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인연-김도현

찰나의 인연이 평생을 구원할 수 있다

by 시티오브

⭐별점: ★★★★☆

⭐출판사: 바른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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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살의 작가가 집에 가는 길 지하철에서 핸드폰 메모장으로 써 내려간 3편의 소설

『LP 바』와 연인, 인연, 그리고 도플갱어가 한 책에 담겼다.


집에 가는 길, 지하철 2호선을 타고 한강을 지날 때면 노을이 확 사람들의 얼굴을 물들인다. 그리고 이윽고 지하철이 지하로 내려가면서 다시 어둠이 지하철 안에 내린다. 노을빛이 얼굴을 물들이는 그 찰나의 순간이 세상이 우리에게 내리는 현실적인 구원 같아서, 나는 그 순간에는 핸드폰에서 시선을 떼고 창밖을 가만히 바라보게 된다.


작가는 이렇듯 완벽하지 않고 씁쓸하지만 현실적인 구원을 이 책에 적어낸다. 무언가를 얻으면, 무언가를 잃을 수밖에 없는 구원 말이다.



『연인, 인연』


이 이야기를 읽으며, ♪AKMU-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노래가 떠올랐다.



아무 말 없는 대화 나누며

주마등이 길을 비춘 먼 곳을 본다

그때 알게 되었어

난 더 갈 수 없단 걸

한 발 한 발 이별에 가까워질수록

너와 맞잡은 손이 사라지는 것 같죠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중학생 때 학교 도서관에 자주 가던 서아와 성호는 그 인연으로 연인이 된다. 그러나 고등학생이 돼 공부나 진로 같은 현실에 집중하다 보니, 대화는 거의 줄어들고 둘은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된다. 그리고 10년 지난 후 그들은 우연히 다시 서울에서 재회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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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와 서아는 재회한 후 그때의 자신들과 지금의 인생에 관해 짧은 대화를 나눈다. 서아를 전시관에 데려다주는 약 30분 간의 시간 동안 말이다.


둘은 정말 잘 맞는 연인이었다. 그럼에도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성호가 말했듯, "모든 건 정해진 운명과 인연대로 흘러가기 때문에"


이 이야기의 핵심은 서아가 10년 후에 성호를 만났음에도 단박에 서로를 알아봤던 것이다. 왜냐하면 성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아를 구원했기 때문이다.


늦었다고? 늦은 건 없어. 시간이 걸려도 괜찮으니까 여러 가지를 도전해 봐.


성호가 중학생 때 가볍게 건넸던 말이 서아의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비록 둘이 헤어져서 이제 연인은 아니게 됐지만, 둘은 평생의 인연으로 남았다.


그래서 마지막에 서아가 성호에게 "너의 존재도, 오늘 이 순간도 소중한 추억으로 기억하고 싶어. 언젠가 또 인연이 허락한다면 그때 다시 만나자."라고 말할 때 서아는 왠지 후련해 보인다.

자신이 서아에게 건넨 말로, 이번에는 자신이 구원받은 성호 역시도 후련함을 느낀다.

image.png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스틸컷

이 이야기를 읽으며,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가 생각났다.

이 영화도 연인이었던 두 사람이 인연으로 남은 이야기다. 짤막한 인연이 평생 가는 경험, 많은 사람들이 해봤을 것이다. '비록 다시는 서로 만나지 못하더라도 서로의 삶에서 동기가 돼 준다면 그만큼 아름다운 인연이 또 있을까?' 그런 아름다운 생각을 해주게 한 소설이었다.



『도플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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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인연』과 다르게 이 이야기는 소름 돋는 구원 서사를 다룬다. 이 이야기가 책의 맨 처음에 등장해서 처음에는 스릴러 소설인가 싶기도 했다.


도플갱어를 만나면 반드시 한 명은 죽는대


이런 이야기 다들 들어봤을 것이다. 그래서 길을 걷다가 자신과 닮은 사람을 만나면 순간 섬찟하기도 한다.

이 이야기는 고독하고 지루한 인생을 살아온 미라이가 우연히 자신의 도플갱어를 만나면서, 삶이 180도 바뀌는 내용이다.


자신의 도플갱어를 죽인 살인자. 그리고 그 광경을 목격한 미라이.

그런 미라이에게 살인범은 "당신이 생각한 그런 게 아니야"라고 말한다.


자신의 삶이 꼭 희망적인 방향이 아니어도 누군가에 의해 전혀 달라진다면 어떨까? 미라이는 이에 응답한다.

원하지 않았어. 원하지 않았어. 원하지 않을 거야. 나는... 나는.... 원해.


가끔 인생이 너무 지루할 때면 영웅이 돼 누군가를 구원하거나, 누군가로부터 구원받는 상상을 할 때가 있다. 그리고 이런 구원은 절망적인 상황일수록 더욱 그 효과가 극대화된다. 어쩌면 구원도 '욕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180도 달라진 삶을 원한다는 욕망에서 비롯된 구원 말이다.


속으로만 한 상상들이 텍스트로 재현되니 더욱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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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실린 이야기는 뜻밖의 순간에 찾아온 구원들을 다룬다.

우리가 누군가로부터 구원받을 때는 전혀 상상하지 못한 순간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 순간은 매우 큰 행복으로 느껴지게 된다.

image.png back number <水平線(수평선)> mv 中

이 이야기는 수많은 고독한 사람들을 그려냈다. 사람들은 각기 다른 고독을 경험하며, 각기 다른 구원을 경험한다. 작가는 지하철에서 이 소설들을 쓰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지하철에서 지루한 듯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보는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도 자신만의 구원 서사가 분명 있을 것이다.


'인간은 고독한 존재다'라는 명제는 카프카의 <변신>처럼 예전부터도 존재했다. 이 명제는 사례는 달라질 수 있지만 인간을 평생 따라다닐 말일 것이다.


그렇지만 고독은 쉽게 말할 수 없는 단어이기에 더욱 사람을 힘들고 처연하게 한다. 그런 우리를 위해 작가는 슬쩍 손을 내밀었다. 작가가 말한 대로 '완벽한 구원은 판타지'기에 현실적인 이야기들로 독자의 감성을 톡 건드린 점이 좋았다. 책은 인물들의 감정을 둘러대지 않고 아주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을 읽을 때만큼은 자신의 고독을 숨기지 않아도 될 것이다.


끝으로 이 책을 읽은 독자들에게 'back number의 <水平線(수평선)>'이라는 노래를 추천한다.

월,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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