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독서 입문기 1탄
서른에 결혼을 하고 지금까지 총 일곱 번 이상 이사를 다녔습니다.
세미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저에게 항상 책만큼은 예외였어요.
"다른 건 괜찮은데, 책이 참 많네요! 사부님이 책 좋아하시나 봅니다. 허허"
항상 이사 견적을 보러 오시는 분은 저 말을 합니다.
저 책의 주인은 나라고. 남편은 저 책의 0.1프로의 지분도 없다고요!라고 말 한 적은 없습니다
모두 제 책이었지만 구구절절 말하기 귀찮아 그 편견 그대로 받아들이고 "네네"라고 퉁치고 말았죠.
그렇게 신혼시절부터 결혼기념일 16년을 지나는 지금까지 저는 책을 전혀 읽지 않은 남편과 살았습니다.
간서치 부인을 둔 남편은 때로는
"내가 딱 허생 부인의 심정을 알겠어! 만날 책만 보고 있으면 뭐가 돼?"
라며 아주 가끔 저를 구박했죠.
그나마 초등학생이 된 아이가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커 가는 모습을 보며 그거 하나만은 엄마 닮아 좋다며 인정했던 남편이!!!
갑자기 어느 날, 문득, 불현듯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재미난 책 없어?"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그 말에 소오름이 돋았죠.
제가 뭐 잘못 들은 줄 알았어요.
'이 사람이 책을 읽겠다고!'
지난 몇 년 동안 주말 루틴은 이랬습니다.
저는 도서관을 가고(가끔 아이도 같이 가고) 남편은 주말마다 넷플릭스 시리즈를 빌드업하듯 완결하고 유튜브를 마스터하며 스마트폰과 일체화를 이루며 살았죠.
그랬던 남편이 책을 읽기 시작하니, 저는 제 나름의 고민이 생겼습니다.
-뭐지? 내가 뭐 잘못한 게 있나? 회사에 힘든 일이 있나?
온갖 생각이 들었어요.
어쨌든 지난 두 달 동안 미친 듯 책을 읽는 남편을 목격했습니다.
-도서관 언제 갈 거야? 같이 갈까? 근데 대출은 어떻게 하는 거지?
-도서관은 왜 공휴일날 쉬어? 24시간 개방 아니야? (무슨 편의점인가??)
-소설 읽으면 이해가 돼? 잘 읽는 방법이라도 있나?
-요즘 책은 왜 이렇게 sf나 미스터리가 많지?
책에 대해 전~혀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없던, 그래서 그런 데이터가 없던 저는 저런 질문을 쏟아내는 남편을 보며 약간 정지된 상태로 눈만 끔벅거렸죠.
어쨌든 남편은 지금까지 쭈욱 퇴근 후 계속 책을 탐독하기 시작했고 언젠가 대화형 A.I가 데이타셋을 마치고 출력을 하기 시작하는 것처럼 저한테 마구 질문과 답변을 내놓지 않을까? 그런 특이점이 우리 집에도 닥치지 않을까? 그런데 왜 저 사람은 저렇게 바람직하게? 변했을까? 를 의문으로 남긴 채 지켜보고 있는 중입니다.
주말마다 호젓하게 도서관을 유영하는 저만의 루틴이 막 독서에 입문한 초보 독서가 남편 때문에 조금 방해받긴 하지만요.
제 직업이 독서교육가가 아니겠습니까?
한참 길 잃은 어린양 같은 초보 독서가를 위해 기꺼이 길을 보여 주어야겠어요!
(* 다음에는 왜 갑자기 책을 읽게 되었는지 한 번 파 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