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에게: 낙원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곁에 있었다
⭐별점: ★★★★★
⭐출판사: 오후의 소묘
내가 좋아하는 시 중에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라는 시가 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시인은 가난과 고독 속에서도 여러 걸출한 시를 남겼다. 그는 <귀천>에서 이 세상이 낙원이라고 표현한다. 그 낙원으로 우리는 잠깐 소풍을 온 것이라고.
무루 작가도 이 에세이에서 '고독, 실패, 잃어버림, 죽음'과 같은 세상 속에서 낙원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말한다.
낙원이란 도착하는 장소가 아니라 도착하려고 길을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가 흔히 아는 낙원을 무루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뒤집는다. 마치 천상병 시인이 이 세상으로 소풍을 온 것처럼, 무루 작가는 낙원을 찾기 위해서 이 세상을 살아간다.
무루 작가는 그림책 번역가다. 그림책은 흔히 '순수한' 느낌으로 독자들에게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순수함은 순진함이 아니다. 그림책 안에는 어른도 깜짝 놀랄 만한 여러 지혜들이 들어있다.
이 세상을 구원하는 도구가 있다면 어쩌면 그림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무루 작가는 그림책에 담긴 지혜들을 우리네 삶의 이야기와 슬쩍 엮어서 에세이에 담았다.
그래서 한없이 지혜롭고 따뜻한 에세이가 바로 이 책이다. 중간중간 들어있는 삽화들도 괜스레 마음을 들뜨게 만든다.
재미있는 건 이 삽화들이 작가가 인상 깊게 본 요안나 카르포비치의 '아누비스' 캐릭터가 있다는 것이다. 아누비스는 죽음을 상징하는 신이지만, 카르포비치의 아누비스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공원을 산책하는 평범한 캐릭터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 속에는 아누비스와 같은 기묘한 것들이 함께 깃들어있다. 그래서 평범한 일상은 사실 불안한 일상이다.
작가는 "좋은 이야기들은 이 세상을 완성된 질서로 파악하려는 인간의 관성을 흔들어놓는다"라고 말한다.
이 에세이도 삽화처럼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흔들어놓는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에세이를 보면서 인상 깊은 문장들을 몇 가지 뽑아봤다.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이다.
작가는 낮에는 관성대로 몸을 움직이고 밤에는 침대에서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작가의 마음을 투영하는 듯한 그림책 『여름의 잠수』-사라 스트리스베리
이 동화는 깊은 우울에 잠겨 정신병원에 입원한 아빠를 만나러 가는 한 소녀의 이야기다.
그 소녀는 자신과 만나기를 거부하는 아빠를 기다리다 수영을 정말 좋아하는 여성인 사비나를 만나 우정을 키워나간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소이의 아빠 관점에서 상상하며 바라본다.
'소이의 아빠도 소이를 통해 슬픔의 장소에서 꿈이나 우정, 아름다움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것이다'
작가들은 슬픈 현실을 새로운 현실로 덧대야 하는 숙명을 갖고 있다. 삶이 가진 원초적인 슬픔을 아름다운 언어로 포장하고 희망을 이야기에 넣어서,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이 우울함보다는 아름다움을 기억할 수 있도록 만든다. 그런 숙명을 무루 작가는 찬찬히 풀어낸다.
작가는 자신이 가장 어렵게 번역했던 그림책을 떠올린다.
은퇴를 한 노부부의 이야기를 담은 『인생은 지금』-다비드 칼리
작가는 배우자가 없어서 '지금 행복한 인생을 살아야지!'라고 말하는 할아버지와 '일단 설거지 먼저 하고'라고 말하는 할머니의 갈등을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 고민했다고 한다.
그러나 번역을 하면서 할머니가 집안일을 하는 이유는 의무나 노동이 아니라 자신이 오랜 시간 쌓아온 질서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모든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지루한 일을 반복해야 한다. 사람에 따라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는 다르지만, 집안일이라거나 매일 아침 지하철을 타고 사람들 사이에 꽉꽉 끼여 가는 일이라거나.
이런 수많은 일들이 있다. 그러나 작가는 이것이 '스스로가 삶에 대해 만들어가는 질서'일 수도 있다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역시 낙원을 찾는 작가답다.
작가는 그럼 어떤 낙원을 말하고 싶은 걸까 궁금해할 때쯤, 그는 말한다. '온전한 낙원을 만들 수는 없다'라고.
그래서 책 제목이 『우리가 모르는 낙원』인 듯하다.
『크리처』- 숀 탠
작가가 번역했던 책 중 하나. 이 책에서는 세상의 질서와는 거리가 먼 크리쳐(이상한 생물들)가 등장한다.
이들은 세상의 이방인이다.
무루 작가는 이 책에 관해 '우리 모두가 크리처다.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이상하고 낯설고 신비롭다는 것을 아는 거 중요하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만의 낙원을 찾아 길을 헤매는 것 아닐까?
작가는 이 이야기를 하며, '홍콩의 구룡성채'라는 공간을 소개한다.
이곳은 빽빽이 들어선 건물들과 범죄가 성행하는 홍콩의 대표적인 우범지대였다. 그러나 무루 작가는 그 안에서도 나름의 질서가 있었다고 말한다. 학교가 있었고, 주민들에게 잘 팔리는 음식이 있었으며, 난민들의 실질적인 은신처로써 톡톡한 역할을 했다고.
그래서 작가는 구룡성채처럼 헤테로토피아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 현실에서 실재 가능한 유토피아 말이다. 어느 때나 변할 수 있고, 복수의 공간일 수도 있고, 모순적이기도 한 그런 공간 말이다.
이런 작가만의 철학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요즘 들어 '허무'와 '상실'에 관해 말하는 책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만큼 유토피아는 우리 세상에서 멀리 있기 때문 아닐까? 하지만, 헤테로토피아는 언제나 존재한다.
완벽하지는 않아도 언젠가 닿을 수 있을 것만 같은 낙원 말이다.
이처럼 무루 작가는 현실적이고 새로운 방식으로 독자들에게 위로를 건넨다. 담담한 말들의 연속이라 하루를 마무리하며 읽으면 훨씬 더 와닿는 에세이일 것이다.
무엇보다 여러 재밌는 그림책들을 알게 돼 좋았다.
책 마지막에 무루 작가가 에세이에서 언급한 그림책 리스트가 쭉 나열돼 있으니 찬찬히 훑어보면 좋을 것이다. 여러모로 지혜로운 에세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