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와 가짜 사이의 경계선, 그 곳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SONG: Carlo Rustichelli – Una bravita
스무드에서 닫힌 공간은 2가지가 있다.
주인공의 부모는 한국계 2세대 이민자다. 그러나 그들은 한식을 전혀 먹지 않고, 주인공에게도 한국의 문화와 연관된 무언가를 가르쳐준 적 없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라고 말한다. 즉, 한국계 이민자더라도 주인공은 미국인이며, 한국의 문화는 전혀 모른다. 그가 한국의 풍경을 '하와이 파이브오'라는 드라마에서 보고 우범지대와 부서진 건물들이 가득한 디스토피아로 상상한 것도 그렇다. 그래서 주인공이 처음 한국에 와서 먹은 '김치, 무크(묵), 감 셔벗'과 휴식 시간에 권유받은 공포스러운 건식사우나, 밖에 나가서 마주한 복잡한 갤러리 같은 종로는 전부 낯설고 두려운 것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주인공은 "재미있네요"와 같은 평면적인 감상만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한국계 2세대 이민자는 6~70년대에 '의사, 변호사 등'의 전문직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서 발생한 세대다. 이들은 자녀들도 자신과 같은 전문직을 갖기를 원하고 열렬한 교육을 했으나, 미국 사회에서 소통이나 문화 적응에 고초를 겪었다. 이 때문에 부모자식 간의 소통이 단절되거나 미국 사회에 속하기 위해 한국 문화를 잊으려 하는 특성을 보였다. 혼모노에 나온 주인공의 가족도 전형적인 2세대 이민자인 것이다.
주인공은 미술가 제프의 매니저다. 그는 한국에 제프의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방문했는데, 갤러리 담당자와 함께 제프의 작품 <스무드>를 점검한다. <스무드>는 스테인리스스틸을 미끈하게 세공한 '검은색의 구'다. 제프의 작품에는 의도도 동기도 비밀도 없다.
광택이 도는 구의 표면에 나와 리가 비쳤다. 흰 셔츠를 입은 동양인 둘이. -p.71
겉모습만 보면 주인공도 리도, 같은 한국 사람처럼 보인다. 그 겉모습을 <스무드>라는 작품이 거짓없이 또렷하게 비추고 있다. 주인공의 부모가 주인공을 미국 사회의 일원으로 만들려고 애썼던 모습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하다. 책의 설정으로는 아무 의미도 없는 작품이라지만, 책을 읽으면서 작품 <스무드>가 상징하는 것은 여러 가지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한국인들이 권유하는 한국 문화에 질린 주인공은 길을 잃었다가 우연히 미스터 김이 속한 태극기 부대에 들어가게 된다. 태극기 부대 안의 사람들은 주인공에게 굉장히 친절하게 대했다. 또, 그들은 이승만 얘기를 하며 눈을 빛냈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주인공에게는 한국 문화를 권유했던 다른 한국인들과 비슷하게 '애국심'으로 보일 뿐이다.
한국 사람들이 느끼는 태극기부대에 관한 감정은 비슷하다. 이해가 안 되거나, 안쓰럽거나, 무섭거나. 대체로 부정적인 감정이다. 그러나 미국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태극기 부대는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그들이 건네는 호의가 진실로 느껴질 수 있다. 한국 사람이 보면 거짓으로 느껴지는 마음조차도. 주인공은 닫힌 공간인 태극기부대를 만나고 한국에 대해 닫혀있던 자신의 마음을 연다. 참 아이러니한 관계인 것이다.
SONG: David Fray - schubert moments musicaux 3
책에서는 4장으로 돼 있으나, 뚜렷한 '공간'이 나와있기에 앞 장들과 연계될 듯하여 먼저 평을 해본다.
유신정권 당시, 건축가 여재화는 명당에 국제해양연구소(실은 대공분실 '구의 집')을 짓게 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그는 보조 건축가로 자신의 제자인 구보승을 추천하는데...
이 이야기를 읽으면 당연히 남영동 대공분실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있었던 곳이다. 검색을 해봤더니, 건축가는 다른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 곳도 역시 '국제해양연구소'라는 위장 상호로 운영됐다고 한다. 역사에서 살짝 이야기를 비튼 단편인 듯 했다.
여재화는 구보승에게 이렇게 가르친다. 어떻게 인간을 위한다는 건축가가 이런 곳을 지을 수 있냐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모순적인 태도는 여재화와 구보승이 항상 닫힌 공간에서 살아간다는 것에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먼저 여재화는 언제나 연구실 너머에서 학생 데모를 바라본다. <농민가>나 <아침 이슬> 노랫소리가 연구실까지 흘러들어오지만, 여재화가 있는 곳은 데모가 벌어지는 현장과는 동떨어진 연구실이다.
구보승은 극장 가는 게 유일한 취미다. 그가 보는 영화는 아이러니하게도 <노스페라투>. 독일의 사회적 관습과 위선을 공포로 표현한 작품이다. 사회 비판적인 작품을 즐겨 보는 구보승이나, 그는 철저하게도 현실 세계와는 동떨어진 극장 등과 같은 공간에서만 간접적으로 사회를 접한다. 실제로 그가 '구의 집'을 설계하는 곳도 문이 꽉 닫힌 연구실이다.
사회를 직접 마주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위한 건축을 할 수 있겠는가.
사실 그 시절의 사회조차도 닫힌 공간이다. 여재화는 구보승이 좋아한다던 영화 <노스페라투>를 극장에서 보고 나와 충무로 거리를 걷는다. 이곳은
'공포'를 통해 통치되는 사회다. 당시의 사회는 '구의 집'과 다름 없는 상태였다. 언론이든, 미디어든 모든 곳에 검열이 이뤄지며 통금 시간도 존재하고 형제복지원 사건 등 국가 폭력이 당연했던 사회다. 그런 사회를 깨고자 목소리를 냈던 사람들 덕분에 지금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SONG: LIM KIM - 민족요 (Entrance)
이 책에서 <혼모노>, <우호적 감정>, <잉태기>, <메탈> 등은 본격적으로 인간의 감정과 관계성을 다룬다. 특히, <우호적 감정>은 닫힌 공동체를 비판한다는 차원에서 첫 번째 작품인 <길티 플레져>와도 비슷한 면이 있다. 나는 이 중에서 <혼모노>와 <메탈>을 더욱 인상깊게 보았다.
혼모노에는 대놓고 '진짜'와 '가짜'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혼모노(진짜)는 진짜 무당을 가리키는 것이고, 니세모노(가짜)는 선무당을 가리킨다.
주인공은 수십 년간 신을 모셔오고 영험하기까지 한 혼모노다. 그는 장수할멈을 신으로 모시면서 육고기를 자제하고 술, 담배도 금하는 등 올곧게 무당의 인생을 살아왔다. 그러다 앞집에 스무살 정도 돼 보이는 신애기가 들어오는데, 점점 주인공은 영험함을 잃어간다. 알고 보니, 신애기에게 할멈이 온 것.
신애기가 자신을 비웃는 말에도 꿈쩍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주인공이다. 그는 단골손님인 황보의 판까지도 신애기에게 뺏기고 만다.
이 챕터는 분위기로 독자를 압도한다. 신애기가 황보의 굿판을 하는 날에 주인공이 그를 찾아간다. 나는 이 장면에서 주인공이 작두라도 휘두를까봐 두려웠는데, 정작 주인공은 수많은 사람들의 앞에서 장삼과 흰 고깔, 작두 등을 하나씩 꺼낸다. 그리고 신애기와 본격적인 굿판을 벌인다. 영험함을 잃어 작두 위에서 장삼이 붉게 물들더라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굿판을 벌인다. 마치 아직도 혼모노인 것처럼.
신애기가 쓰러지더라도 계속해서 작두를 타는 주인공의 모습이 정말 신에게 빙의한 것처럼 보인다. 이 장면부터는 정말 혼모노와 니세모노의 경계가 사라진다. 진짜와 가짜라고 부르던 것들이 하나로 합해진다. 진짜와 가짜가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 한계까지도 벗어던진 주인공 자신이 중요한 것이다.
주인공이 할멈에게 하는 말이지만, 나는 이 장면을 보며 마치 주인공이 제 4의 벽을 뚫고 독자에게 말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성해나 작가가 추천한 lim kim의 <민족요> 클라이막스를 들으며 이 장면을 보면 마치 휘몰아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진짜로 굿판을 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말 그대로 텍스트의 한계를 넘어 '압도한다'
SONG: Peach pit - Tommy’s party
우림, 조현, 시우. 바닷가 어촌 마을에서 우연히 헤비메탈이라는 공통점을 찾은 세 친구는 밴드를 결성한다. 유명한 메탈 밴드인 메탈리카가 창고에서 첫 데모를 녹음한 것을 떠올리며 시우의 아버지가 낚시용품을 두는 컨테이너를 아지트로 만들기도 한다.
작은 마을, 세상과는 단절된 조그만 아지트에서 그들은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함께 오토바이를 타면서 밤바다를 내달리기도 하고 공연을 하다가 화상을 입기도 하지만 만족해하는 세 친구. 다소 반항적이지만 청춘의 시간을 보내는 우림, 조현, 시우는 점점 어른이 된다. 그들은 닫힌 공간을 뚫고 열린 세상으로 나아간다.
조현은 어촌마을을 벗어나 홍대에서 대학을 다니고, 시우와 우림은 동네에 남았지만 음악이 아니라 점차 다른 일을 하기 시작한다. 이에 따라 세 친구의 관계도 소원해진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감에 따라 이들이 함께 꿈을 꾸던 아지트는 옛말이 된다.
이 이야기에서는 세 친구의 꿈이 실패한 것처럼 그려진다. 그들이 살던 어촌 마을은 불황이라 사람들이 점차 떠나가고, 아지트는 다시 낚시 용품으로 채워졌으며, 조현과 우림은 싸워 전화조차 받지 않는 상태가 된다. 그들은 각자의 인생을 살아나간다.
그러나 그들의 꿈은 여전히 어딘가에 살아있다. '메탈'이라는 말을 듣고 우림이 나른한 희열을 느끼던 지난날을 떠올리는 것처럼 기억 어느 한 켠에 세 친구가 함께했던 순간이 있었다. 사이가 틀어진 듯 했지만, 좋은 소식이 들리면 같이 기뻐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여전히 존재하듯이.
마지막에 시우와 우림이 아지트를 정리할 때, 우림은 다시 한 번 조현에게 전화를 걸기로 한다. 아지트는 정리했지만, 세 친구에게는 새롭게 시작하는 순간인 것이다.
이 챕터를 읽으면서 이동진 평론가가 영화 <토이스토리>에 했던 평이 생각났다.
어떤 관계가 끝나면 우리는 스스로 잘못한 점은 없나 후회하곤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별은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편이다. <토이스토리>에서 앤디가 장난감들과 이별하며 '고마웠어'라고 말한 것처럼 시우, 우림, 조현은 서로에게 '미안하다' 대신 '고마웠다'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