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작품들이 다 탁월하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작가, 김초엽 작가의 <인지 공간>은 내가 선호하지 않는 SF 세계를 다룬 주제라서 그런지 집중이 잘되지 않았다.
강화길 작가의 <음복>
수상작이자 개인적으로 가장 훌륭했던 단편. 화자인 '나'가 마치 현재의 '나'인 것 같은 느낌. 처음 참석한 며느리가 보는 희한한 제사 풍경을 섬세한 묘사로 그려냈다. 나는 가족 구성원의 심리와 갈등을 치밀하고 섬세하게 그려낸 것이 인상적이었다. 토마토 고기 찜에 고수를 올려내는 이상한 제사상, 사납고 음울한 시고모, 말이 없고 무심한 시아버지 등 여성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절묘한 문장들. '제사'가 판에 박힌 낡은 소재가 될 날이 올 수 있을까.
최은영 작가의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이 단편은 우리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주인공 '희원'이십 년 전 영어 에세이 '선생님'의 수업을 들으며 있었던 일을 회상한다. 은행 비정규직을 퇴사하고 편입한 '희원'은 여성이자 또한 비정규직 강사라는 선생님을 만난다. 현실적인 여성의 문제를 들여다보는 방식이 우리에게 질문을 던져주는 것 같다.
장희원 작가의 <우리들의 환대>
인물의 감정선을 처음부터 끝까지 몰입하며 따라갔던 작품. 가장 흡입력이 좋았던 작품이다. '낯섦'에 대해서 이렇게도 쓸 수 있을까? 아들을 호주로 유학 보낼 만큼 중산층, 흔히 정상 가족이라고 불리는 '재현'과 아내가 호주에 있는 아들을 만나러 가는 과정을 그렸다. 자신의 아들이 게이일 가능성과 흑인 노인과의 우정 이상의 관계라는 것을 의심하는 불안과 불쾌를 이토록 훌륭하게 묘사할 수도 있구나 싶었다. 해설에 따르면 단지 익숙한 것을 가까이하고 익숙한 것으로 삶을 구성하려는 관성이 낯선 것들을 '우리'의 세계 바깥으로 '어두침침하고 더러운(391쪽)'축사'로 의미화하도록 한다
장류진 작가의 <연수>
좋았던 작품이다. 장류진은 <일의 기쁨과 슬픔>을 쓴 작가이다. 명문고 입시, 대학, 회계사 시험 등 탄탄대로였던 주인공 '주연'은 아무리 노력해도 어려운 것은 바로 '운전'이다. 작가는 우리 사회의 불필요한 간섭과 편견을 성공한 비혼 여성인 '주연'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해설에 따르면 도로는 남성성이 지배하는 공간이라고 한다. 누가 더 크고 강한 배기량과 몸집을 지니고 있는지 혹은 누구보다 빠르게 앞서 나가고 있는지 같은 물리적인 우월이 곧바로 눈에 들어오는 곳이라고 한다.
7편 모든 작품이 작가들의 개성이 돋보인다. 흡입력이 좋다. 탁월한 문장과 캐릭터의 심리를 이렇게 섬세하고 치밀하고 탁월하게 그려낸 작가들이 대단해 보인다. 모든 작품들이 '페미니즘'과 '퀴어'가 소재인 것은 다소 아쉽다.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다양한 사회문제들. 세상 밖으로 나와야 하는 부조리한 소재가 부족했던 아쉬움이 있다. '작가의 말'이 있어서 작가의 고민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고 해설이 있어서 모르고 넘어갔을 법한 내용을 공감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