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사회

속도의 시대에 필요한 것

by 책꿈샘 김지원

“앞으로 세상은 어떻게 될까?”


20대 시절, 나는 국가적 위기였던 IMF를 온몸으로 관통하며 이 질문을 품고 살았다. 미래를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감지하고 대비할 수 있다면, 이렇게 억울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때부터 미래학 서적에 빠졌다.

국내에서는 박영숙 작가의 세계미래 시리즈를 거의 다 읽었고, 영국의 경제학자 린다 그래튼의 <일의 미래>와 <100세 인생>은 여러 번 반복해 읽었다. 다보스 포럼 이야기를 찾아다녔고, 앨빈 토플러의 책도 손에 닿는 대로 읽었다.


미래학자들이 책에서 말한 장면이 몇 년 뒤 신문 기사로 현실이 되어 나타날 때면, 묘한 쾌감이 밀려왔다. 마치 거인의 어깨에 올라 세상을 조금 먼저 내려다본 기분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감정은 ‘통찰’이라기보다 ‘아는 척’에 가까웠다.


‘너희는 아직 모르지?’ 하는, 작고 은근한 자만감 같은 것.


하지만 요즘 세상의 변화를 바라보며, 그때 내가 의지했던 미래 예측들이 점점 무력해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변화의 속도는 예측을 비웃듯 앞질러 가고, 우리는 어느새 ‘예측 불가의 사회’ 한가운데에 서 있는 것 같다.

나중에는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미래가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자포자기와 체념이 뒤섞인 심정이었다. 그만큼 나는 ‘속도’에 대해 점점 무감각해졌다.


문득 지금 우리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사회’를 살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프롬프트를 입력하면 챗GPT가 척척 답을 내놓고, 몇 초만 기다리면 자판기에서 음료수가 튀어나오는 것처럼 답이 나오는 사회. 처음엔 신기했지만, 그 감정은 금세 무덤덤함으로 바뀌었다.


‘남들도 다 이런 답을 받겠지.’


어딘가 평균값으로 수렴하는 느낌이 들었고,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다른 해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사회가 ‘배움이 필요 없는 사회’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학습과 배움은 더 강화되고, 더 빠르게 요구된다. ‘어떻게 잘 배우는가’를 연구하는 학습과학 전공이 대학에 생겨난 것도 그 흐름을 보여준다.


빠른 사회에서는 빨리 배우고, 더 효율적으로 자기 것으로 만드는 능력이 중요해진다. 퀵 러너, 패스트 러너라는 말이 괜히 등장한 게 아니다. 학습법이 유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학습의 결과다.

이제 결과는 하나의 정답으로 수렴되지 않는다.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100개의 답이 나온다. 각자의 배경, 경험, 선택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정답’이 아니라 해석틀이다.
자기만의 질문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틀, 자신의 삶과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사고의 구조 말이다.


자기만의 해석틀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유튜브와 SNS가 쉴 새 없이 쏟아내는 콘텐츠를 소비하기만 해서는 어렵다. 오히려 일정한 거리감을 두고, 멍하니 생각할 수 있는 시간, 깊이 읽고 사유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것들은 모두 ‘속도의 시대’와는 정반대에 있는 행위들이다.


그래서 더 의식적으로 필요하다.


“잠깐의 쉼이 필요하다.”


'잠깐의 쉼'이란 단순히 멈추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속도가 아닌 나만의 속도를 회복하는 일이다. 의도적으로 멍 때리는 시간, 생각이 흘러 다니도록 내버려 두는 시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지만, 결국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그 속도를 살아가기 위한 연습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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