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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ehyun Kim May 14. 2018

책과 나: 같이 살아도 아니어도 문제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정문정)을 읽고

대다수의 인간은 어쩔 수 없이 혼자가 아닌 함께 하는 삶을 택한다. 혼자 일 때 보다 함께 하는 것이 여러 가지로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함께 살다 보니 서로 부딪힌다. 하루에도 수십 명의 사람을 만나는데 이들 중 나와 똑같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사람에 상처받아 외톨이로 살기로 마음먹고, 혼자가 돼 보기로 하지만 역시 며칠 못 버티고 다시 군중 속으로 돌아온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타인에게 상처받을 수밖에 없다.


정문정 작가의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을 받아 든 날은 오전에 들은 말 한마디가 신경한 구석에서 떠나지 않고 맴돌고 있을 때였다. '그는 왜 나에게 그런 말을 했을까?', '나는 왜 좀 더 멋지게 대처하지 못했을까?' 불편함이 떠나지 않았다. 그가 꼭 나를 지칭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누가 들어도 나에게 하는 말임에는 틀림없었다. 이 책은 밤을 꼬박 새도 풀리지 않은 숙제를 풀어줄 족집게 과외선생님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족집게 선생님의 정답 풀이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애초에 답이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려면  '무례한 사람'을 정의해야 하는데, 무례함이란 상대적이고 주관적이다. 그저 나에게 불편한 감정을 준 사람 정도로 무례한 사람을 정의하고 시작해버린다면 제대로 된 대처를 시작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 책에는 그 정의가 빠져있다. 


무례한 사람을 대처하는 방법에도 동의하기 어려웠다. 저자가 제시한 방법은 유머를 더해 우회적으로 표현하거나, 단호하고 냉소적으로 대하거나, 딴청을 피우거나 무시해버리는 방법이었다. 표현하는 방식에 유머를 더했건, 냉소를 더했건 간에 나는 상대방에게 상처를 받은 이유를 설명해야 하고 표현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상대의 잘못을 들춰낼 수밖에 없고, 잘못을 지적받은 상대방은 아플 수밖에 없다. 딴청을 피우거나 무시해버리는 방법은 그냥 혼자서 참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상대에게 아픈 내 감정을 전달해야 한다면 그 방식이 어떻듯 상대를 아프게 할 테고, 전달하지 않고 속으로 삭힌다면, 상대에게 감정을 전달하고 다시는 그러지 않도록 하겠다는 최초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게 된다.


애초에 이문제는 족집게 강사가 풀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 문제보다 훨씬 쉬운 '페르마의 정리', '상대성 이론'도 수없이 많은 수학자와 물리학자가 아직도 풀고 있는데, 이렇게 어려운 문제를 책 한 권에 쉽게 풀어냈을 리가 없다. 


애초에 혼자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해 불가피하게 선택한 함께 살아가기로 생긴 상처는 대처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선현들은 상대에게 내 아픔을 전달한다고 해서 내 아픔이 치유가 되는 것이 아니니 아픔을 화해와 용서로 승화시키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고 말한 스님의 말씀도 어느 책에선가 읽었던 것 같다. 상대의 아픔이 나의 즐거움이 아니기에 상대를 아프게 하는 방법으로 자산의 아픔을 치유하지 말라는 의미일 테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인생을 즐겁게 살아라'만큼 어려운 이야기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지독하게 긍정, 치유, 행복을 강요받으며 살고 있다고 느꼈다. 우리에게 주어진 고통과 불행은 반드시 이겨내야 한다는 강박이 이런 책을 세상에 나오도록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아빠는 다달이 꼬박꼬박 월급 뺴먹지 않고 나오는 회사에 다니고 엄마는 평범한 주부로 가정을 꾸려나가고, 중고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있는 집안에서도 걱정거리가 수백 가지 정도 있다. 월급은 빠듯하고, 사고 싶지만 사지 못한 것들이 수두룩 하다. 아이들을 마음 같지 않게 공부를 잘하지 못한다.


어디서 긍정을 찾아야 할까? 꼭 긍정적이어야 할까? 나는 그냥 우울한 상태로 살겠다. 억지로 나는 행복한 사람이고, 긍정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 애쓰느라 받는 스트레스보다 그냥 사람이 사는 게 힘들고 상처 주고받는 것임을 깨닫고 살아가야겠다. 무례한 사람에게는 무례하게 대하고 가끔은 싸우기도 하고 패배하기도 하고 그러고 살고 싶다. 미안하게도 정문정 씨가 아주 오랜 기간 공을 들여 쓴 글을 읽고, 이런 나의 생각은 더욱더 확고해졌다.


날씨가 더워지고 있다. 무례한 사람들이 몰려드는 계절이 돌아오고 있다. 나이스 하게 대처하는 법은 없다. 참을 때는 참고 뱉을 때는 받으면서 지내야겠다. 어차피 인간들 사이에서 어울려 살려면 그 방법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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