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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ehyun Kim Jun 04. 2016

붕어빵 경제학

무딘칼을 움직이는 요리사 한국은행

"미국 내달 금리 인상 가능성에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하 멈칫" 2016.5.19. 경향신문

"한국은행, 기준금리 11개월째 동결 연 1.5%" 2016.5.13. 중앙일보

"노무라, 한국은행 이달 기준금리 동결할 것" 2016.4.18. 연합뉴스


한국은행은 매월, 총재를 포함한 금융통화위원 7인이 참석하는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결정한다. 이러한 회의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자본주의를 선택한 대부분의 국가가 채택한 모델이다. 미국은 연방제도준비위원회가 연간 8회 FOMC(Federal Open Makret Committee) 회의를 열고 유럽연합은 ECB(European Central Bank)가 정례회의를 위해 19개 유로 회원국 총재를 소집한다. 동 회의를 위해서 많은 인력이 동원된 조사연구가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각계의 전문가들 의견을 듣는 세미나나 콘퍼런스도 수시로 개최한다. 기준금리는 신중에 신중을 더하고 판단에 판단을 거듭한 끝에 나온다.


과정에 비해 결과는 대체로 시시하다. 대부분 전월과 같은 수준을 유지하는 동결 결정이고, 변화가 있어봐야 0.25% 정도다. 2.5%도 아니고 0.25%라니 이런 결정을 위해 그렇게 호들갑을 떨 필요가 있었나 싶을 정도다. 게다가 금리 결정을 위해 고려했던 사항들과 근거들을 설명한 통화정책방향문이나 회의록, 기자회견에서도 파격적인 이야기를 듣기는 힘들다. 대부분 현재의 경기 상황에 대한 판단이 주류이며 이마저도 섣불리 결정해서는 안된다는 의견이 주류를 이룬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의 시시한 의사결정에 금융시장에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기준금리를 변화시켰을 때뿐만 아니라 전월과 같은 수준으로 유지한 결정에도 주식, 채권시장은 요동을 친다. 그들의 결정은 긴 파장을 남긴다. 금융시장에서 시작된 움직임은 파생되어 실물시장에도 영향력을 미친다.


금리라는 것이 왜 이토록 중요할까? 금리가 높고 낮음이 우리가 사는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좀 쉽게 이해하기 위해 붕어빵을 예를 들어 금리와 우리 삶과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정부는 전국에 붕어빵을 공급하기로 하고, 붕어빵 장사를 할 지원자를 모집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세명의 지원자가 정해졌다. 타고난 장사꾼인 A는 빠른 손놀림과 구수한 입담으로 매년 7천만원 가량의 수입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B는 수줍음이 많긴 하지만 비교적 상냥한 데다 말쑥한 외모 덕분에 연간 5천만원 정도는 벌 수 있다. 반면 C는 그다지 성실하지 못한 데다 빵 굽는 기술도 모자라 매년 삼천원 정도 벌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붕어빵 틀, 밀가루 반죽, 계란 등 장사를 위해서 필요한 자재와 재료 구입비를 재력가인 황씨를 통해 빌릴 수 있도록 주선해 주었다.


그런데 황씨는 이들에게 매년 5천만원의 이자를 낼 것을 요구했다. C는 붕어빵을 팔아 얻은 수입으로 이자도 못 갚을 테니 즉시 붕어빵 만들기를 포기할 것이다. B는 붕어빵 사업에 뛰어들지 말지를 고민할 것이다. A만이 유일하게 붕어빵을 만들게 돼 전국에는 A가 만들어내는 붕어빵만이 공급된다. 국민이 필요로 하는 붕어빵보다 생산량이 부족해지자 붕어빵 기근이 도시를 덮쳤고 도시는 활력을 잃고 사람들은 불행에 빠진다. 이 사태를 지켜보던 황씨는 고민 끝에 이자를 3천만원으로 내린다. 이제 B가 붕어빵 장사에 뛰어들 것이다. 심지어 장사를 포기했던 A마져 붕어빵을 만들어 볼까 고민하게 될 것이다. 황씨가 이자를 천만원으로 낮춘다면 세명 모두 본격적으로 붕어빵을 생산할 것이고, 전국에 충분한 양의 붕어빵이 공급될 것이다.


이미 눈치챘겠지만, 황씨가 맡은 역할이 한국은행이다. 한국은행은 우리 경제가 필요로 하는 붕어빵의 양을 조사하고 경제에 적절한 붕어빵이 공급될 수 있도록 금리(이자)를 조절한다. 심박수를 조정해 온몸에 공급되는 산소와 영양분을 조절하듯 금리를 통해 우리 사회의 경제활동의 속도를 조절한다. 황씨는 전국에 필요한 붕어빵 개수를 면밀히 조사하여 이자를 결정해야 한다. 하지만 적정 붕어빵 개수를 알아냈다고 하더라도 이자를 너무 자주 바꾸면 어떤 사람도 붕어빵 장사에 뛰어들지 못할 것이다. 내일의 이자를 예측할 수 없다면 오늘 투자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에 적정 붕어빵이 공급되도록 하려면 경제 활동 참가자가 합리적인 기대를 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황씨가 올해는 5천만원의 이자를 받지만 내년에는 4천만원을 받고 그다음 해에는 3천만원으로 줄여 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으면 B 씨는 당장 올해는 이익이 나지 않지만 내년과 그 이후를 위해서 붕어빵 장사에 뛰어들 것이다. 기대만으로도 전국에 공급되는 붕어빵의 개수는 변한다. 한국은행은 면밀한 조사를 바탕으로 경기를 판단하고 적정 금리를 결정하며, 시장참가자들이 경제에 대한 합리적인 기대를 가질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금리를 조정한다.


요리사는 고기를 부위별로 잘라내고 필요한 부분을 도려낼 때 크고 무거운 칼을 사용한다. 모양을 내고 기교를 낼 때 쓰는 작고 예리한 칼로는 이런 작업을 할 수 없다. 금리를 이용해 경기를 조정하는 방식은 무딘 칼을 휘두르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한국은행의 금리 결정은 우리 경제활동 전반을 주무르는 단계다. 우리 경제가 나가야 할 큰 방향을 결정하는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작업이다. 사소한 문제점을 고치자고 크고 무거운 무딘칼을 휘두를 수 없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붕어빵보다 더 많고 다양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을 테니 한국은행은 황 씨보다 더 절박하고 어려운 고민을 할 것이다. 그렇기에 무딘 칼 말고도 수십 종류의 칼자루를 적재적소에 쓰기 위해 뒷짐 가득 가지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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