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이 출구 없는 감옥이라도 열쇠를 향해 한 발짝을 옮기겠는가?
⭐별점: ★★★★★
⭐옮긴 이: 이태동
⭐출판사: 시공사
이 책은 참 신기하게 시작한다. 웨스트민스터의 본드 거리에서 수상의 차가 지나가고, 하늘에 비행기 한 대가 글씨를 만들고 있는 장면을 약 열댓 명의 사람들이 각기 다른 시점으로 묘사한다. 한 공간에 있는 사람들이 똑같은 상황을 어떻게 다르게 바라보는지 확인할 수 있다. 보통 책은 주인공이 있고, 그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다른 인물들은 서브로 남는다. 그러나 이 책에는 댈러웨이 부인과 셉티머스라는 두 주인공이 있음에도, 그들을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의 시점이 매우 자세하게 묘사된다. 즉, 모두가 주인공이다.
그 유명한 버지니아 울프의 의식의 흐름 기법이 이 책에 아주 잘 드러나 있다.
이 책의 시점은 1923년 6월 중순이다. 전쟁이 막 끝나서 평화로운 풍경이다. 마치 전쟁이 없었던 것 마냥. 수많은 사람들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간다. 버지니아 울프는 '사랑'이나 '명예'와 같은 지극히 평범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의 내면을 세밀히 그려낸다. 그 때문에 셰익스피어의 소설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전쟁에 관한 트라우마가 그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직접적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하지만 인물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끊임없이 고민할 때 독자는 문득 느끼게 된다.
두 주인공 중 한 명인 댈러웨이 부인. 그녀는 오늘 저녁에 있을 파티를 준비하면서 평범하고 아름다운 일상을 즐긴다. 그녀는 돈과 명예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리처드 댈러웨이와 결혼했다. 리처드는 바쁘지만 댈러웨이 부인을 잘 대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리처드와 함께 있을 때보다 다락방에서 혼자 책을 읽을 때 즐거움을 느끼고, 예전에 사랑했던 피터 월시가 가난한 모습을 보며 안도하면서도 한편으로 슬픔을 느끼게 된다.
가부장제의 그늘 속에서 그녀는 안정적인 생활을 얻었지만 진정한 삶의 행복을 느낄 수 없다. 그녀에게도 사회에 반항할 수 있는 순간이 있었다. 과거 샐리와의 동성애를 즐겼던 순간처럼. 하지만 사회의 제도나 억압 속에서 그녀는 순종했다.
삶이라고 부르는 것은 자신에게 무엇을 의미할까? 아, 그것은 참으로 말로 표현하기엔 기묘한 것이었다
또 다른 주인공인 셉티머스는 퇴역 군인이다. 그는 1차 세계대전에 참가해 공을 세웠으나 전쟁 후에는 PTSD를 겪고 있다. 그의 아내가 행복한 일상을 위해서 헌신적인 사랑을 바쳐도 그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 그리고 종종 전쟁에서 잃었던 전우를 본다.
아내가 울고 있는데도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단지 그녀가 마음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절망을 그렇게 조용히 흐느낄 때마다, 그는 한 발짝 더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인간이 가장 거스를 수 없는 사회 현상 중 하나가 전쟁이다. 셉티머스는 전쟁에 아주 헌신적이었으나, 많은 시간이 지난 후 그것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결국 끝에서 죽음을 선택한다. 이것을 도망이라고 볼 수도 있으나, 한편으로는 불합리한 사회에 저항하고 해방을 느끼게 된 인간을 상징하는 걸 수도 있다.
이렇듯, 두 주인공의 일상은 정말 다르지만 상징하는 건 하나다. 억압하는 사회 안에서 개인은 저항할 수 있을까? 마지막 장면에서 클라리스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셉티머스의 죽음을 전해 듣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삶에 관해 천천히 성찰한다.
그 남자는 중심을 지켜냈다. 죽음은 그 중심을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소통의 시도였다. 자살한 그 젊은 남자는, 자신의 보물을 끝까지 껴안고 뛰어들었겠지.
그녀가 진정한 자신의 삶에 관해 생각해 본 순간이었다. 이 책의 재밌는 점은 클라리스와 셉티머스 외에도 그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도 매우 자세하게 묘사된다는 점이다. 그들도 모두 각자의 상황에 따라 사회로부터 억압받고 있고, 자신의 알을 깨고자 노력한다.
재밌는 점은 이 책이 고작 단 하루의 시간을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약 403쪽 되는 분량이 단 하루라는 사실은, 버지니아 울프가 얼마나 디테일한 묘사에 탁월한 작가인지 보여준다. 이 책은 그녀의 사상을 보여주는 정수다. 그녀 역시도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수많은 우울과 죽음, 공포를 느껴왔기에 이 책에 '삶'에 대한 투쟁의 목소리를 담았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