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세상 5편
급식을 먹기 위해 줄을 섰는데 당당군(가명)의 표정이 좋지 않았어요.
"무슨 일 있어?"
이렇게 선생님이 물으면 꼭 옆에 있는 아이가 대답하죠.
"선생님, 무무가 당당이한테 절교라고 이야기했대요!"
절교라니!
아이들에게 가장 아픈 일이잖아요.
어른도 절교는 힘든 일인데 말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표정이 시무룩하구나 싶어
하교 전에 해당되는 남자아이 세 명을 불렀어요.
"우리 반에 절교란 없다!"
나의 단호함에 놀란 무무 군이 뜻밖의 제안을 했어요.
"선생님, 그럼 우리 셋이 이야기 좀 하고 오겠습니다."
서로가 잘못이라며 탓 할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저는 그렇게 하라고 허락을 한 후, 교실에서 삼십 분을 기다렸어요.
곧 아이들이 나타났는데 뭔가 분위기가 좋았어요.
"선생님의 방법대로 했더니 다 해결했습니다."
저는 교실에서 갈등이 생기면 이런 방법을 씁니다.
갈등의 당사자를 불러서
서로의 입장 듣기를 합니다. 이때 규칙은 무조건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 해야 합니다.
중간에 내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혹은 틀렸다고 해서
절대 끼여 들면 안 됩니다.
번갈아 가면서 경청을 다 한 뒤, 서로 이야기할 시간을 주기도 하고요. 제가 약간의 개입을 하기도 하고 질문을 하면 어느 순간 갈등의 80퍼센트가 해결됩니다.
별 거 아닌 방법인데도
서로 자신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싸움도 피하고 절교도 피하고 미워하는 마음도 피할 수 있답니다.
"그래서, 절교는 안 해?"
"네, 서로 이야기를 다 들어 준 후 우리만의 규칙을 세웠거든요. 절대 친구를 놀리지 말자! 그리고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서로 솔직하게 이야기하자...."
당당군이 이렇게 서로 합의한 내용을 공식적으로 발표했어요.
"그럼 됐어! 그 규칙, 잘 지키기로 하자!"
이렇게 일을 마무리하고 아이들을 보냈어요.
그 일이 있은 후, 한 달이 넘었지만 아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늘 교실은요.
갈등의 증폭기 같아요.
집에서 자기만의 공간에서, 자기만의 위치에서 지내던 아이들이
아옹다옹 모여 있으니 투닥투닥 일이 생기기 마련이죠.
왜 학교를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하겠어요?
십인십색이자
각자의 소우주에서 살던 아이들이 같은 행성에 모여
서로 알고 있는 외계어로 대화하는 게 아니라
같이 대화할 수 있는 언어(그게 마음의 언어이든, 서로를 이해하는 언어이든...)를 배울 수 있는 거잖아요.
방법만 제대로 알려준다면
그 방법만 잘 실천한다면
아이들은 스스로 갈등을 풀 수 있는 능력이 생겨난다고 봅니다.
나와 다른 이에 대해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되고 오해를 풀어가는 그 과정을 겪는다는 게
그게 교실이 있어야 하는, 이유가 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