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조금 괜찮은 사람이었구나!

'더 글로리'와 내 유년시절 이야기

by 책꿈샘 김지원

'더 글로리' 를 보았다.


끔찍한 학교 폭력을 당한 여주의 복수극!


잔혹하고 끔찍한 영상을 못 보는 나로서는 굉장히 용기를 내서 본 작품이었다.


8화까지 시청을 다 한 후,


영상의 잔상보다


내 유년 시절이 자꾸 생각났다.


중 1 때였다.


내 처음 짝꿍은 눈이 아주 큰 아이였다.


주희(가명)는 가끔 나에게 수학을 물어보기도 하고, 영어 교과서에 발음 나는 대로 적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었다.


나는 공부를 가르쳐 준다는 이유로 주희에게 약간 지적 허세를 부리기도 했었다.

(대단히 공부를 잘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우리는 그 나이 아이들이 그랬듯 별 시답지 않은 일에도 킥킥거리며 웃어댔고


당장 나올 중간고사 성적에 대해 한숨을 짓다가도 좋아하는 가수가 가요톱텐에서 1위를 한 것에 대해

흥분했었다. 그런 시절이었다.


그런 주희의 얼굴이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었다.

쉬는 시간마다 우리 반에 여왕벌 무리와 어울리면서..


그리고 조금 멀어졌던 주희와 다시 짝꿍으로 만나게 되었다.


그때 나는 주희의 손등에 난 상처를 보았다. 묘하게 붉은 점으로 박힌 상처들.


예리하게 찍힌.


-이거 왜 이래?


주희의 손을 낚아채며 물었다.


-아니야


서둘러 손을 감추었고 뭔가가 일어나고 있음을 직감했다.


쉬는 시간, 나는 수다를 떠는 척하며 주희와 그 여왕벌 아이들을 지켜보았다.


처음엔 장난 같아 보였지만 아니었다.


-할아버지가 외국에서 사 준 거야.


여왕벌이었던 p는 검은색 샤프를 꺼내 주희의 손등을 장난인 듯 아닌 듯 찍어 내리고 있었다.


그 일은 며칠이 지나자,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고 방관하는 장난으로 여겨졌다.


-나만 아니면 돼!


누군가 희생이 필요하다면,


그건 나만 아니면 된다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던 걸까?


왜 주희였을까?


왜 나는 아니었을까?


내가 아니어서 묘한 안도감과 그게 친구라서 느끼는 죄책감이 어우러져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그런 용기가 났을까?


주희의 상처를 보고 2-3일 지난날이었다. 쉬는 시간에 여왕벌 무리에게로 갔다.


내가 가진 모든 용기를 끌어모았고,


화살이 주희가 아닌 나한테로 올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내, 내... 친구 괴롭히..지..."


뒤에 '마'는 붙이지도 못한 채 나는 몹시도 떨리는 목소리로 끝내 울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저쪽 편에서 어떻게 나올지 두려워하면서...


-이게! 장난하냐?


소리치며 여왕벌과 무리들이 덤빌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때 어떻게 방어하지? 속수무책으로 맞고 있을 나를 상상하면서.


나는 바들바들 떨면서 온몸으로 저항했었다.


그런데!!


- 칫!


단 그 한 마디였다.


치... 라니!


전혀 예상 밖 답안지를 받아 들고 나는 당황했었다.


그리고 한 마디 더!


-알았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건성으로 '알았어'라는 대답이었다.


별 일도 아닌데 어디서 굴러온 소심쟁이가 찾아와


마지막엔 끝내 울음까지 터트리는 찌질한 모습을


그들은 한 편의 코미디를 감상한 듯한 태도로 일갈했다.


그때 느꼈던


당혹감과 모멸감은


유년 시절의 한 부분만은 아니라는 걸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다.


가해자의 태도란 으레 그랬다.


-장난으로 그랬어요.


-별 것도 아닌데..


복수를 꿈꾸고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온몸으로 바들바들 떨어야 하는 건


늘 피해자 쪽이라는 것을.


열네 살의 법칙은 계속 진행 중이다.


어쨌든,


그날 이후로 그들은 주희를 괴롭히지 않았다. 어쩌면, 내 친구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들었는지 모른다.


다른 대체를 찾았을지도.


시간이 지나,


내가 그때의 모멸감을 이겨낸 이유는 이거다.


똑같은 일이 벌어지게 되더라도


나는 방관하지 않겠다는 결심!


영혼까지 끌어모아 바들바들 떨면서


두 주먹을 꽉 쥐더라도


참지 않겠다는 결심!




그 결심은 내 유년 시절 이 일로 시작된 거였으니

그 시절,

소심하고 두려움에 가득 찬 나였을지라도


-넌 좀 괜찮은 사람이었다고.


그런 마음이 고단한 현실의 무게를 이겨내는 힘이 되어 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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