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막이를 사이에 둔 보통 아닌 여자들의 싸움
좌석 사이에 놓인 불투명한 칸막이. 칸막이 너머의 사람은 일주일 중 5일, 하루 8시간 이상을 붙어 있지만 과연 그를 잘 안다고 할 수 있을까? 가장 가까워 보이면서 가장 먼 사람이 바로 회사 동료다. 여기 이상한 동료를 옆자리에 둔 여자가 있다.
돈은 절대 지각 안 해. 절대로. 항상 8시 45분이면 출근해. -p.17
예쁜 얼굴에 실적 좋은 영업사원인 내탈리는 어느 날 자신의 옆자리 동료인 돈이 예정된 시간에 회사에 출근하지 않았단 사실을 알고 당황한다. 돈은 정시를 반드시 지키는 원칙주의자에 바다거북을 몹시 좋아하고 사회성은 떨어지는 사람이다. 내탈리와 돈은 가끔 탕비실에서 대화를 나누고, 가끔 밥을 같이 먹는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흔한 동료 사이다.
그런 줄로만 알았던 그들의 사이는...
돈이 어느 날 갑자기 실종되고, 돈이 자신의 친구 미아에게 보낸 메일이 경찰 조사 과정에서 발견된 후 반전된다.
내털리를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그녀는 예쁘고 착하고 똑똑하고, 모두가 그녀를 좋아하는걸-p.150
내털리가 '없어 보인다'라고 말하면서 손으로 내 옷을 가리키는 동작을 했어-p.207
돈은 모두에게 인기가 많은 내털리와 친해지고 싶어 하지만, 내털리는 돈을 괴롭히고 있었다. 둘의 관계가 점점 밝혀지자 내털리는 인터넷에서 비난받는다. 그리고 점차 돈의 살인범으로 몰린다.
소설은 철저히 내털리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계속해서 강하게 자신의 범행을 부정하면서 불안해하는 내털리. 이 때문에 독자들은 '이 여자가 살인범 아니야?'라고 점차 확신을 갖게 된다. 학창 시절에 어밀리아라는 친구를 괴롭히고, 직장 내 괴롭힘까지 하는 나쁜 여자라는 설정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2부 돈의 시점으로 전개될 때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때부터 내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읽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돈도 사실은 평범하게 당하는 피해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마치 넷플릭스 드라마 시리즈 <블랙미러>를 떠올리게 한다. 반전을 위해서 설계된 스토리. 다만, 추리소설 좀 읽었다 하는 사람이라면 반전이 뻔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래서 반전보다도 인물들이 '회사 동료'라는 관계였던 것에서 스릴이 느껴졌다. 사람들은 회사 안에서 표면적으로는 일을 위해서 움직이지만 심연을 들여다본다면 그 안에서 수많은 뒷 이야기들이 오간다. 공적인 모습 속에 사적인 모습이 가려지기 때문에, 사적인 모습이 드러나면 의외라는 평가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웃는 얼굴 속에 감춰진 수많은 속내들. 이런 미묘함이 묵혀진 '회사'라는 공간, 그리고 미묘함을 드러내는 각종 수단들(예를 들면 회사 이메일, 탕비실에 놓인 음식, 개인 물품들)이 뒤섞여 흥미진진함을 불러일으킨다. 한 번쯤 경험해 봤을 스릴 있는 인간관계가 소설에서 드러나서 인상적이었다.
돈은 보기보다 위험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p.439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보면 알 수 있듯, 이 소설에는 권선징악이 없다. 그래서 보다 보면 답답함이 계속 느껴진다. 내털리는 전형적인 강강약약이고, 돈은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사람이다. 이야기의 주요 인물들이 모두 별로다 보니, 중간중간 등장하는 멜로 서사도 형편없게 느껴질 수 있다.
마지막에는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듯 하지만, 과연 이들이 행복할 수 있을까? 결국 비밀은 언젠가 터져 나오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