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와 시도!
지금 나는 초등맘이다. 스스로 육아맘이라고 하는 건 생후 3년까지라고 정의 내리고 시작하겠다.
육아맘 시절, 책 읽기를 왜 끄집어냈을까? 지금 육아 전쟁을 치르는 분들을 위해 ‘책을 읽으시오!’라고 절대 말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생각보다 군살이 빨리 붙으니 꼭 홈트를 시작하라고 말하고 싶고, 처음 하는 이유식에 목매지 말고 가끔 시판하는 이유식을 사 먹어도 좋다고 말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을 소환하는 것은 책쟁이로서의 내 삶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치명적인 매력이 그 시절에 있었음을 밝히고 싶기 때문이다.
아기를 키우는 매일이 쓰러진 도미노와 같았다.
뭐부터 세워 차근차근 일을 진행해야 할지 몰라 늘 우왕좌왕했다. 아기가 태어나고 몇 달, 눈은 게슴츠레 떠 있고, 한 손에는 식은 젖병이, 한 손에는 딸랑이를 무수히 흔들어대는 정신없는 날들이었다. 그런 바쁜 일상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한 일이 있었다. 바로 아기가 제대로 발달하고 있는가? 를 수시로 점검하는 커뮤니티 활동이었다. 내 아이가 엄마들이 알려주는 평균 잣대에서 벗어나면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온 새벽, 아이의 발달 상황이 평균보다 떨어질 때 나타나는 사실이 무엇인지 검색을 했고 그 결과는 위로보다 걱정을 더 키웠다. 아기도 키워야 하는데 걱정 인형 수백 개는 더 키워야 할 판이었다. 모든 것을 아이의 발달 상태에 맞춰 일비일희한 생활이었다.
꼬물꼬물거리는 아이를 키운다는 건 내게 두려움이었다. 나의 보살핌 하나에 아기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 생존 센서가 감지되는 것을 보고 나는 두려웠다. 내가 누군가를 책임질 만한 힘이 있는가? 나는 그럴만한 사람인가? 아기를 낳고 돌보는 순간, 나는 내 안에 있는 연약한 나를 보았다. 내가 강해져야 하고 내가 달라져야 함을 직감했다. 그러나 변화는 항상 두려운 것이고 그래서 자꾸 회피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자, 아기도 해와 달의 운행 시간을 체득했는지 밤에 통잠을 자는 신공을 발휘하였다. 내겐 격동의 시대가 한차례 지나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동안 아기 발달에 뒤처질 때마다 무한 검색으로 밤을 새운 일, 평균적인 잣대로 아이를 비교한 일들이 떠올랐다.
이러한 육아 경험은 토끼를 따라 굴속으로 들어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이전과 완전 다른 세계를 체험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그 체험이 판타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나에게 육아는 환상체험이 아닌 춘추전국시대와 같은 ‘난세의 시기’였고, 이를 타파할 병법이 절실히 필요했다.
27살, 갑자기 찾아온 ‘어떻게 살아야 하지?’라는 질문은 나를 늦깎이 책쟁이로 만들어줬는데 이때 책은 힘들고 지친 삶에도 그래도 ’ 킵 고잉‘ 하라며 나를 담금질해 주는 죽비소리와 같았다.
그리고 36살 12월, 엄마가 되어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살아야 하지? 버전 2.0이었다.
아이가 태어나서 한동안 놓고 있던 책을 다시 집어 들었다. 하지만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예전 직장인 독서 모임 때가 생각났다. 혼자 읽는 것보다 여럿이 같이 읽는 게 좋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때마침, 근처 엄마 독서 모임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연락을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이랬다.
“아이를 데리고 오면 안 돼요!”
육아맘 독서 모임에 아이를 데리고 오면 안 된다니! 이 아이러니한 현실 속에서 나는 실망했고 또 오기가 생겼다. 나 같이 때와 장소, 여건 모두에 구애받는 엄마에게 딱 맞는 독서 모임이 없을까? 궁리에 빠졌다. 그러다가 <온라인 독서 모임>이라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온라인이라면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을 것이다. 나 같은 육아맘에게 딱이었다.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바로 <온라인 독서 모임>에 관한 로드맵을 세웠다. 아무래도 직접 만나지 않는 책모임이다 보니 이를 상쇄할만한 몇 가지 규칙이 필요했다.
책 선택에 자유를 두기, 약간의 강제성 두기, 책을 통해 성장하는 기쁨 주기.
규칙을 정한 후, 이 모임의 책 읽는 방식을 정해야 했다.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단순히 같은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는 형태가 아닌 각자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그 결과물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계획을 세웠다.
온라인 독서 모임의 이름을 ‘꿈을 이루는 독서’라고 정했다. 나처럼 성장을 꿈꾸는 엄마들의 모임이다 보니 모임의 콘셉트도 ‘책을 통한 자기 성장의 기쁨’이라고 적었다. 구체적인 실행 방법은 2주에 1권에 자신이 원하는 분야의 책을 정해 읽고 리뷰 남기기였다.
대략적인 설계도가 그려지고 나는 모임에 참여하기 원하는 분들을 모집했다. 대략 100명 정도가 모였는데 6개월이 지나자 실제로 활동하는 사람은 40명 정도로 추려졌다. (2021년 현재 안타깝게도 그 모임은 잠시 휴식 상태이다. )
당시가 2015년이었고 각자의 상황 때문에 비대면으로 모임을 구성했다는 점에서 어찌 보면 지금의 코로나 시대 독서 모임과 닮아 있다. 요즘 나는 우스갯소리로 이미 6년 전에 코로나 시대에 알맞은 독서모임을 기획했었다며 스스로 얼리어답터라고 말하곤 한다.
돌이켜보면 그런 발상과 용기가 어디서 나왔을까? 싶었다. 지금은 무엇을 줘도 못할 것이다. 특히 나처럼 어떤 분야에 리더가 되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말이다. 나는 직장 회식에 참여하면 항상 구석 자리에 앉아 있는 스타일이다. 이런 내가 그것도 온라인 세상에 모임장이 되어 운영을 했다는 게 지금 생각해도 놀랍다. 그 시절 내 기록을 살펴보면 이런 다짐이 적혀 있었다.
“생후 3년, 아이가 결정적으로 성장하는 시기! 엄마인 나도 성장하자!”
아이가 결정적 성장을 했던 생후 3년, 그 시기를 지나온 지금, 과연 나는 책을 통해 얼마나 성장했을까? 그것을 수치화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히 알게 된 건 나는 목표를 세웠고 실천을 했고, 또 일정 부분에서는 실패도 했다는 사실이다. 하지 않았으면 몰랐던 것을 알게 되었고 다음에 하게 된다면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돌이켜 보면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가끔 느렸고 주저앉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수많은 발달 과업을 해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우리 모두 여러 번 시도했기 때문이다. 실패를 하든, 성공을 하든 ‘성장’이라는 단어 앞에서 무수히 시도했기 때문이다. 육아맘 시절, 어떻게 살아야 하지? 2.0 버전에서 내가 선택한 병법은 “용기와 시도”였다.
내가 좋아하는 말이 있다.
“인생은 실험이다. 동전을 가장 많이 던지는 자가 이기는 게임이다.”
그러니, 매일 동전을 최대한 많이 던져야 한다. 나는 인생이라는 실험에서 마지막에는 꼭 이기기를 원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