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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마스테 Nov 01. 2020

느림의 미학

나는 이방인이었다. 여행객으로 돈을 쓰는 입장과는 달리 거주하면서 느끼는 시선은 그간 경험할 수 없는 좌절의 경험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런 경험들이 마음 근육을 키우는데 큰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추운 어느 겨울에


따뜻한 봄이 어서 와주길 바라는 추운 어느 날이었다. 뉴질랜드는 집안이 한국처럼 따뜻하지 않으니 집에서도 추고 밖에서도 추웠다. 뼛속을 타고 다니는 바람통이 몸에 있는 것처럼 달달달 떨면서 지내던 겨울.  대형 마트에서 장을 다 보고 계산하려고 줄을 서고 있었다. 내 앞에 계신 계산을 다 마친 키위 할머니와 마트 직원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빨리 계산을 마치고 가야 하는 '나'와 느리게 살아가는 '그들'의 대화 사이에 나만 마음이 동동거렸다. 많은 부분을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그동안 혼자 사시는 할머니는 감기에 걸려서 힘들었고 마트에 오랜만에 나와서 식료품을 사신다는 말 같았다. 흰머리의 할머니는 착한 얼굴과 눈매를 갖고 계셨다. 내 뒤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계산하려고 줄을 서기 시작했고 나는 마음이 더 동동거렸다. 아랑곳하지 않고 마트 직원과 할머니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무슨 대화가 오갈까 귀를 쫑긋 하고 듣고 싶었지만 더 이상 들리지는 않았다. 말동무가 되어준 점원에게 할머니는 진심으로 고맙다는 표정이었다.  대화를 마치고 공항에서 헤어지듯 서로 진한 포옹까지 하고 난 후 두 분의 대화는 끝이 났다.


마트 직원은 나에게 미안했는지 계산하면서 틈틈이 나를 보며 할머니의 삶이 얼마나 버거운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남편이 살아있지만 병이 심해서 요양원에 있고 할머니는 85세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혼자 살기 시작했는데 얼마나 외롭겠냐. 자식들은 모두 다 호주에 있다. 젊은 나이에도 혼자 사는 게 쉽지 않지 않냐. 면서 중간중간에 나의 눈을 쳐다보며 동의를 확인했다. 그제야 점원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가늠 하기는 힘들지만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50대 중후반 정도의 키위 아줌마였다. 할머니를 걱정하는 마음이 크겠지만 혼자 살게 될 수도 있을 자신의 미래를 걱정했을까. 점원은 계속 말을 이어갔는데 그날따라 아주 쏙쏙 잘 들렸다. 할머니는 외로워서 버려진 고양이를 입양해서 키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고양이가 아프기 시작했다고 한다.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는 잘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많이 아픈 듯 아무것도 먹지 못하자 고양이를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면 할머니는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냐. 할머니에게 감정이 전염된 듯한 점원의 이야기는 나에게도 전염이 되었다.



계산을 다 마치고 나오는 길. 추웠던 겨울. 혼자 사시는 온기 없는 할머니의 추운 겨울 집을 생각해 본다.  총알배송, 로켓 배송으로 익숙한 우리에게 택배기사 과로사 같은 기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들의 느려 터진 생활도 함께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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