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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ehyun Kim Nov 01. 2017

책과 나: 누군가는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

82년생 김지영(조남주)을 읽고

결혼을 하고 한동안 맞벌이를 했다. 아내의 회사는 규모는 작았지만 튼튼하고 좋은 회사였다. 아내는 회사 다니기를 좋아했다. 결혼생활은 즐거웠다. 우리는 같이 출근하고, 가끔 퇴근길에 만나 저녁을 먹었다. 주말에는 교외로 나들이를 나갔다.


결혼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아 아이가 생겼다. 딱히 바라지도 않았지만 딱히 거부하지도 않았던 우리는 덤덤하게 아이를 받아들였다. 덤덤했다기보다는 몰랐다는 말이 옳았다. 여느 인생이 그렇듯 출산과 육아는 처음 맞이해보는 경험이었다. 


결혼과 출산으로 이어지는 일반적이고 정상적이라 여겨지는 과정에 있는 것만으로 감사했다. 아이를 갖고 싶어도 못 가지는 사람들도 있음을 굳이 떠올리며 좋은 생각만 했다. 애써 그랬다. 가슴속 어딘가에서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걱정과 고민을 툭툭 쳐서 한쪽 구석에 눌렀다.


아이가 태어나고 많은 것이 바뀌었다. 우리의 삶도 바뀌었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도 바뀌었다.

   

나는 일 욕심이 많았다. 누구보다 잘하고 싶었다. 뒤쳐지는 것이 싫고 인정받는 것이 좋았다. 회사에 있는 시간이 좋았고, 퇴근이 늦어도 싫지 않았다. 일하는 게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아내도 그러했다. 아내는 90일간의 출산휴가를 쓴 후 다시 출근을 했다. 아내가 다니는 회사에 육아휴직이라는 제도가 없었던 것이 첫 번째 이유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가 계속 일을 하고 싶어 했던 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퇴근 시간은 여전히 늦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대수롭게 여기지 않던 퇴근시간이 이제는 중요해졌다. 우리의 퇴근시간은 베이비시터의 퇴근시간과 연결되기 때문이었다. 7시까지 아내와 나 둘 중에 한 명은 반드시 집에 도착해야 하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 앞에 우리 둘은 어쩔 줄을 몰랐다.


친구들과 저녁 약속은 사치였다. 어쩌다 회식이나 늦은 회의가 잡히면 혹시나 빠져나갈 방법이 없는지 머리를 굴려야 했다. 다들 이렇게 산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렇게 밖에 살 수 없는 현실이 답답했다. 결국 아내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아니다. 아내가 회사를 그만둬 주기를 내가 바랐다. 그래야만 숨통이 좀 트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어 시간적 여유가 조금 생긴 아내는 다시 일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경력도 짧지 않은 아내가 일할 수 있는 자리는 더 이상 없었다.


소설 ‘82년생 김지영’ 속 김지영의 삶도 다르지 않다. 취업난을 뚫고 합격한 회사에서 누구보다 뛰어난 업적을 보였던 김지영 씨는 아이의 임신과 함께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출산과 육아의 무게는 회사원의 삶과 도저히 같이 짊어지고 갈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돌보는 일은 종종 하찮은 일로 무시당했고, 맘충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어야만 했다. 그녀는 결국 정신병을 앓게 된다.


종족보존은 본능이다. 이 본능이 위협받고 있다. 현재 인구수를 유지하기 위한 출산율은 2이다. 사고나 질병으로 인한 사망을 고려한다면 그보다도 높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출산율은 1.17로 매우 낮다. 그마저도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낮아지고 있다. 종족보존을 위한 기본적인 환경이 배제된 환경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결혼을 기피한다. 출산을 두려워한다. 우리는 멸종위기에 놓인 생명체가 되었다.


생각의 틀을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 인류는 몹시 해결하기 힘든 완전히 어려운 문제에 맞닥뜨렸다. 이 문제는 단순히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여성이나, 그런 여성을 고용하고 있는 기업에게만 맡겨둘 만한 난이도가 아니다.


‘아이가 아파서 집에 일찍 가봐야 해요’라고 말하는 것이 유별난 것이 아니어야 한다. 아이가 아플 때는 부모가 가정으로 돌아가는 것이 당연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 일하는데서 가까운 곳에 아이를 돌봐줄 수 있는 시설이 있고, 부모는 언제라도 아이에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가진 일자리가 일반적이어야 한다. 이로 인해 손해 보는 자가 없어야 하고, 설사 손해를 보더라도 그 손해는 개인이 아닌 우리 모두가 나눠야 한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82년생의 이야기도 아니고, 김지영 씨의 이야기도 아니다. 나의 이야기이고 우리 사회의 이야기이다. 사회의 구조가 바뀌고 인간의 성역할이 바뀌었는데도, 출산과 육아 문제를 여전히 개인의 책임과 역할에 맡겨둔다면 우리 사회는 김지영 씨로 채워질 것이고 우리는 결국 멸종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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