 가지 말아야 할 곳들이 가야 할 곳을 덮어 버리면 할머니는 어디에 존재해야 하는 걸까?
붉은 실뭉치를 사람의 혈관이라고 보면, 이 작품은 가히 소름 돋는다.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는 사람은 어디로 가야 할까? 벽 안에 숨어버린 공간들처럼 조용히 숨어 살더라도, 누군가 그 문을 열면 들켜버리는 걸까?
시인은 그런 할머니를 세탁기에 넣고 돌린 후에 구겨진 몸을 펴고, 그것을 둘러업는다. 존재할 수 없던 사람이 땅에 발을 디디고 설 수는 없더라도, 그 사람을 업어줌으로써 있을 공간을 마련해준다.
보통 실존의 문제를 다루는 작품은 허무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작품은 마지막에 희망을 심어줬다. 결국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사람이라고. 여기서 ‘존재할 수 없는 사람’이란 ‘세상의 흐름과는 동떨어진 사람(예를 들면 트렌드를 따라가지 않는 사람)’ 일 것이다. 너무 세상이 빠르게 돌아가다 보니, 흐름에 휩쓸려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섣불리 말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내 삶이, 취향이 이상한 것 같아서 숨기는 경우도 많다. 그런 세상에서 시인은 ‘세탁’을 통해서 서로를 맞잡아주자고 격려하고 있다. 따뜻한 시였다.
(2) 소설: 『예지』 고아림
https://m.segye.com/view/20251215518768
내가 재밌게 봤던 청소년 문학 중에 『유원』이라는 책이 있었다. 화재 사고에서 살아남은 유원에게 ‘2배로 행복해라, 평생 봉사하며 살아라’라고 주변에서 부담을 주자 유원이 점점 지쳐가는 내용의 이야기다.
또, 최근에 봤던 영화 중에 『세계의 주인』이라는 게 있다. ‘성폭력 피해자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면 안 되고, 항상 아프다고 해야 하는가?’라는 주제의 영화다. 이 소설도 그런 내용이다.
다만, 위의 두 작품과 다르게 인물이 감정을 터트리는 구간이 없다. 오히려 아주 담담하다. 갓 스무 살이 된 예지는 병을 앓고 있던 엄마에게 간을 이식해 준 소녀다. 그렇지만, 예지의 엄마는 예지가 회복하는 도중에 결국 죽게 된다.
예지에게 친척들이 ‘돈’과 관련해서 보내는 쌀쌀맞은 시선들, 엄마가 죽은 사실을 어떻게 말해줘야 하나 고민하는 주인공 등 수많은 프레임이 예지를 향해서 씌워진다. 그러나 이 모든 사실을 예지는 아는 듯 모르는 듯 자신의 남자친구와 해맑게 회복 과정을 보내고 있다.
사실 불행한 일을 겪은 사람의 속내는 당사자가 가장 잘 아는 법이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격려랍시고 온갖 프레임을 짠다. 이런 모순 속에서 예지가 오히려 담담하니 더욱 주변 사람들이 유난인 게 두드러진다. 그래서 이 작품은 표현력이 굉장히 좋았다. 특히, 예지의 속내를 알 수 없도록 제3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둔 점도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독자도 스스로 예지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결국 머쓱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무관심’에 대해서 질타하는데, 오히려 이렇게 남 속내를 헤아리지 못하는 관심도 무관심의 일종 아닐까?
문화일보의 작품들은 굉장히 직관적이었다. 사용한 문장들도 간결하고 정확했으며, 작가들이 표현하고자 했던 내용도 뚜렷했다.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만한, 표현법을 사용했다.
(1) 시: 『가뭄』 유주연
https://www.munhwa.com/article/11558014
시가 독특한 주제인 ‘기후 위기’를 다루고 있어서 인상 깊었다. 영화 <설국열차>라던가, 책 『지구 끝의 온실』과 같은 작품들을 보면, 이상기후로 발생하는 사건들은 더욱 스펙타클하게 구현된다. 생명이 거의 존재하지 않기도 하고, 새로운 공동체가 등장하며,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재앙이 구현되는 등 말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기후 위기는 스며들 듯이 오는 편이다. 그런 후에 모든 것을 분열하게 만든다. 시인은 먹을 것도, 생명도 없는 메마른 땅에서 마른 목소리로 기도를 하는 사람들을 묘사했다. 또, 이 세계를 말라서 금이 가는 항아리처럼 보인다고 표현했다.
굉장히 표현이 직관적이었고, ‘가뭄이었다’를 반복하는 부분에서는 절절함도 느껴졌다. 다른 신춘문예 작품들은 시어들을 나열하고 문장들을 길게 해서 마치 산문을 읽는 듯한 느낌이었다. 반면, 이 시는 연과 행을 철저히 구분하고 간결한 시어들을 사용해서 누구나 읽기 편한 시였다.
(2) 소설: 『가챠, 가챠』 박재연
https://www.munhwa.com/article/11558036
요즘 가챠 가게가 많이 보인다. 원하는 하나를 뽑기 위해서 많은 돈을 입구에 투입하다 보면, 허무하다는 느낌도 든다. 그런데도 가챠를 열기 전의 순간에 ‘내가 원하는 것이 안에 들어있을 것’이라는 기분 때문에 멈출 수가 없다.
이 작품은 문장 하나하나가 간결하고 단단했다. 가챠와 우리의 인생(취업, 돈 벌기 등)을 비교한 것도 명확하게 느껴졌다. 가챠에서는 ‘먹을 수 없는 초밥, 탈 수 없는 자동차’와 같이 생활에서 본떴으나 제 기능을 잃은 것들이 나온다. 가챠 상품들은 놓쳐버린 물건들의 미련 같아 보이기도 하고, 멀티버스 세계관에서 선택하지 않은 우리의 삶 같기도 하다. 그런 수많은 해석의 여지를 남긴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공감되는 작품이었다. 열린 결말이었지만, 그런 마무리를 한 것도 서사 구조상 충분히 이해가 갔다. 작품에서 나오는 다양한 인물들도 전부 있어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탄탄하게 설계한 작품인 것 같다.
두 작품의 공통점은 다시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것이다. 여운이 오래 남는 작품들이었다. 두 작품 모두 술술 읽힌다. 읽는 순간에 지루하지 않고, 공감이 가는 이야기들을 풀어냈다.
(1) 시: 『졸업반』 김남주
https://www.khan.co.kr/article/202601010000055#ENT
경향신문 신춘문예 심사자들의 평인 ‘읽을수록 더 읽고 싶어지는 시’가 맞는 것 같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통해 ‘나’가 술래지만, 무엇인가가 ‘나’를 잡으러 오고 서늘함을 느끼는 설정이 소름 돋았다.
점점 다가오다가 나중에는 뒷덜미 바로 가까운 곳에서 숨소리가 들리자 공포감은 더욱 심해진다. 독특한 시어를 사용해서 시인은 생각할 수 있는 공백을 남겨뒀다.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 무엇인지는 읽는 독자마다 다르겠지만, 시를 읽다 보면 떠오르는 것이 반드시 하나는 있을 것이다.
읽다 보면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발휘하게 만드는 시였다.
(2) 소설: 『라이브』 이정원
https://www.khan.co.kr/article/202601010000085#ENT
자신의 연인을 잃어버린 남자가 누구도 찾지 않는 무덤의 무덤지기가 돼서 펼쳐지는 이야기. 그 안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나게 된다.
이 소설은 익숙할 만한 이야기다. 새롭게 만나게 된 인연과 대화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상실한 사람을 떠올리게 되는 것. 그 과정에서 주인공은 점차 회복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그렇지만 낯설지 않은 소재를 가지고, 상당히 몰입감 있고 공감 갈 만한 문장들을 써냈다.
이야기는 겹치기 마련이다. 사람들의 삶에서 공통점들이 많기에, 그것을 다루는 이야기는 표현은 달라도 결국 일맥상통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핵심은 얼마나 공감이 가게 풀어내느냐다. 자신만이 아는 언어로 감정만 늘어놓다 보면 질리기 쉬운 소설이 된다. 그러나 이 소설은 모두가 아는 언어로 모두가 아는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냈다. 다시 읽어보고 싶은 소설이었다.
두 작품 모두 우리가 쉽게 말하지 못하는 언어들을 다뤘다. 시는 상실의 언어, 소설은 자음과 모음이 결합하지 않은 조각난 언어. 그러나 이 말들은 모두 세상에 존재하며, 누군가는 꼭 말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이해하고 인정해야 하며, 가끔은 그것을 말하는 용기도 필요하다.
(1) 시: 『조금 늦었지만 괜찮아』 연우
https://www.chosun.com/culture-life/culture_general/2026/01/01/VANLVGFNYNCXXLGSXUIFNDXYPQ/
‘아이’라는 소재는 감정을 극대화하게 만든다. ‘아이기 때문에’ 할 말은 다 하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풀어낸다. 어른들은 상실의 아픔을 겪을 때, 그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숨기기도 한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오늘은 비가 오지 않는다’와 같은 곁말들.
그런데 아이는 ‘내가 아끼던 사람이었다. 다시 할머니를 구해오겠다’ 와 같이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는다. 슬플 때 울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시인은 이 시를 쓴 것 같다. 불행을 불행이라고 말하기 위해서.
시 자체는 담담했지만, 그 안의 감정들은 어떤 시보다 솔직하게 읽혔다.
(2) 소설: 『떨어지며 나는 소리』김선준
https://www.chosun.com/culture-life/culture_general/2026/01/01/KVATAVHWEVBMXLC7VZXHOYGPZM/
예전에 지체장애인들을 교육하는 봉사를 한 적이 있었다. 좋은 마음으로 간 봉사였지만, 마음이 계속 답답했다. 나는 그들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고, 그들도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속마음을 꺼내서 직접 들여다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이 소설은 발달장애인과 장애인 가족의 두 시점으로 이야기를 펼쳐간다. 발달장애인 누나가 무언가를 발음할 때 가족에게는 자음과 모음이 분해되어 마치 암호를 듣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누나의 시점으로 보면, 누나는 참 생각이 깊은 말을 하는 사람이고 의젓하게 행동하고 싶은 마음을 가졌다.
사람이 내는 소리에 꼭 완성된 글자만 있을까. 우리는 다양한 말들을 인정하지 않는 게 아닐까. 예를 들면 과거에는 ‘수화’였다가 ‘수어’가 된 언어처럼. 글의 매력이란 쉽게 이해하지 못했던 말들을 이해하게 해주는 데서 있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은 독자들을 이해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는 데서 인상 깊었다.
두 작품은 문학 작품처럼도, 한국일보에 실린 르포 기사의 한 꼭지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현실을 냉철하게 바라본 작품들이다. 흔하지만, 뻔하게 여겨지면 안 되는 이야기들을 다뤘다.
(1) 시: 『고해성사』 사강은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22409500003901
이 시는 연과 행이 구분되지 않고 긴 문장으로 쓰였다. 그러나 산문시여야 하는 이유가 있다. 갑작스레 경찰에 붙잡혀서 혼란스러운 사람이 자신의 감정을 쏟아내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시를 읽으면서, ‘죄’가 상징하는 게 뭘지 고민하게 됐다. 살면서 크고 작은 죄들을 범하는 게 우리들의 삶이지만, 그것을 심문당한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실제로 지은 죄였는지,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억울하게 만들어진 죄였는지 구분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이지 않을까.
그렇지만 꼭꼭 숨기고 있던 비밀이 드러난다면, 그것을 회고하게 된다. 과연 그때의 행동이 잘한 일이었는지 말이다. 사람에게는 반드시 회고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그래서 다시 한번 결정을 내리면서 성장하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다만 아쉬웠던 건 뚜렷함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마지막에 ‘자수할 예정이다’라는 말도 급하게 마무리를 짓는 것처럼 느껴졌다. 감정이 무르익는 과정을 좀 더 독특하고 구체적인 시어로 표현하는 게 어땠을까?
(2) 소설: 『호버링』 황예솔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22315110003746
소설가가 최근 산재 뉴스를 많이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재를 당한 사람과 그런데도 계속 일해야만 하는 노동자들. 마치 공장의 기계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돈을 벌기 위해 단기 새벽 배송 아르바이트를 지원한 두 대학생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자신의 가족을 위해서 심폐소생술을 시도해봤던 ‘나’가 정작 주변의 동료가 쓰러진 상황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도 상당히 비극적이다. 이 소설은 처음과 끝이 같은 사건으로 구성돼 있다. 공장에서 두 대학생이 도망치는 사건이다.
이번 신춘문예에서 읽었던 소설 중에서 이 소설의 결말이 가장 소름 끼쳤고, 기억에 남았다. 누군가가 끔찍한 일을 당해도 결국 세상은 돌아간다. 그런 모순적인 상황을 소설은 정확하게 저격했다. 우리는 부정적인 뉴스들에 둘러싸여 그것들에 익숙해지는 무자각의 상태에 놓여 있다. 익숙하기에, 그런 사건들이 아무렇지 않게 여겨지는 건 정말 문제다. ‘인간의 부품화’라는 건 오래전부터 문학계에서 반복된 소재지만, 이 소재를 현대에 맞게 잘 풀어낸 작품이었다.
세 작품은 ‘인간의 존재’에 관해 다루고 있다. 시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공동체에 관해, 소설 『루빅스 큐브』는 인간성을, 그리고 『한시적 진화』는 인간의 가치에 관해서 묘사한다. 범위만 다를 뿐이지, 모두 ‘인간이 이 세상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를 탐구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이 주제를 각 작품의 형식적 특징에 맞춰서 완결성 있게 풀어냈다. 그래서 깔끔하게 읽혔다는 게 좋았다.
(1) 시: 『디아스포라』 이형초
https://sinchoon.donga.com/View?cid=6035830
이 시는 ‘고려인’이라는 공동체를 알아야 잘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예전에 고려인에 관해서 연극도 보고, ‘고려인 마을’에도 가본 적이 있는데 그들의 문화는 한국과 만주의 것이 섞인 독특한 것이다. 국수를 대신하는 ‘국시’가 있고, ‘김치’를 대신하는 ‘당근 김치’가 있다. 그리고 이 김치는 매운 게 아니라 샐러드처럼 상큼하다! 그들은 척박한 땅으로 이주해야만 했고, 그곳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 2세, 3세들은 한국어도 잊어버린 경우가 많다.
우리는 재외동포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재일한국인, 재미한국인, 고려인 등 수많은 한인 공동체가 있으나 그들은 타인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이 시는 그러한 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박물관을 만들자고 말한다.
이 시는 특별히 뛰어난 표현이 있는 것도, 숨이 막히는 전개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흔히 쓰이지 않는 소재를 사용했다는 것, 그리고 민족의 경계선에 서 있는 사람들의 심정을 솔직하게 표현했다는 것에서 강점이라 할 만하다. 이주해야만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여전히 다문화 사람들이 차별을 당하는 순간은 발생하고 있기에 우리는 문화의 다중성을 잊지 않아야 한다.
(2) 단편소설: 『루빅스 큐브』 김근희
https://sinchoon.donga.com/View?cid=6035929
1991년 서울 출생||서울대 산업공학과(주전공) 및 국어국문학과(부전공) 졸업, 변리사
https://sinchoon.donga.com/View?cid=6035929
루빅스 큐브가 뜻하는 바를 생각해봤다. 이 소설에는 악역이 없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인 치록이도 나를 진심으로 반가워하며, 엄마 일로 인해 도움을 구하고자 치록이에게 연락한 나도 치록이의 얘기를 들어주다가 “이런 친구가 있다니 인복이 좋네”라고 말하는 치록이에게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일에 지쳐 있지만 성실하게 나를 안내해주는 치록이 집의 가사도우미도 그렇다. 마치 루빅스큐브를 맞추는 것처럼 타인에 대한 순수한 관심으로 서로를 돕는 사람들. 결국 사람을 울리는 것은 사람인 것 같다.
분명 주인공의 상황은 좋지 않음에도 이 소설을 읽으면서 따뜻한 기분이 들었다. 주인공조차도 엄마를 도와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 치록이를 찾아왔지만, 치록이의 상황을 고려해서 조용히 집을 빠져나온다. ‘배려’라는 키워드가 소설 전반에 묻어나 있어 좋았다.
동아일보는 이 소설을 두고 ‘AI 시대에 필요한 소설이었다’라고 평했다. 점점 사람보다 AI와의 관계를 더 가까이하는 요즘, 그래서 더욱 어떤 말로도 완벽히 설명할 수 없는 인간성이라는 개념이 더 중요해지는 걸지도 모른다.
(3) 중편소설: 『한시직 진화』 배은정
https://sinchoon.donga.com/View?cid=6035857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마음으로 사격장 아르바이트하게 된 진화.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조금씩 존재하는 갈등 속에서 아슬아슬한 관계를 이어간다. 이것이 ‘한시직’이라는 그들의 위치와도 연결된다.
재계약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불안, 그리고 사격장을 찾는 손님들도 아슬아슬한 분노를 마음에 품고 있다. 어느 날 사격장에 태권도장 부관장과 눈물을 흘리는 한 소년이 찾아온다. 소년이 부관장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그 모습을 보며 진화는 소년의 모습에 자신을 겹쳐 본다. 사실 소년을 자신으로 겹쳐 보는 건 진화뿐 아니라, 사격장에서 일하는 류정도 그랬다.
이 세상에는 불공평하고 부조리한 일이 많다. 열심히 일하고, 자신을 계속 어필하더라도 언제든 계약이 종료될 수 있는 한시직처럼 말이다. 이를 두고 소설에서는 “전쟁터”라고 말한다. 우리는 항상 보이지 않는 총을 손에 들고 집을 나서는 건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가챠, 갸챠』와도 겹쳐 보였다. 확실히 ‘이 세상에서의 내 존재’에 관해서 탐구하는 작가들이 많이 늘어난 듯하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불안함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는 뜻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