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실로도 어둠을 짤 수 있지_조혜은

사랑이란 '볶음밥 위 케첩으로 그린 하트'

by 시티오브

출판사: 문학동네

평점: ★★★

한 줄 평: 사랑이란 '볶음밥 위 케첩으로 그린 하트'처럼 부서지기 쉬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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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사랑은

볶음밥 위에 케첩으로 그린 하트 같은 것이어서

언제 무너질까

스며들어 네 몸속에 입맞춤을 퍼부었다

<외삼촌> 中


maxresdefault.jpg MBC <오늘 저녁>


조혜은 시인에게 사랑이란 '볶음밥 위 케첩으로 그린 하트'처럼 금방 무너지기 쉬운 것이다.

사랑할수록 슬픔과 무력이 희망처럼 뒤따온다고 말하는 시인처럼, 사랑이란 불완전하다.

그래서 시인은 사랑이 지겹다고 말한다.



나는 사랑이 너무 지겨워서, 내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달아나고 싶었다

<수족관 얼굴> 中


시인은 마치 수족관 안에 있는 눈이 먼 알비노 송어를 자신과 같다고 비유한다. 알비노 송어는 다른 송어와 다르게 뚜렷한 흰 빛을 띈다. 그래서 관람객들의 눈길을 끈다.

하지만 알비노 송어는 관람객들의 얼굴을 보지 못한다. 이처럼 시인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타인에게도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줘야 하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나는 그가 왜 이런 무너질듯한 불행과 사랑을 말하는지 궁금했다.


<수족관 얼굴>은 시집의 초반에 나오는 작품이다. 그래서 시집을 끝까지 읽으면서 그가 '가족'과 '엄마'라는 시어를 어떻게 다루는지 살펴보면 시인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다.


기다리는 법을 배웠다

우리는 가장 작은 소리

내 몸이 온몸에서 멀어지는가

뛰어오는 발, 내리는 손

익숙하지 않은 말

...

나는 기다리는 사람

매일 조금씩 나를 미뤘다

<방과후 학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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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아이의 엄마다. 엄마는 하염없이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기다릴 수밖에 없다. 아이가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고, 아이가 방과후 학교가 끝나고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림'의 시간 동안, 점차 시인 자신의 정체성보다는 그저 '엄마'로 남게 된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요구하는 '엄마'의 모습 속에서 시인은 외로움과 혼란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그럼에도 시인은 아이를 사랑한다.


아이들이 먹을 요리를 내어놓기 전에 주저앉아 이유도 모른 채 눈물을 쏟고 싶었다

내가 영원히 좋아했다는 것을 모르는 그 사람이

자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한 사람이 울고 있는 것을

영원히 모르고 지나갔으면

<양파> 中


아이에게 내어주는 희생적인 사랑 속에서 시인은 울고 싶으면서도, 아이가 자신의 슬픔을 모르고 지나갔으면 한다. 시인은 아이를 영원히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 시집에는 시인이 아이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아이의 순수한 말과 시인의 대답에는 '사랑'과 '슬픔'에 관한 묘한 의미가 내재돼 있다.


엄마, 간지러우면 이렇게 톡톡 두드려

상처를 긁어내는 내 손을 잡으며 아이가 나를 깨웠다

<개도-굳은살 엄마> 中


아이는 자신만의 방법대로 시인을 위로한다.

이 시집은 크게 '아이와 시인', 그리고 '시인과 다른 가족(시인의 엄마, 남편, 아버지, 언니 등)'과의 관계 속에서 여러 의미가 드러난다. 가장 가까운 가족 사이에서도 '사랑'이란 우울할수 있는 것이며, 언제나 희망과 불안은 일상처럼 함께 있음을 시인은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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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우리의 하나뿐인 방에서 밤마다 커터 칼로 뒤꿈치의 굳은 살을 베어냈는데 남들은 보지 못하는 절반을 더 보았고 함께여서 불안했고 불운속에 온전했다고

<개도-굳은살 엄마> 中


내가 아이들을 매달고 무단 침입한 언니의 집 거실에서

나는 내가 가진 정체성에 대해 헤어질 그 사람과 긴 통화를 했다

<가정폭력상담소-이사> 中


시인은 자신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희망과 절망이 공존하는 곳에서 살고 있다고 얘기한다. 그 것이 가장 잘 드러나는 시가 책의 후반부에 나오는 <리허설>이라는 시다.


지상 8층 건물의 맨 꼭대기에는 조리원이 있었고 아래로는 영수 학원과 어학원이 양옆으로 즐비했다

한 번쯤 복받쳤던 아이와 한 번쯤은 증명하고 싶었던 아이가 줄지어 내려와 노란 버스에 차곡차곡 담겼다

...

건물의 가운데층 중간에는 정신건강의학회가 있었고

양끝에는 치과와 법무법인이 있었다

어딘가 썩고 고장난 사람들이 치료와 이혼과 상속과 학교폭력에 얽힌 망가진 사람들이

...익숙한 간판 아래로 숨었다 심판에 앞서 낯선 보드라움을 기대하며

<리허설> 中


같은 건물 안에 절망과 희망을 다루는 수많은 가게들이 존재한다.

또 건물 안에서도 누군가는 회복과 성취의 기쁨을 누리고, 누군가는 절망을 온전히 느끼게 된다.

이 건물은 우리 세상을 집약해놓은 것과 같다. 첫 부분에서는 강력한 절망이 다소 부담스럽게 다가왔지만 이 시를 읽고 나니, 시인의 감정이 온전히 이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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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의 제목인 <털실로도 어둠을 짤 수 있지>는 보드라운 털실로도 어둡고 거친 절망이 탄생할 수 있다. 즉, 사랑과 희망 속에서도 절망이 탄생할 수 있다는 시인의 생각을 드러낸다. 반면, 절망으로도 희망이 탄생할 수 있다. 이 책의 편집자가 '행복과 불행의 교차 지점이 발생한다'고 평한 것처럼 말이다.


시인은 산문 형식을 통해 긴 문장으로 자신의 감정을 여과없이 털어낸다. 그래서 이 시집은 후다닥 읽기 보다는 오랫동안 생각하고 싶은 시간이 생길 때 읽어보면 좋다. '희망 뒤에 절망, 절망 뒤에 희망'이라는 새옹지마를 표현한 시인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말이다.


다만, 추상적인 시어가 많이 등장하고 의미를 해석하기 어려워서 모든 시를 온전하게 즐기기는 어려웠다. 또,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더욱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소재면서, 시집 전체적으로 절망적인 느낌이 많이 들다 보니 읽기 부담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시인이 사랑과 절망에 관해 깊이 생각해볼 만한 관점을 제공했기 때문에 여운이 남는 시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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