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하 나의 엄마들, 이금이
마트에서 계산하려는데 내 앞에서 줄이 짧아지지를 않는다. 동남아 이주여성인듯한 여자가 계산하려는데 마트 점원이 퉁명스럽게 묻는다. '할인카드는 있냐', '결제는 어떻게 할 거냐'. 한국어 한마디 못하는듯한 이주여성의 쩔쩔매는 모습. 고국을 떠나 가족도 친구도 없는 낯선 곳에 어떤 인연으로 왔을까. 폭력과 중노동에 시달리는 결혼 이주여성에 관한 뉴스를 접하면 그 마음을 다 헤아릴 수는 없다. 국제결혼중개업소 홈페이지에 있는 '국가별 신부들의 장점' 남존여비, 여필종부 또는 일부종사와 같이 버젓이 드러낸다고 한다. 책에서 나오는 인물인 100년 전 인물인 버들, 홍주, 송화를 보며 오늘날 결혼 이주여성의 모습이 겹쳐졌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한국 이주 이민들의 모습을 다룬 책이다. 근현대사 영화를 본 것 같다. 가볍게 보았지만 몰입하면서 읽을 수밖에 없었던 책. 단순히 '재미있다'라고 표현하기엔 부족한 책이다. 1903년 나라를 위해 더 이상 희생하고 싶지 않았던 더 나은 세상을 꿈꾸고자 조선인들은 하와이(당시 '포와'라고 불렀다)에 도착한다. 사탕수수 농장에 일하러 온 그들은 대한제국 정부가 최초로 인정한 공식 이민자들이라고 한다. 사탕수수가 그렇게 날카로운 잎을 가졌는지도 몰랐다. 나이보다 훨씬 더 들어 보이는 첫 이민자들의 외모는 채찍질과 뙤약볕에서 노예처럼 일한 숱한 세월의 흔적이었다. 1905년까지 하와이로 이민 간자 사람들은 7,200명이었다고 한다. 노예처럼 일했던 그들. 남의 나라 황후를 죽이고 나라를 빼앗았던 일본인에 대한 증오. 중국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세우고 임시정부를 위한 성금을 모았던 이주민들. 힘없는 나라의 설움에도 꿋꿋하게 버텼던 이들.
하와이에 있던 남성 이주노동자들은 조국으로 자기 사진을 보내 신붓감을 찾는다. 그런데 그 사진이 10년 전 또는 20년 전에 찍은 사진들이니 새로운 곳에서 희망을 찾는 신부들은 처음 만나는 신랑의 모습을 보고 대성통곡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작가는 한인 이주민 100년 사를 다룬 책을 보며 '사진 신부'들의 모습을 보고 낯선 곳에서 뿌리를 내리는 이들의 모습을 글로 써야겠다는 결심을 한 것 같다. 어쩌면 평안도와 경상도 사투리의 묘사를 탁월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어디서나 흔히 들을 수 있는 ‘알로하’라는 말은 단순한 인사말이 아니었다. 배려, 조화, 기쁨, 겸손, 인내 등을 뜻하는 하와이어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말이었다. 그 인사말 속에는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고 존중하며 기쁨을 함께 나누자는 하와이 원주민의 정신이 담겨 있다고 했다.” (357쪽 「판도라 상자」 중에서)
버들 양반 출신이었지만 의병이었던 아버지의 죽음으로 집안이 몰락한 버들. <혈의 누>, <모란봉> 소설을 읽을 만큼 공부하고 싶었지만 가난해진 집안 사정 때문에 공부하지 못한 버들. 용기를 내어 새로운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싶었던 희망은 누구도 막을 수 없었을 것 같다. 평안도 출신인 서태완과 결혼하지만 진짜 농장주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서태완은 독립된 조국을 물려주고 싶다는 희망에 홀로 중국으로 떠난다.
홍주 두 달 만에 남편이 죽어 친정으로 쫓겨난 홍주. 주홍 글씨처럼 과부로 낙인찍힌 그녀에게 조국에 대한 희망이 있었을까. 조덕삼과 결혼해 아들 (성길)을 낳자 또다시 버림을 받는다.
송화 무당 손녀였던 송화. 동네 친구들에게까지 돌팔 매질을 당한 송화와 송화 엄마. 송화는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파도를 헤쳐서 도착한 지상낙원 하와이(포와). 그녀들의 희망은 노예와 다를 바 없는 중노동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지막 즈음에는 화자가 버들의 딸인 진주(펄)로 바뀌면서 더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나라를 잃은 설움과 노예 다름없는 삶 속에서도 끈끈했던 이주민들의 모습에서 희망을 배운다. 따뜻한 여성 공동체에게서 배려와 사랑을 느꼈다.
<추천>
결혼 이주여성을 접해 보았다면
이민의 1세대를 이해하고 싶다면
하와이에 관심이 있다면
근현대사에 관심이 있다면
여성연대의 힘을 믿는다면
<블로그의 독후감 중에서 개인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글을 기억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