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깎이 책쟁이로 시작했지만...
오른손 엄지가 꺾여서 정형외과에 갔다. 폭염주의보가 내렸고 뚜벅이인지라 땀을 뻘뻘 흘리며 병원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가는 길에 우리 동네 도서관이 보였다.
‘잠시만 들러서 신간만 보고 오자!’
분명 그럴 생각이었는데 나는 내리 두 시간을 눌러앉았다. 그날 정형외과에 가지 못했고 책만 잔뜩 빌려와 집으로 돌아왔다.
“세상에! 정형외과에 가라고 했는데 도서관만 갔다 와?”
퇴근한 남편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병원에 가지 않았던 이유를 대자면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는 아이스크림 수만큼이나 댈 수 있었지만 그날만큼은 나도 어이가 없었다. 안소영 작가가 쓴 <책만 보는 바보>가 생각났다. 간서치라 불리는 이덕무의 책 사랑과 생애에 관한 책인데 나 스스로 간서치같다는 생각에 말이다.
원래부터 이렇게 책을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 나는 문학소녀가 아니었다. 책과는 거리가 멀었는데 우연인지 도서관도 멀었다. 공부와는 담을 쌓을 수 없으니 책이라도 담쌓겠다는 심보였는지 제대로 본 책도 없었다.
그러다가 책을 본격적으로 읽게 된 건 스물일곱 살이었다. 나의 스물일곱은 등 따습고 배부른 시절이었다. 처음으로 기본 욕구가 충족이 되자 매슬로우 씨의 말처럼 상위의 욕구가 튀어나왔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질문 없는 삶을 살다가 스스로 던진 묵직한 질문 하나가 나를 흔들어 놓았다. 하루하루가 슈퍼 태풍급 앞에서 경망스럽게 흔들어대는 주유소 앞 바람풍선이 된 기분이었다. 질문을 던졌으니 답을 찾고 싶었다.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묻지 못했다. 찌질한 연애사까지 나눈 절친에게도 묻지 못했고, 딸자식이 어엿한 직장인이 되었다며 앞으로는 본인의 노후만 신경 쓰겠다는 부모님께도 말하지 못했다.
답을 찾고 싶은 마음에 동네 도서관을 찾아갔다. 불행하게도 그때도 도서관은 멀리 있었다. 하지만 마음만 있다면 거리 따윈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걸 그때 알았다.
이렇게 해서 책쟁이가 되었다면 나는 이 아까운 지면에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주말마다 도서관에 갔지만 뭘 찾아야 할지 몰랐다. 책에 코 박고 읽는 사람들 틈에서 나는 알갱이의 크기에 따라 분리하는 좁쌀과 콩 실험이 생각났다. 모두가 잘 빠져나갔지만 나만 못 빠져나간 불순분자, 나는 콩이었다.
내가 본격적인 책쟁이가 된 건 우연한 일 때문이었다.
통근 네 시간의 힘!
살다 보니 집과 직장과의 거리가 차로 네 시간이 되었다. 지하철을 타고 기차를 타고 택시를 타야 하는 극한 통근의 시간을 겪었다.
“어머! 김 선생님! 매일 소풍 가는 기분이겠어요? 기차 타고 다니니까.”
무슨 소풍을 해뜨기 전에 나와 해 지면 들어간단 말이냐?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허허 웃었지만 사실은 억울했다. 퇴근 후, 누구는 편안한 자세로 티브이 리모컨을 켜며 두 다리를 뻗을 때, 나는 죽어라 집을 향하여 두 다리로 버티며 지하철에서 러시아워 시간을 견뎌야 하니 말이다.
‘뭐라도 하자! 네 시간이면 하루에 1/6이야. 허투루 쓰지 말자!’
분기탱천하며 이를 악물었다. 그 기간 동안 책을 읽었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 권이었다가 이틀에 한 권, 하루에 1권이 되었고 일 년에 300권을 읽었다. 만약 그 시간 지하철에서 춤을 출 수 있었다면 나는 30대에 춤 잘 추는 선생님이 되었을 것이고 뜨개질을 했다면 뜨개질의 여왕이 되었을 것이다. 그 2년 동안 책을 읽었으니 늦깎이 책챙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책쟁이가 되고자 마음먹은 건 아니었는데 통근 네 시간을 통해 나는 책 읽는 사람, 수불석권의 삶을 살게 되었다. 훗날, 이런 나의 변화된 모습은 <넛지>라는 행동경제학 책을 통해 조금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넛지>는 인간은 절대 합리적이지 않으며 환경통제의 힘으로 인간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하는 책이다. 나는 책을 읽지 않는 인간이었지만 지하철과 기차에 갇힌 환경의 영향으로 책 읽는 사람이 되었다. 이런 점에서 산다는 건 참 재미있다. 우연으로 시작한 일이 겹겹이 쌓이는 시간의 힘을 받으면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렇게 2년, 홀로 독서를 했다. 마음 가는 대로 읽다 보니 문득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읽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직장인 독서 모임에 나갔다. 2주에 한 번 월요일마다 모여 책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었다. 그 모임에 4년 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부지런히 참여했다.
직장인 독서 모임은 나에게 있어 다양한 책을 읽으면서 동시에 다양한 사람을 읽을 수 있는 아주 색다른 시간이 되었다. 그 시간을 자양분 삼아 독서교육을 전공하는 대학원에 갔고 <국내 직장인 독서 모임>에 관한 실태 연구를 논문으로 제출했다. 이후에는 늦깎이 책쟁이에서 늦깎이 엄마가 되었다. 세상에서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은 엄마가 되는 일이었는데 그 기간을 책으로 버텼다.
지금 나는 ‘책으로 꿈을 꾸는 엄마’라는 뜻에서 ‘책꿈맘’이라 스스로 부른다. 스물일곱을 넘어 사십 대 중반을 향해 달리는 나에게 ‘책’은 인생의 구심력이다. 원하지 않은 일을 해야 하거나 뜻하지 않은 일을 겪을 때, 심지어 사이코패스 같은 상사와 일을 하게 되는 엄청난 불운을 겪을 때도 책은 나를 끌어당기는 힘이 되어주었다. 때로는 무릎을 세워 얼굴을 묻고 있을 때 나를 일으켜 세워주기도 하고, 쉼 없이 달릴 때 잠시 멈추어 방향을 가늠케 해 주고 멈추고 있을 때 이젠 달려 나갈 때라고 말해주기도 한다.
읽는다는 건 삶의 모든 점과 점들, 인연과 필연이 만나는 수많은 점들을 이어 나만의 원으로 만들어 주며 세상을 향해 잘 굴려 가는 바퀴처럼 만들어 주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인생 후반전도 ‘책으로 꿈을 꾸는 엄마’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