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90년대 글쓰기

쓰는 삶 1화 어릴 때, 어떤 글을 썼지?

by 책꿈샘 김지원

* '쓰는 삶'이라는 주제로 연재되는 글입니다.



1. 문학 소녀가 아닌 허세 소녀


프로필에 제 소개를 할 때, <저는 문학소녀도 뭐도 아니었지만 늦깎이 책쟁이가 되어...> 이렇게 시작하거든요.


그런데, 돌이켜보니 제가 고등학교 때 시 동아리 활동을 했더라고요.


"그럼, 문학소녀 맞네!"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제가 그 시절에 겪은 묘한 경험 때문입니다.


그림 재능도 없으니 그리기부는 패스, 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으니 독서토론부도 패스, 귀가 예민해서 소리 나는 걸 싫어하니 풍물부는 당연히 패스.


이렇게 소거를 하다 남은 게 시 동아리였어요.


그렇게 시 동아리에 가입한 저는 뭔가 '시인'이 주는 아우라를 꿈꾸며 이 난세의 여고시절을 시적 언어로 승화하겠다는 허세에 기대고 있을 때였어요.


"우리 시 동아리의 규칙은 하나다! 선배를 보면 90도로 인사하기!"


동아리 첫 날, 저는 시적 언어와 90도로 인사하기, 그 부조리의 세계를 만났어요. 분기별로 어떤 시를 썼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분기별로 누가 선배에게 제대로 인사하지 못했는가를 두고 담벼락에 종종 불러 나갔던 시절이었죠.



동아리에서 만난 시인이었던 선생님은 이런 과제를 냈어요.


"시 공책을 하나 준비하세요. 그리고 매주 시를 적어 옵니다."


그 말씀을 남기고 홀연히 시적으로 사라진 채 몇 주가 지나 동아리 교실에 등장한 선생님은,


"시 공책을 제출하세요!"라고 급작스럽게 말했죠.


저는 이 일에 두 가지 충격을 받았는데요.


하나는 저 빼고 아무도 그 과제를 하고 있지 않았다는 거. 그럼 우리는 무슨 동아리였을까요?


둘, 시인인 선생님이 제가 쓴 시를 그렇게 열심히 읽어볼 줄 몰랐어요. 당시 제가 쓴 시는 이렇게 시작했죠.

"삶은 흐르는 유수와 같다." 무려 중복되는 단어가 두 개! 흐르는, 유수.... 왜 그랬니? 스스로 이불 킥을 하고 싶었죠. 허세에 쩐 시를 너무나도 진지하게 들여다보시고 코멘트까지 해 주셨죠.

그리고 공책을 덮고 우리를 향해 보시더니 이야기했죠.

"이 친구 빼고는 시를 쓴 친구가 없다는 거죠. 알았어요."

그리고 다시 조용히 문을 향해 나갔어요.


물론 고등 3년 동안 시화전도 했고, 어찌, 시공책을 쓰지 않았던 친구들이 시화전 출품작은 이다지도 잘 쓸 수 있을까? 얼굴까지 예뻐서 늘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k모양은 시도 잘 쓰더라.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또르르 좌절했던 기억도 있어요. 그렇게 문학과는 먼 문학 동아리 했던 사건만 제 기억에 남아 있네요.



2. 90년대 글쓰기


초, 중, 고 시절 진정성 있는 글을 배우지 못했어요. 늘 보여주기 위한 글이었죠. 일기를 보여줘야 했고. 시를 보여주기 위해 썼고, 대학을 가기 위해 논술을 배우고 썼죠.


살면서 글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에 익숙하지 못했고, 그게 가당키나 한 일인지 몰랐어요.

자아가 딱 집 나가기 좋은 시절이었어요.


그래서 90년대 글쓰기는 고스란히 제 삶을 닮아 있었어요.


누가 시키는 일은 참 잘했던 아이라 글도 누가 시켜야 썼던 강제의 글. 그래서 보기도 좋아야 하고 멋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알맹이보다 껍데기에 가까운 글은 기억에 남아 있지 않네요.


진솔한 글은 시인, 작가, 소설가의 선택받은 자의 영역이지 삐죽 머리 여고생에겐 먼 안드로메다 행성 같은 이야기였어요.


글은 삶과 분리되어 있었죠.


그러니 문학소녀가 아니었다는 말은 제 기준에서는 사실입니다.


저는 글을 썼지만 쓰지 않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건 글이 아니라 일종의 투두 리스트 같은 미션지였어요.



3. 지금의 글쓰기는..


역시나 내게 투두 리스트이긴 합니다만.


매일 써야 할 원고와 과제가 있거든요.


하지만 즐겁습니다.


제가 자유롭게 선택한 영역이니까요.


40대가 된 지금도 제 삶은 자유롭지 못합니다. 직장에 매여 있고, 그 시간에 속해 있으니까요. 또 집으로 돌아가면 보살펴야 할 아이도 있죠. 가사도 시지프스 신화에 나오는 벌을 받는 것처럼 늘 그대로 수행해야 하는 영역이니까요.


하지만 글을 쓸 때는 자유롭습니다. 90도로 인사해야 할 선배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에요. 그런 규칙은 묘하게 변주되어 살아 있거든요. 그래서 그런 비슷 무리한 규칙이 저를 옭아맬 때도 있어요.


그래도 지금의 글쓰기는


글을 쓴다고 말합니다. 문학소녀는 아니었지만 글쟁이라고 스스로 말합니다.


글이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글이 삶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글은 제가 살아가는 삶이자 길이자 친구거든요. 힘들 때 내지를 수 있는 도구이자, 무릎이 꺾일 때 소리칠 수 있는 대나무 숲이기도 하고요. 제가 쓴 글이 출간이 되었을 때, 인생의 클라이막스가 되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매일 글을 씁니다.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쓸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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