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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ehyun Kim May 02. 2017

책과 나: 이기적인 당신

너무도 쓸쓸한 당신(박완서)을 읽고

  나는 이기적이다. 좋은 차를 타고 싶고, 좋은 집에서 살고 싶다. 교외에 새로 생긴 쇼핑몰에서 옷을 사거나 블로그에 나오는 맛있는 음식점도 찾아다녀야 한다. 나는 잘 먹고 잘살고 싶다.


  박완서의 단편소설 '너무도 쓸쓸한 당신'의 당신에게서는 그런 이기심을 읽을 수 없다. 그는 본인을 위해 살아본 적이 없다. 젊은 시절에는 국가를 위해 살아왔다. 국가가 알려주는 새마을 정신이 그가 대하는 삶의 태도이자 이유였다. 국민교육헌장의 구절대로 그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나 인류공영에 이바지하는 하는 삶을 살았다. 가족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의 역할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으로서의 삶이였다.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을 꼽으라면 며느리가 혼수로 해온 변변찮은 양복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아들 결혼식이 아니었으면 없었을 테니 온전히 그를 위한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그의 고독한 이타심은 고귀하다. 그러나 아내는 그런 남편이 부끄럽다. 김치 국물이 묻은 꼬깃꼬깃한 양복 깃이 싫고, 몽둥이처럼 깡마른 정강이도 싫다. 남편의 그 고귀한 이타심은 가족에게 만족감을 주지 못한다.


  그의 삶이지만 그를 위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는 가족을 부양하는 역할의 조연일 뿐이다. 그는 야위었으며 가엾다. 그의 모습은 아름답지 않다. 그의 초라함은 자식을 위해서 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자식만을 위해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의 이타심이 가족을 슬프게 만들었고 독자를 안타깝게 만든다.


  책을 읽는 내내 나의 모습이 읽히고, 내 삶이 그려져 가슴이 시렸다. 작년 이맘때 쯤 둘째 아이가 태어나면서 아내는 간신히 유지하던 맞벌이를 그만 두었다. 나도 회사에 있는 시간 외에는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육아에 쏟고 있다. 오감발달을 위해 아이들은 문화센터와 놀이학교에 보내고 있지만 내 감성을 위한 영화관람은 없다. 아내는 아이들의 재능개발을 위해 어린이 서적 전집을 사들이지만 정작 본인을 위한 책을 사지는 않는다. 아이들이 커서 무엇이 될지 궁금하고 기대되지만 내가 무엇이 되고 싶고 어떤 삶을 살지는 궁금하지 않다. 마치 나의 인생은 여기서 멈춰선 것 같다. 어느덧 나에게 ‘너무도 쓸쓸한 당신’의 남편의 모습이 보인다. 나의 이기심은 어디로 사라져 버렸을까.


  나를 위한 취미를 가져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만약 있다면 첫째 아이가 태어나기 전 배우던 라켓볼이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물론 이유는 있다. 맞벌이 하는 아내에게만 육아를 맡길 수 없었다. 가급적이면 아이와 함께 할 수 있어야 하고, 너무 긴 시간을 할애해서도 안 되었기에 취미를 가질 엄두조차 못 냈다. 나만을 위한 취미는 사치였다.


  다시 이기적인 인간이 되어야겠다. 아내와 아이들이 존경하고 닮고 싶은 삶을 살아야겠다. 초원의 수사자는 결코 어린사자에게 먹이를 잡아주거나 그의 삶을 대신 살아주려 하지 않는다. 너른 바위에 올라 영역을 아우른다. 영역을 침범한 자를 무찌르고,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와 싸운다. 아기 사자는 그런 수사자에게서 미래의 모습을 꿈꾼다. 내가 나를 위해 살아가고 아이들도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면서 이 세상은 만들어진다.


  부모가 되기 위해 너무 많은 희생을 강요하는 시대다. 부모가 아이의 모든 것을 책임질 수 없다. 내 삶을 살아가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할 때 육아도 더욱 의미 있어질 것이다. 어깨에 짊어진 짐들 중 나의 것은 하나도 없이 오로지 자식과 가족만을 위한 것이라면 그 짐은 더욱 무겁고 힘들다.


  주어진 책무에 헌신을 다했으되 그 헌신이 자신에게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묻지 못했던 소설속 ‘당신’을 내안에 만들고 있지 않은지 돌아본다. 나는 아빠이기 이전에 나여야 한다.



* 이글은 한은소식(2017년 4월호) 책과 나 코너에도 실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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