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이뤄지는 건 한순간이지만, 그 순간에 영원을 바치는 건 어렵다
⭐별점: ★★★☆☆
⭐옮긴 이: 김남주
⭐출판사: 민음사
책을 읽으며 사랑이란 감정에 이토록 솔직할 수 있나 싶었다. 그만큼, 인물들의 사랑은 계속 변한다. 헌신적인 사랑을 받고 있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나를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사랑이 다르듯이, 자신만의 진정한 사랑을 찾아 떠난다. 그런 솔직함이 이 작품의 매력이었다. 마치 환승연애 프로그램을 보는 듯 했다.
당신을 당혹스럽게 한 것은 분명합니다. 저는 소송 사건 때문에 상사와 함께 시골로 떠납니다. 하지만 저는 난롯불 빛을 받으며 당신이 제 손 닿는 곳에 있다고 생각할 겁니다.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폴은 오랜 연인인 로제를 사랑하지만, 끊임없이 그를 기다려야 하는 시간들에 지쳐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근무지에서 만난 젊은 청년 시몽이 그녀에게 사랑에 빠진다. 첫눈에 반한 사랑이다. 심지어 로제가 바람을 핀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폴은 시몽이 주는 달콤함에 빠지게 된다. 그렇지만 그의 열렬한 사랑 속에서도 폴은 로제를 잊지 못한다.
읽으면서 자꾸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젊고 잘생기며 자신을 열렬히 좋아한다는 시몽을, 폴은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하는 걸까. 사실 폴은 자존감이 매우 떨어진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 시몽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기도 했고, 오랫동안 자신의 연인이 주는 안정적인 사랑에 익숙해져 있었는데 거기서 쉽사리 나오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결국, 그녀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결국 놓지 못한다. 그녀는 사랑에 갈팡질팡하는 인물이지만, 사실 연인인 로제가 주는 불안정한 애정 때문에 더욱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이 책은 결말이 기억에 남는다. 흔한 사랑 이야기처럼 사랑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결국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로제에게 돌아간 폴은 저녁 8시, 수화기가 울렸을 때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이미 알고 있다.
미안해. 일 때문에 저녁 식사를 해야 해. 좀 늦을 것 같은데...
역시 사람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 흥미로운 포인트 2가지가 있다.
작가는 이 말줄임표를 매우 강조했다고 한다. 이 기호가 없다면, 자신이 의도한 바가 드러나지 않을 것이라면서. 사실, 이 말은 작중에서 시몽이 폴에게 공연을 함께 보자고 제안하면서 하는 말이다. 시몽은 쉽게 자신의 마음을 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 폴은 연인도 있고, 자신과 나이 차이도 많이 나며, 스스로를 풋내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싶지만 폴의 마음이 어떤지 알 수 없기에 선을 넘으면 안 되는 시몽. 사랑이란 참 어려운 것 같다.
이 작품의 모티브가 된 브람스도 사실 시몽과 같은 사랑을 했다. 당대 최고의 사랑꾼 부부라 불린 스타 음악가, 슈만과 클라라 슈만. 그들의 집에 무명 작곡가인 스무 살의 브람스가 찾아온다. 슈만이 그의 천부적 재능을 알아보고 초대한 것이다.
브람스는 슈만의 집에 머무르며 점점 클라라 슈만을 사랑하게 되고, 실제로 고백까지 하게 된다. 하지만 여러 가지 제약 때문에 '사랑'을 '존경'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작중의 폴과 시몽처럼, 브람스와 클라라도 나이 차이가 꽤 많이 났었다.
실제로 브람스는 클라라와 관련된 작품을 몇 개 남기는데, 대표적인 작품이 현악6중주 제1번이다. 이런 이야기를 알고 이 책을 본다면 훨씬 재밌게 느껴질 것이다. 작중 인물들이 공연을 볼 때, 브람스의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어도 좋겠다.
사실 이 책을 추천할 것이냐고 묻는다면 고민할 것 같다. 유려한 문체와 치밀한 감정선이 인상적이긴 해도, 전체적인 맥락은 너무나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작품이 오래도록 베스트셀러에 오른 이유는 정의할 수 없는 '사랑'이란 혼란스러운 감정에 대해 여과없이 풀어냈기 때문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