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호실로 가다, 도리스 레싱
문학 작품을 읽고 나서 재미있다 또는 인상 깊었다는 말로는 부족한 작품들이 있다. 단지 영국의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도리스 레싱이 쓴 작품이라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책을 덮으며 버지니아 울프가 이야기한 <자기만의 방>과 여성학자 정희진 선생을 읽는다. 11편의 단편 중 <19호실로 가다>의 첫 문장은 의미심장하다.
'이것은 지성의 실패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정원이 있는 커다란 하얀 집, 능력 있는 남편,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 4명의 자녀, 집안일을 담당하는 파크스가 있다. 부족할만한 것이 없어 보이는 주인공 수전은 행복하지 않다. 처음에는 아이들을 돌봐주는 베이비시터를 고용하지는 않았다. 수전은 자기만의 삶이 있는 여성을 원했다. '나 자신이 되는 법'을 온전히 배우기 위해서 익명의 공간 '19호실'이 있는 호텔로 간다. 호텔에서 그녀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혼자 있는 시간과 공간을 간절히 원했다. 아내, 엄마, 안주인의 역할의 옷을 벗고 익명의 존재가 되는 순간을 사랑했다.
누구에게나 '19호실'이 필요하다. 백색 소음이 나는 카페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19호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크고 넓은 집에서 왜 혼자만의 방을 가지기는 했다. '맨 꼭대기의 빈방에 '개인 시간! 방해하지 말 것!'이라고 적힌 마분지가 붙어있었다. 식구들과 파크스 부인은 이곳이 '엄마의 방'이며 엄마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권리가 있음을 인정했다.'( 300쪽) 하지만 그 '엄마의 방'은 가족실이 되어버린다.
소설의 중간쯤이 되자 아이들에게 엄마 역할을 해 주는 입주 가정부 소피를 고용하는 부분에서는 주인공이 안타깝기까지 했다. 자신이 그 크고 넓은 집에서 언제든지 대체 가능한 존재가 되는 것. 자신의 자리가 없어지는 것. 아이들은 입주가정부 소피를 엄마처럼 생각한다는 것.
'지성이 그런 단어들을 금지했다. 지성은 싸움, 삐치기, 분노, 속으로 침잠한 침묵, 비난, 눈물도 금지했다. 특히 눈물을 금지했다. 정원이 있는 커다란 하얀 집ㅇ서 건강한 네 아이를 기르며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려면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287쪽)
아내가 고립과 절망과 소외를 경험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 매슈. 바람을 피우고 아내를 의심하는 매슈. 자신을 이해시키는 것을 포기해 버리는 주인공 수전.
'사람이 호텔에 가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런데도 여성의 행위는 일 그 자체로 인식되거나 말 그대로 인정되지 않는다. 김지은은 안희정 지사가 자신을 네 차례 성폭행했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처음에 곧장 사표 내지 않는 게 의심스럽다고들 한다. 반문하고 싶다. 상사에게 언어적, 물리적 폭력을 당했다고 해서 그 즉시 사표를 제출하거나 고발하는 직장인이 저항과 권리를 배우지 못하는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되겠느냐고. 사표는 생존과 직결된 결단이다.' (130쪽) (은유 작가의 '다가오는 말들' 중에서)
소설은 비극적으로 끝난다. 지성적인 그녀가 왜 문제를 풀지 못했을까라는 의문이 남는다. 억압과 슬픔, 분노를 더 이상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작가의 힘에 이끌려 읽은 소설. 짧지만 강한 여운이 계속 남을 것 같다.
이 작품이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는것. 그 속에서 희망을 본다.
<추천>
억압, 슬픔, 분노를 느끼는 여성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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