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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ehyun Kim Feb 05. 2020

도대체 너는 누구니?

2020년 신입행원과의 대화

저는 티라노(가명)입니다.
한국은행에 2011년에 입행하였습니다.

저는 대부분의 한국은행 선후배님들과는 조금 다르게 살아왔습니다. 소위 비주류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저는 공채가 아닌 경력으로 한국은행에 입행했습니다. 제가 맡은 일도 통화정책과는 좀 거리가 있어 보이는 외화자산 국외운용이라는 업무입니다.

그전에는 삼성생명이라는 민간기업에서 밥벌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거기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보험회사를 다녔지만 보험을 잘 몰랐습니다. 막연히 보험회사에는 엄청나게 많은 돈이 있을 거고 이걸 누군가는 지키거나 또는 투자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습니다. 보험회사에서 보험은 안 팔고 자산운용본부에서 자산 운용업을 했습니다.
 
조금 더 과거 이야기를 꺼내보자면 저는 과학고등학교를 나왔고 KAIST를 졸업했습니다. 점점 더 이상해 지지요? 나로호나 우리별 3호를 날려야 할 것 같은데 여기에 있습니다. 그때도 반골기질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뭔가 수학, 과학만 공부만 해서는 안될 것 같아 대부분의 친구들이 선택했던 대학원 진학을 안 했습니다.

그랬더니 병무청에서 입영통지서가 날아왔습니다. 대학원 진학을 했으면 병역특례자로 군대를 안 가도 되었을 것입니다. 대학원대신 군대를 택한 기이한 결정을 한 것입니다. 102 보충대로 오라길래 거기 가서는 너무 추워서 얼어 죽을 수도 있겠다는 겁이 덜컥 났습니다. 그럴 바에야 빨간 불자동차나 타보자 싶어 의무소방에 지원했습니다. 소방관으로 26개월간 병역을 마쳤습니다.

지금까지 제 이야기를 들은 분들 중에는 “뭐야! 주변만 빙빙 돌다가 정작 중요한 건 못해보는 넌 결국 실패한 삶이잖아”라고 할 분이 많을 겁니다. 아닙니다. 저는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굽이굽이 돌아온 덕분에 남들보다는 조금 늦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 직선으로 달려온 사람들은 경험하지 못했을 더 많은 경험을 하였다고 자부합니다. 이 사회의 발전과 변화를 위해 조금은 기여했다는 자부심도 있습니다. 여러분 인류가 어떻게 지금의 모습으로 진화해왔는지 아십니까? 결국, 돌연변이 때문이었습니다. 유전자의 변형이 진화의 선물로 다가온 것이지요. 저는 돌연변이 역할을 하려고 합니다.

저는 저의 삶을 사랑합니다. 주류가 아닌 곳에 있다고 해서 한 번도 내가 머물렀던 곳, 내가 선택한 곳을 사랑하지 않은 적은 없었습니다. 한국은행도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한국은행은 정말 중요한 조직입니다. 그래서 더 잘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 한국은행이 지금보다 더 나은 좀 더 발전적인 존재가 되는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오늘은 여러분들의 생각을 들으려고 왔습니다. 그러려면 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좋겠다 싶어 저의 경험 몇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명심하셔야 할 것은 과거가 절대적인 답은 아닙니다. 저는 정답이 아닙니다. 다만 시간을 내서 관찰해볼 만한 흥미있는 존재  정도는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자리에서 저를 잘 관찰해보시고 이를 통해 본인이 나가야 할 길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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