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도둑_마이클 핀클

도둑이 훔친 건 아름다운 그림일까, 그 시절의 아름답던 자신이었을까?

by 시티오브

⭐출판사: 생각의 힘

⭐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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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그림을 훔쳐서 되팔지 않고 자신의 다락방에 숨겨 놓는 도둑이 있다.

보통 그림을 훔치면 높은 값을 받을 것을 기대하고 암매상에 팔기 마련인데, 이 도둑은 전혀 금전을 원하지 않는다. 다른 인물들이 말하는 그대로 '조금 이상한 수집광'인 것이다.


또, 특이한 점은 이 도둑이 보니 앤 클라이드처럼 자신의 연인과 함께 범죄행각을 벌인다는 점인데. 그 모습이 마치 희대의 반항적인 커플 같기도 하다.


브라이트비저와 앤 캐서린, 두 사람은 환상 속 세계를 뛰어넘는 현실을 만들어냈다. 보물 상자 안에 사는 삶이라니.
image.png <프랑스 왕녀 마들렌>, 코르네이유 드 리옹, 1536년, 프랑스 블루아성 미술관에서 절도

작가의 말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놀랍게도 실화다. 브라이트비저라는 예술품 도둑은 1994년부터 2001년까지 유럽 전역에서 200여 회에 걸쳐 예술 작품 300여 점을 훔쳤고, 그 금전적 가치는 약 2조 원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말 그대로 아주 간 큰 도둑인 것이다.


작가는 실제로 브라이트비저의 주변 인물들, 그리고 브라이트비저 본인과 밥을 먹으며 주고받았던 얘기들로 이 책을 구성했다. 이 책은 마치 소설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실제로 보면 소설 같은 삶을 산 한 인물의 이야기인 것이다. 비슷한 책으로는 커트 보니것의 제5도살장이나 양귀자의 『누리야 누리야등이 있다.


아무 정보가 없을 때는 '왜 이 책이 에세이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작가의 말을 보면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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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브라이트비저는 왜 이렇게 많은 미술 작품을 훔쳐야 했을까?


이 책에는 스탕달 증후군이라는 말이 나온다. 프랑스 작가 스탈당이 아치형 천장에 그려진 프레스코화를 감상하기 위해 머리를 젖혔다가 '그림에 압도'돼 극강의 황홀경을 경험한 것에서 비롯된 증후군이다.

미술작품을 관람한 후, '어지럼증, 가슴 떨림, 기억 상실 등'의 증상을 겪는 걸 말한다. 예루살렘과 파리가 스탕달 증후군이 가장 자주 일어나는 단골 장소다.


브라이트비저는 자신이 스탕달 증후군에 빠져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작품들이 갇혀 있던 미술관으로부터 작품을 구해준 것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스탕달 증후군은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들이 겪는다고 하는데, 브라이트비저가 유년 시절 또래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고 수집품에 집착했으며, 끝없이 예술 공부를 하며 황홀경을 느꼈던 것들을 떠올린다면 충분히 그럴 만하다.

image.png 스탕달 증후군을 유발하는 대표 작품, 미켈란젤로-<다비드 상>

신기한 점은 이런 스탕달 증후군이 관람객뿐 아니라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들에게도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소설가 도스토옙스키나 라이너 마리아 릴케 등이 미술 작품을 보고서 황홀경을 느꼈다는 기록들이 남아 있다.

image.png 스테판 브라이트비저


Q. 브라이트비저는 정말 스탕달 증후군을 겪은 걸까?

그는 분명히 예술 작품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또, 철저한 범행 원칙이 있다.


1. 무력을 사용하지 않을 것
2. 예술 작품을 훼손하지 않을 것


그러나 예술품을 훔칠수록 그는 자신의 다락방에 그림을 처박아 놓고 함부로 관리하기 시작한다.

이런 행동을 보면, 그는 그저 도벽이 굉장히 심한 사람으로 볼 수 있다. '괴도 신사'아르센 뤼팽의 현대판 버전이라는 소리를 들었으나, 브라이트비저는 예술품 도둑일 뿐이지 신사는 아니었다.


결국 그의 다락은 루브르 박물관에서 비싼 쓰레기장으로 전락하고 만다.

또, 연인 앤 캐서린이 떠난 이후 아무리 좋은 작품을 보더라도 훔치고 싶은 마음이 쏙 사라진 걸 본다면, 그는 작품을 훔치고 연인과 제우스와 헤라가 된 듯 소파에 누워 작품을 감상하는 그 시절 자신에 푹 빠졌던 걸 수도 있다.


무엇이든 자기 합리화일 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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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흥미로운 점은 브라이트비저가 훔친 작품들을 직접 보여준다는 것이다. 과연 어떤 아름다움이 있었기에 브라이트비저가 작품들을 훔친 것인지 생각해 볼 수 있다.

또, 이 작품들에 대해 당시 브라이트비저가 어떤 감정을 느꼈나 살펴보면 매우 흥미로울 것이다. 그는 황홀경이어도 다 같은 황홀경이 아니라 다양하고 세밀한 감정을 표현한다.


책을 읽으며 문득 미술관에 갔을 때가 떠올랐다. 유명한 작품이 아닌데도 유독 눈길을 잡아끄는 작품들이 있다. 그럴 때는 묘하게 '나만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작품이 세상에 유명해지면 괜히 마음이 식기도 한다.


이런 묘한 뒤틀린 욕망, 그런 것을 브라이트비저는 더욱 강하게 느꼈던 것 같다.


책에서 작가가 한 말 중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말들이 있다.

예술의 역사는 절도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우리가 흔히 강대국들의 박물관은 절도품들로 이뤄져 있다고 말한다. 다른 나라에서 가져온 약탈들을 자기의 것이라고 전시해 놓는 대영박물관이나 루브르박물관처럼. 특히, 대영박물관은 절반 이상이 약탈품으로 채워져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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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강대국들의 미술관에 가면 제국주의 이데올로기가 남아 있는 걸 느낄 수 있다.


왠지 이 세상을 통찰하는 말은 범죄자들로부터 나오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지강헌의 유전무죄, 무전유죄처럼.


또, 재미있는 점은 이 작품에서 파블로 피카소가 역사상 작품을 가장 많이 도난당한 화가이지만 사실 그 자신도 <모나리자> 도난 사건의 용의자였다고 밝히는 부분이다. 이렇게 작가가 소개하는 예술품 도난 역사를 보고 있자면, 자연스레 브라이트비저의 행동도 이해가 가게 되는 아이러니함이 생겨난다.


예술 이론가들은 예술이 이토록 널리 퍼진 것이 인류가 자연선택을 극복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이 말도 인상 깊었다. 사실 예술은 생존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사치품이다.

말 그대로, 사람들의 감정과 선택에 의존하는 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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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사람들이 예술을 좋아하는 이유는 자기표현의 일종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감상할 때도 내가 선호하는 소재들이나 화풍을 주로 보게 되고, 또 이를 모방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창조할 때도 자신만의 생각을 담아내게 된다.


이처럼 정신적인 분출의 산물이 예술품이라는 것. 브라이트비저가 예술품을 보면서 감정의 소용돌이를 느꼈던 것도 사실 '화가-관람객, 관람객-화가' 이런 사이클에서 무한한 감정들이 오고 가기 때문 아닐까?


예술에 관해 깊이 있는 성찰을 하게 만들어 준 에세이였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브라이트비저를 너무나 미화했다는 것이다. 작가의 경험에 의존해 쓴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월,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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