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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딕스릴러와 서스펜스를 좋아한다면

화이트 호스, 강화길 외

by 루헤


<화이트호스>를 포함한 강화길의 7편의 단편집. <음복>과 <가원>은 젊은작가상 수상집에서 읽었던 단편이 화이트호스라는 강화길의 단편집으로 나를 이끌었다. 스릴러, 서스펜스, 고딕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그녀가 이끌어가는 세계로 끌려갈 수 밖에 없었다. <음복>이야 워낙 훌륭한 단편이었고 '고딕스릴러'와 '서스펜스'를 느낄 수 있는 <서우>, <손>을 특히 더 흥미있게 읽었다. 믿고 보는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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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우>

아직도 붙잡히지 않는 연쇄살인범의 이야기. <서우>를 읽으며 너무너무 무서웠다. 가장 감정 이입이 많이 되었던 작품. 주현동에서 일어나는 여성실종사건. 택시안에 탄 주인공은 과거에 있었던 끔찍한 기억들을 상기시키며 택시안에서 극도의 불안감을 느낀다. 나도 같이 극도의 긴장감을 느꼈다. 늦은밤 숨막히는 모과향과 담배향이 매쓰거운 택시안. 운전기사의 과속운전에 한강을 달리던 과거의 택시 안. 불안에 떨었던 내가 떠올랐다. 어쩜 이렇게 주인공의 심리를 잘 묘사 했을까. 주인공은 여성 택시기사를 보며 초등학교 시절 담임선생님의 언어폭력, 차별을 기억해 낸다. 단지 주현동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그녀를 학급에서 외톨이로 만든다. (스포일 것 같아서 마지막 부분은 생략합니다.)


<음복>

수상작이자 개인적으로 가장 훌륭했던 단편. 화자인 '나'가 마치 현재의 '나'인 것 같은 느낌. 처음 참석한 며느리가 보는 희한한 제사 풍경을 섬세한 묘사로 그려냈다. 여성의 부당한 역할을 드러내는 현실을 작가의 언어로 잘 풀어낸 것 같다. 나는 가족 구성원의 심리와 갈등을 치밀하고 섬세하게 그려낸 것이 인상적이었다. 토마토 고기 찜에 고수를 올려내는 이상한 제사상, 사납고 음울한 시고모, 말이 없고 무심한 시아버지 등 여성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절묘한 문장들. '제사'가 판에 박힌 낡은 소재가 될 날이 올수 있을까.



<가원>

<음복>과 가족간의 갈등과 젠더를 다루는 작가의 세계관이 연결되어있는듯 하다. 연장선이라고 할까. '소설속 표현을 빌리자면 <가원>에는 '밥값 하는'여자들과 그렇지 못한 남자 '박윤보'가 등장한다. '낮잠조차 허용하지 않고 손녀를 열심히 공부시키려고 일만 해 온 냉정하고 엄격했던 '할머니'. 소설속의 '나'인 '연정'의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들을 사랑하는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짧은 단편도 금새 휘리릭이다. 치매를 보이는 할머니는 점점 기억을 잃어가지만 돌봄과 양육을 책임졌다. '연정'을 의사가 되게끔 큰 역할을 했다. 연정은 할머니의 삶을 회고해 본다.


작가는 평생 일을 제대로 해 본적이 없지만 애정과 웃음을 제공하는 '할아버지 - 박윤보' 할아버지라고 하지 않고 '박윤보'라고 쓰는 이유는 '할아버지라는 호칭을 쓰면 (애틋한) 감정이 너무 드러날 것 같았다' 고 한다.


'그 무책임한 남자를 미워하는 것이, 이 미련한 여자를 사랑하는 것보다 힘든 것일까.' (73쪽). 할아버지 박윤보는 주인공의 학원비까지 훔쳐가는 무책임했다. 방임에 가까운 돌봄이었다. 할머니의 헌신적인 삶을 생각 해 본다.



<손>

'악귀다, 악귀. 마을에 들어와 사람들을 해코지하고 방해하는년. 그년이 없는 날 귀한 해콩을 삶는 거다. '(81쪽) '손'이 무엇인지 묻자 시어머니의 대답이다. 남편은 인도네시아 근무로 파견에 가 있고 주인공인 나는 아이를 데리고 시부모님이 사시는 농촌에 내려온다. 학생들이 7명 밖에 되지 않는 작은 학교의 교사를 맡는다. '손 없는 날에 메주를 빚던 마을 풍습을 농한기 사업으로 발전' (79쪽) 시키는 이장.


손없는 날에 메주를 빚던 날에 주인공은 그날의 행사를 망쳐버린다.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고 소문이 소문의 꼬리를 낳는 농촌. 읽는 내내 해코지하고 방해하는 '손'이 마치 그녀를 따라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무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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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호스>

어쩜 이렇게 글을 잘 쓸까. 화이트 호스에 나오는 주인공은 여성 소설가이다. 소설속 주인공이 강화길작가 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강화길작가가 소설속 주인공인 것 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White horse)라는 곡에서 제목을 가지고 왔다고 한다. 노래도 들어보았다.


'화이트 호스는 하늘에서 내려운 영적 존재, 혹은 구원이나 선물을 의미하는 것으로 체스터턴은 그 뜻을 활용하여 시를 썼다.' (202쪽)


입주하는 사람마다 사고를 당하거나 죽어나간다는 백년 넘은 고택으로 입주한다. 선망하던 이선아 작가가 살던곳. 그리고 그녀가 실종된 곳. 이선아의 흔적때문에 입주하기도 했지만 소설가이자 주인공은 '나는 혼자 있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것이 내가 그 집에 들어간 진짜 이유'(193쪽)이라고 한다.


이선아가 밑줄을 그어놓은 문장과 그 옆에 메모한 '화이트 호스'를 단서로 책과 논문을 뒤지고 검색을 시작한다. 그리고 노래를 부르고, 글을 쓰고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의미의 화이트 호스를 생각한다. 나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대부분 술술 잘 읽혔지만 <화이트 호스> 나 <오물자의 출현> <카밀라>는 읽다가 멈추고 다시 앞장을 찾아보기도 했다. 여성작가의 책진짜 목소리. 고딕 스릴러와 서스펜스를 느낄 수 있는 작품들. 강화길 작가의 매력이다. 글을 참 잘 쓴다.



<추천>

한국젊은여성작가에 관심이 있는분

고딕 스릴러와 서스펜스에 관심이 있는분

단편집을 원하는분


<블로그의 독후감 중에서 추천하고 싶은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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