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고 있다고 믿다가도
문득
울컥해지는 밤이 있다.
잘 살고 있다고 포장했던 시간과 모습이 벗겨지는 순간을 마주할 때다.
그럴 때, 나는
내 삶의 모멘트를 꿈꾸는데 다음 날이면 그 꿈도 흐지부지하다.
일어나면 다시
익숙한 삶이 있어서
피곤하게 사유할 필요도 없고, 고통스럽게 용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적당히가 통하니깐. 꾸역꾸역 적당히 살아지는 거다.
살면서,
삶을 바꾼 사람을 보았다.
그들과 내가 달랐던 점은,
그들은 더 간절했다.
그들은 더 아팠다.
그래서 행동했다. 보류하지 않고. 수고스럽게, 피곤하게!
내가 아직 두 번째 삶을 살고 싶다는 열망을 미루는 이유는
아직 이 삶이 살 만하지 않냐고 스스로에게 납득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많이 간절하지도,
많이 아프지도 않은 적당한 선에서
스스로를 잘 설득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니,
두 번째 인생은 소원하다.
적당히가 통하지 않을 때,
스스로 납득이 안 될 때,
외부에서 오는 자극으로 인해 많이 아프고 고통스러울 때,
나는 두 번째 인생을 스타트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